연예일반

어느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

까칠부 2011. 2. 8. 17:53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항상 내게 술 얻어먹던 친구가 있다. 친구라기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영화시나리오를 썼었다. 한 세 개인가 시나리오를 팔기도 했었고. 하지만 돈이 없어 항상 궁상이다가 드라마 작가 밑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은 어찌되었는가 모르겠다.

 

방송작가 쪽도 그리 사정은 좋지 못한 모양이다. 조금 되었지만 - 그러니까 방송작가가 자살하는 사건이 있기 좀  전이다 - 남자이고 가정도 꾸리고 케이블 방송작가 모집에 나갔더니만 그러더란다.

 

"남자고 가정이 있으면 어지간하면 하지 마세요."

 

소수의 성공한 작가를 제외하고는 거의 아르바이트 수준이었다고 한다. 모른다. 그 사건 이후 - 또 방송시스템이 바뀌면서 얼마나 달라졌는가. 그러나 방송을 통해 보여지는 방송작가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은 이같은 증언들을 뒷받침한다 할 수 있다.

 

컨텐츠에 대한 개념이 없다. 한국사회에서는 무형의 컨텐츠에 대한 개념 자체가 거의 희박하다. 그것을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한다는 생각도, 그것을 어떻게든 대우해서 좋게 끌어올려야 한다는 생각도, 그저 아무렇게든 나오니 적당히 쥐어짜 이용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아마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골방에 틀어박혀 끙끙거리며 자판을 두드리는 이미지가. 그렇게 머리와 손가락만으로 쓰는 게 스토리라 생각한다. 더 풍부한 아이디어와 더 깊이 있는 지식과 더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위해서는 그만한 투자가 필요하다. 자료도 조사해야 하고, 취재도 나가야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쪽대본이라고? 왜 그런 일이 생길까? 옆나라 일본만 해도 그런 게 없다. 촬영전에 대본이 이미 나와 있다. 그렇게 되도록 스케줄을 짠다. 아예 그 과정까지 모두 기획단계에서 고려되고 판단된다. 무모하게 어떻게든 대본이 나오겠거니 들이받는 것 없다. 그것은 그만큼 대본이라는 것을 우습게 여기니까. 그리고 그런 만큼 대본의 완성도는 떨어진다. 드라마 보다가 코웃음 나는 이유가 그래서다.

 

단지 어느 한 작가의 죽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대중문화 컨텐츠의 근본적 한계이며 문제이기도 하다. 한류라 하면서 왜 그리 일본 원작이 많은가. 영화도 그렇고 드라마도 그렇고 정작 컨텐츠는 일본에서 생산되어 들어온 것이 그리 많다. 만화가도 한국 만화가는 대접을 못 받는다. 그냥 만화도 대충 그려 나오는 것인 줄 아는 사람이 태반이다. 불로소득자로 구분되던 시절도 있었으니. 도대체 개명한 21세기에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아마 1987년이었을 것이다. 김수정의 만화 "아리아리동동"에서 만화가가 영양실조로 죽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그런 게 어디있나 했었다. 참으로 순진하던 시절이라 아무리 그래도 굶어죽기까지 할까? 그런데 무려 시나리오를 다섯 개나 계약하고서도 그렇게 되었다고. 시나리오 다섯 개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가.

 

고작해야 좋은 시나리오를 선점하려는 의도였단다. 그래서 제대로 댓가도 지불하지 않고 약간의 비용만으로 제작도 하지 않을 것이면서도 시나리오를 독점하려 들고. 차라리 영화로 만들지 않을 것이면 다른 곳에라도 들고가게 하던가. 그도 아니면 좋은 시나리오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도 제 값을 주고 구입하던가. 하기는 그나마 시나리오 팔아봐야 들어오는 돈도 얼마 없다. 많은 경우 혼자서 쓰는 것이 아닌데다, 감독의 영향력이 또 대단하다 보니. 자기가 쓴 시나리오로 영화 만들기 전까지 희망이 없다. 그런 현실이...

 

오래전부터 나오던 이야기다. 그래서 나도 들었었다. 시나리오를 팔아봐야 돈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희망고문이다. 정작 자기가 판 시나리오가 영화화되었는데 주머니에 들어오는 것은 거의 없다. 과연 그런 가난한 시나리오작가들이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배고픔을 동기삼아 자기를 채찍질하는 이야기는 80년대 만화에서나 쓰일법한 소재다. 배가 고파서 하는 일은 딱 배부를 만큼밖에 하지 못한다. 그때그때 주먹구구로. 땜빵으로. 그러고서도 한류는 계속될 것인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뉴스를 듣고서 그럴만도 했겠다라 스스로 납득하고 마는 현실이 더 안타까울 것이다. 산다는 것이 이렇게 잔인한가. 꿈을 꾼다는 것이 이렇게 잔혹한가.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알면서도 또 꿈을 향해 내달리는 사람들도. 그러고서도 사람들은 말하겠지.

 

"더 열심히 잘했으면 어떻게 그렇게까지 돼?"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잠재적인 희생자만을 다시 남겨놓을 뿐이다.

 

부디 좋은 데 가기를. 굶주림도 없고, 아픔도 없고, 대우받으며 꿈을 펼칠 수 있는. 몇 년 전 미국에서 작가들이 파업을 벌이던 일이 생각나는데. 배우들마저 동조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 재능과 노력이 대우받을 수 있는 세상을. 우울한 하루다. 산다는 건 그래서 슬프다.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