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도대체 카라가 한국 연예계에 한 일이 무언데?"
그래서 대답해주었다.
"생계형 아이돌의 시대를 열었다."
완성형 아이돌에서 성장형 아이돌의 시대를 열었다. 팬과 함께 성장하며 팬이 함께 키워나가는 아이돌이다. 원래 일본에서 처음 나타난 아이돌의 원형이다.
아이돌이란 원래 성장하는 것이었다. 팬과 함께 데뷔해서 차근차근 인기를 얻고 나이를 먹어가며 성장해가는 혹은 친구? 혹은 연인? 누이? 형제? 아무튼 어쩌면 누구보다 가까운 대상이 아이돌이었다. 그게 또 일본에서 아이돌이 열화된 이유가 되었다. 아무래도 너무 멀면 곤란하잖은가?
카라가 일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쓴 블로거의 글을 이제서야 읽었다. 상당부분 공감했다. 확실히 일본에서 아이돌이란 그런 개념이었다. 다만 지적할 것이 있다면 일본의 여성들이 소비한다는 여성 아티스트의 경우도 엄밀하게 아이돌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스타는 우러르는 것이고 아이돌은 소비하는 것이다. 아니메나 망가를 보고 코스프레를 하는 것처럼 굿즈를 하고 스타일을 따라하고 혹은 패러디나 동인물을 만들면서 그들을 소유하는 것이다.
일본어에서 "카와이"란 우리나라 말의 "귀엽다"와 약간은 다른 뜻으로 쓰인다. 우리나라 말에서의 "귀엽다"는 예쁘장하다는 외모에 대한 표현을 포함하지만, 일본어에서의 "카와이"는 친근하다는 감정상태를 포함한다. 가끔 - 아니 자주 카와이한 일본 아이돌을 보며 실망하고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게키단 히토리가 말한 카라는 가족이라는 것도 너무 먼 화려하고 대단한 존재를 가족이라 하지 않는 것처럼.
어디선가 볼 수 있는 - 카라 자신이 예능에서 나와 밝힌 그대로 이웃집 여동생이나 여자친구 같은 이미지.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고 레벨이 높기는 하지만 어디선가는 한 번 쯤 마주칠 것 같은 그런 기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을 싼티라 여기지만 일본에서는 그것을 친근함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돌을 소비하는 동기가 된다. 소유할 수 있다. 여성은 본받을 수 있고 남성은 애정할 수 있다. 사실 아주 오래전 일본에서 아이돌이 처음 나타났을 때는 일본의 아이돌들도 그랬을 테지만 어느샌가 열화되며 퇴화된 부분이다. 카라를 상당히 복고적이라 여기는 것도 그래서다. 그러면서도 상당히 세련되고 진보적인 이미지가 있다. 그것은 타라가 갖는 성장형의 이미지와도 관계가 있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데뷔앨범이 참패하고, 멤버가 바뀌고, 아래로부터 차근차근, 데뷔 2년이 넘어서야 겨우 1위를 한 번 하고, 3년이 넘어가면서 비로소 자리를 잡았다. 항상 방송에 나와 활달하게 가리는 것 없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그런 이미지에 한 몫 했을 것이다. 화려하지만 거리감이 없다. 더구나 예능에 나와 일본어도 서툴지만 열심히 함으로써 외국인이라는 거리감마저 줄여버렸다. 그러면서도 또 일본인이 아니라는 신비함이 있고. 여러가지가 참으로 복합적이다. 결론은 친근하지만 화려하다. 대단하지만 거리감이 없다.
국내에서도 시크릿이며 씨스타며 하나같이 후발 걸그룹들이 생계형을 내걸고 데뷔할 수 있게 된 이유다. 원래 한국의 아이돌이란 서태지와 아이돌 이후 거의 완성품이었다. 일단 기획사가 완성품을 내놓으면 그것을 대중이 골라 소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팬들이 직접 아이돌의 매니지먼트에 관여하며 홍보도 하고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기 밀어주고 있다.
시작은 원더걸스였다. UCC와 원더걸스의 Tell me는 대중이 어떻게 아이돌을 소비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아이돌은 더 이상 별세계의 존재가 아니었고 더욱 가까이 대중이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 주었다. 원더걸스에 의해 걸그룹의 붐이 일어나고, 이제까지 아이돌을 외면하던 삼촌팬들이 유입되기 시작하고, 마침내 카라에 이르러 성장형이라는 함께 성장해간다는 극단의 개념까지 도입되었다. 여전히 YG나 JYP, SM같은 거대기획사에서는 완성형의 아이돌을 내놓고 대중도 완성형을 더 선호하고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걸그룹 시장에서는 그런 개념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완성된 대단한 아이돌보다 아직 미완의 조금은 부족한 아이돌을 키워가는 재미. 아이돌의 맛을 알아가고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아무튼 그러한 여러 예능에 자주 얼굴을 내비치며 서툴지만 일본어로 성실히 대화하고 그러면서도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소탈한 모습이 일본인들에게 크게 어필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 할 것이다. 이제까지 일본에 없던 세련된 스타일에, 탁월한 춤과 노래의 스킬에, 그리고 갓 데뷔한 신인마냥 열심인 모습까지. 한마디로 동성에게는 본받고 싶은 친구, 이성에게는 동경하는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시 어쩌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제까지 일본에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한국보다는 일본에서 그런 스타일이 더 유효하게 먹히고 있을 뿐.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스타에 대한 동경이 강해서 친근함이란 자칫 싼티가 될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친근함이란 곧 아이돌을 뜻한다. 친근한 동경.
과연 카라가 어디까지 커나갈 것인가. 솔직히 나로서는 잘 모른다. 내가 일본 연예계에 관심을 끊은지가 꽤 오래되어서. 모닝구무스메가 인기를 끈다는 소리를 듣고 관심을 끊었으니 참 오래되었다. 그 동안 또 일본의 연예계가 어떻게 바뀌었고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러나 역시 본질은 아이돌이란 친근함이며 스타란 동경이라는 것이다. 동경할 수 있는 친구야 말로 모두에게 가장 끌리는 대상일 것이고. 그 길을 지금 카라가 가고 있다. 그리고 아마 그 길의 끝에는 단지 그 이름만으로도 통하는 스타의 길이 있을 것이다. 장담은 못한다. 원래 일본의 아이돌이 그렇게 커나갔다.
확실한 것은 앞으로도 국내보다는 일본에서 카라가 더 성장가능성이 클 수 있다는 것. 이제 와서 카라가 고급화 전략을 취한다고 먹힐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이제까지와 같은 성장형의 이미지란 한국 시장에서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또 아이돌에게 아티스트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도 강해서. 아티스트라고 해봐야 기껏 보컬스킬 하나만을 요구하는 수준이지만.
그러면 소녀시대는 어떻겠느냐? 소녀시대는 스타의 길을 가면 된다. 아이돌이 친근함으로 동경을 불러일으킨다면 스타란 압도적인 스케일로써 마음으로부터 굴복시키는 것이다. 올해 또 일본에서 투어콘서트도 한다고 하니 제대로 소녀시대만의 화려함과 강렬함을 보여줄 수 있다면 - 충분히 그럴만한 역량이 된다. 그러기 위한 프로모션도 차근차근 진행시켜왔고. 전에도 말했듯 카라가 신한류의 저변을 넓히면 소녀시대는 신한류의 레벨을 업그레이드시킨다. 상생하는 것이다.
오히려 카라사태가 카라현상이라 불리우며 일본의 팬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이유. 역시 아이돌인 때문이다. 우리와는 또 다른 아이돌문화가. 역시 슬슬 일본으로 떠나보낼 각오를 해야 할까? 아무래도 일본에서 연기데뷔도 더 먼저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솔로데뷔도 더 먼저 할 것 같기도 하고.
전에 쓴 내용을 조금 더 구체화시켜 보았다. 정작 쓰고 나니 새로운 건 없다. 거의 동어반복. 아이돌이라는 본질이 또한 그런 것이라. 아이돌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다루어봐야 할 문제겠지만 말이다. 그건 또 나중에.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일본 아이돌문화에서 데뷔초는 구르는 시기라는 것이다. 빡세게 구르며 아래로부터 서서히 끌어올려가는 시기다. 팬을 늘리고, 인지도를 높이고, 인기를 쌓아가고, 열매를 거두는 것은 시간이 지나서다. 사실 지금만도 이미 대단한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진정한 아이돌로서 완성되자면 더욱 깊숙이 일본의 대중을 카라의 일상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음반판매 배분율보다 어쩌면 더 중요할...
아, 아쉽다. 2014년까지인가? 지금 추세를 보아 하니 재계약은 물건너갔고. 과연 그때 카라가 해체되고 솔로로 나섰을 때 제대로 그 성과를 거둘 수 있겠는가. 아마 그것이 또 급하게 일을 진행한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미스터는 신의 한 수였다. 프리티걸이나 허니나 락유나. 좋기는 하지만 아마 어렵지 않았을까. 차별화는 항상 가장 중요한 것이다. 성장은 앞으로 나가는 것이지 뒤를 돌아보는 게 아니다.
일본에서의 롱런을 점쳐보며. 조속한 해결을 기대해 본다. 갈 길이 멀다. 이제 시작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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