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무한도전이 장기미션보다는 단기미션 위주로 가겠다 한 게 다른 게 아니다.
"이것저것 길게 하다 보면 힘이 빠지고 맥이 끊긴다."
한 마디로 연기자들이 소모된다. 그렇지 않은가. 몇 개씩이나 되는 미션이 동시에 진행되는데 과연 얼마나 미션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런 가운데 얼마나 예능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남자의 자격이 비난을 듣는 이유도 그것이다. 아니 원래 남자의 자격은 많은 비난을 듣고 있었다. 워낙에 프로그램 자체가 미션위주이다 보니 매번 새로운 미션을 감당하느라 병풍은 완전히 병풍이 되고 때로 힘에 부치면 다큐멘터리로 전락하고 했었다. 김성민의 에너자이저가 괜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다.
당장 청춘불패만 하더라도 농사일과 예능의 밸런스 조절에 실패하며 망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아직도 아쉬운 것이 그나마 일과 예능의 균형을 맞춰주던 것이 초기 남희석이었다. 예능을 하거나. 아니면 일을 하거나. 일을 하려면 예능이 안 되고, 예능을 하려면 또 맥이 끊기고. 게스트 오면 잡아먹히고.
물론 진정성이 통할 수 있으면 좋다. 그래서 고등학교 강연편이나 레스토랑 편에서 열심히 일하는 멤버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워보이고 했었던 것이다. 다만 과연 그렇게 예능과 미션 - 일을 병행할 수 있는 멤버들인가. 생전 처음 해 보는 일을 하면서도 한 편으로 예능에도 집중할 수 있는 역량이 그들에게는 있는가.
힘들고 위험한 길이다. 터지면 크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 무엇보다 영웅호걸 멤버들의 역량의 문제다. 제작진의 영량이기도 하다. 어제만도 1박 2일을 보는데 저 대단한 강호동마저 묵묵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최고의 시청율을 자랑하는 괴물예능마저 설악산을 오르는 미션 앞에서는 침묵하고 있었다. 영웅호걸 멤버들과 비교하면 어떤가? 일의 강도에서 차이가 있더라도 그만한 부분들을 감당항 능력이 멤버들에게는 있느가.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이다. 과연 가능하겠는가.
사실 처음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오히려 런닝맨에서 송지효는 보이지 않았고 영웅호걸의 유인나가 크게 주목받고 했었다. 홍수아도 예능에 있어 그 잠재된 가능성이 송지효에 뒤진다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일하느라 바빠 받아주는 이조차 없는 홍수아와 철저히 예능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송지효, 결과는 이제 유인나조차 병풍이 되어 묻히고 있다. 일하는 사이사이 헤프닝들이 그나마 파편화된 웃음을 줄 뿐.
철저히 캐릭터와 캐릭터 사이의 연계가 무시된 가운데 미션에 짓눌리면 나올 수 있는 게 없다. 그런 정도 되면 진짜 예능만 해도 된다. 어디 가서도 예능만 해서 먹고 살 수 있는 정도는 된다 할 수 있다. 남자 예능인 가운데서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남자의 자격이나 무한도전이나 모두 나이에서 오는 연륜과 그동안 구축된 캐릭터의 힘으로 분량을 뽑아내는 것이다. 그조차도 무한도전은 무리라 여겨 단기미션으로 돌아섰다. 남자의 자격은 원래 추구하던 방향이 그쪽이었으므로 웃음기를 뺀 다큐성 예능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영웅호걸이 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웃음은 빠르지만 감동은 느리다. 비로소 자신들에 대해 공감하고 동의하고 나서야 감동이라는 것도 있다. 남자의 자격이 그것을 인정받기까지 거의 반 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아니 아직까지도 그 부분에 대해 오해가 있고 질타를 받고 있다. 웃음은 그에 비하면 효과가 확실하다. 과연 사람들이 영웅호걸의 방식에 모두 공감하기까지 버틸 자신이 있는 것인가. 그때까지 버티며 진정성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겠다. 되겠는가.
더구나 문제가 영웅호걸을 보는 시청자층이다. 나도 그런 진정성있는 다큐성 예능을 좋아한다. 그래서 남자의 자격도 좋아한다. 다큐멘터리라고 비난하는 그 에피소드들을 오히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며 디테일한 부분들을 찾아 보고는 한다. 그러나 그런 나조차 어제의 영웅호걸은 재미가 없었다. 집배원 체험부터도 그랬다. 이건 정말 재미가 없다. 본방이 아니어서 한참을 스킵만을 연타하며 건너뛰고 있었다.
영웅호걸을 보는 시청자들이 영웅호걸에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던가 말이다. 초기 영웅호걸의 시청율이 괜찮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어떤 모습들에 열광하고 있었는가. 서로 스스럼 없이 어울리는 모습들이다. 왁자하게 떠들고 짓궂게 장난치는 모습들이었다. 여자럭비부를 찾아가고 해양경찰도 찾아갔지만 미션에 짓눌리지 않고 그저 해맑게 노는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거기에서 분량도 나왔고, 유인나를 비롯 캐릭터도 만들어졌고, 관계가 만들어지며 이야기도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진정성이나 감동은 덜하지만 보고 있으면 미녀들에 어울리는 활달함과 유쾌함이 있었다. 밝은 즐거움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음습함이 없이 밝지만 그대신 짓누르는 어두움이 있다. 생소한 일에 치여 당황해하고, 익숙지 않은 일에 놀라고 어색해하고, 그래서 일에 신경쓰느라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지난주 지지난주 스마트폰영화제작이 왜 또 사람들의 호평을 들었는가. 오랜만에 그런 억눌림 없이 그저 친한 여자들끼리 모여 영화를 만들며 수다를 떠는 모습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로 소리도 지르고, 화도 내고, 신경질도 내고, 서로 놀리기도 하면서, 민망해 하기도 하면서, 어울리는 처음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반해 어제의 방송분에서는 어떻게 하면 실수하지 않을 까 눈치나 보는 주눅든 모습 뿐. 실수하고 하는 모습도 귀엽고 제법 능숙한 모습에 감탄도 나오기는 하지만 결국 그것 뿐이었다.
물론 기존의 시청자층이란 사실 그다지 보편적이지 못한 한정된 특수한 취향과 개성의 시청자들이기는 하다. 한창 잘 나올 때의 시청율 그 이상을 기대하기란 그 폭이나 깊이가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 높은 시청율을 기록하자면 보다 보편적인 대중을 대상으로 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기자편 이래 레스토랑편까지 감동코드에 대한 보편적 대중의 호응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제까지 영웅호걸을 지탱해 오던 기존의 시청자층을 버릴 것인가. 그러면 새로이 유입되는 시청자층이 그들을 대신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무한도전도 고전하고 남자의 자격도 욕을 듣는 방식으로. 말했듯 남자의 자격이 궤도에 오르는데 무려 반 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영웅호걸은 기존의 이미지를 뒤엎고 시작한다는 점에서 더 많은 시간과 마이너스에서부터 시작하는 단점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한계까지 드러내며.
물론 제작진 자신이 감수할 부분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프로그램의 성격과 주시청층을 바꿀 것인가? 설사 기존의 시청자층이 떨어져나가며 한동안 고전을 하더라도 다시 자리잡기까지 버틸 의지와 능력이 되는가? 무엇보다 이제 곧 개편의 칼바람마저 불어닥치는데. 그래도 한 번 해볼만 하다 여겼다면 그대로 하는 것이 옳겠지. 혹시나 내가 보지 못한 가능성으로 대박을 칠 수도 있고. 다만 그것이 그렇게 생각처럼 쉬울까. 한때 해피선데이를 제외한 일요일 예능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율을 기록했다가 현재 가장 낮은 시청율에 머물게 되고 만 현실에서. 지금의 시청율이 바로 그 결과일 것을.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도박인가? 아니면 안정으로의 회귀인가? 위험하더라도 크게 먹을 것인가? 아니면 작지만 확실한 자기 롤을 지켜갈 것인가? 전자 쪽이 연기자들에게도 이미지에 플러스가 되겠지만 지금의 시청율로는 과연 얼마나 자신들을 알릴 수 있을까? 도대체 제작진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말 아직도 아쉬운 것이 그리 예능천재라며 띄워주던 유인나가 어쩌면 저렇게 조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번뜩이는 가능성을 보여주던 홍수아마저 조용하다. 서인영도 신봉선도. 이휘재도 노홍철도. 일이 바쁘니까. 그래도 열심히 일하는 진정성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일 테지만. 그러나 그것을 지금의 멤버들로써 보여주고 또한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기약이 있는가.
아쉽다. 개편도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지금 이대로 이 시청율로 개편의 칼바람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그나마 청춘불패는 10%에 약간 못미치는 시청율에 화제성이라는 것도 있었다. 공익적인 이미지도 있었다. 그에 비하면 영웅호걸에는 지금 아무것도 없으니. 이대로 사라진다고 아무도 뭐라 못하리라.
어쨌거나 짠하다. 바로 저거 찍다가 니콜이 그 뉴스를 들었던 것이었지? 저렇게 밝게 웃고 있었는데. 매사에 웃는 얼굴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한 회 촬영을 끝내 건너뛰었어야 했고. 마음이 좋지는 않다.
아무튼 기로일 것이다. 이대로 망할 것을 각오하고 한 번 질러보느냐? 좋았던 시절로 한계는 있지만 돌아가 명맥을 이을 것이냐? 그도 아니면 지금 상태에서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냐? 지난주는 그런 것치고는 너무 조용했다. 마치 막 장사를 접으려는 가게처럼.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어떤 프로그램인가. 무엇을 지향하며 누구더러 보라 만드는 프로그램인가? 프로그램의 원점일 것이다. 누구를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었는가. 누구를 위해 어떤 목적으로 만들게 되었는가.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는 미련이다. 어디로 가려 하는가. 최소한 설득은 해 주기를. 지켜보고 있다. 아직은. 유인나가 아깝고, 홍수아가 아깝고, 서인영이 아깝고, 자리를 잡아가던 이진이 아깝고, 이래서는 안되는데.
먼저 질려버리거나. 아니면 그 전에 폐지되어 버리거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아직 영웅호걸에서는 기대하는 게 많다. 보여주지 못한 것도 아직 많이 남았다. 이대로 끝내기에는 너무 아깝다.
이번주는 진심으로 재미없었다. 이게 원래 그 영웅호걸이었는가. 다시 보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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