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추억이 빛나는 밤에 - 아이가 되어 버리다...

까칠부 2011. 2. 4. 06:54

 

 

 

 

 

 

 

 

솔직히 나도 보면서 놀랐다. 설마 거기에서 구봉서가...? 아니 선생님이지. 아니 아니다. 영원한 코미디언으로써 그냥 이름을 불러주는 쪽을 더 좋아하실까?

 

다행히 나도 이 분의 코미디를 보고 자란 거의 끝세대다. MBC의 "웃으면 복이와요", 그리고 KBS의 "유모어극장", 80년대까지도 명맥을 이어가던 극코미디 프로그램이었고 그를 통해 구봉서, 서영춘, 임희춘, 방수일, 한주열, 최용순, 송해, 석현, 이상해, 배일집, 배연정, 한무, 남철, 남성남 등의 코미디언들의 연기를 직접 보고 체화할 수 있었다. 아니 "일요일밤의 대행진"에서도 토요일 오후에 하던 "폭소대작전"에서도 기라성같은 코미디언 선배들이 당시로서는 신인이던 개그맨들과 함께 연기도 하고 했었다. 어쩌면 토크개그로 흐름이 바뀌고 예능으로 대세가 결정되어지는 과정에서 시대의 흐름과 함께 점차 잊혀지게 되었을 뿐.

 

생각해 보면 구봉서 선생님 세대에서 한창 활동하던 때가 우리나라의 고도성장기와 맞물린다. 60년대 막동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거의 막내로 데뷔해서 활동하시며 대한민국의 고도성장기에 서민들의 웃음을 책임지고 있었다. 힘들고 고단하던 시절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분들로 인해 웃음을 얻고 힘을 얻었던가. 이제는 하나둘 다 떠나시고 구봉서 선생님이 가장 원로의 자리에 있으니. 그 아래 임희춘 선생님, 송해 선생님, 허참도 그렇게 보면 한참 아래다. 솔직히 허참이 나올까 기대했었는데.

 

하여튼 이렇게 큰 어른이 계시니 이홍렬이며 이성미며 나이 50에도 어느새 아이가 되어 버린 듯한 모습들이다. 할아버지 앞에 손주가 재롱피우듯, 어느새 못다 한 속내를 진솔하게 털어놓는 이경실도. 선생님 앞에서는 이경실도 여전히 나대기 좋아하는 기센 여자일 수 없다. 그저 선생님 마씀처럼 그저 착하고 예쁜 아가씨일 뿐. 이홍렬도 감히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글썽이고.

 

바로 이런 게 어른의 위치일 것이다. 어른의 존재일 것이다. 단지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단지 계셔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마음이 놓이는. 누군가 그랬지. 어느 순간 위에 아무도 없으니 외롭고 무서워지더라. 아무때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란 비록 늙고 쇠약해졌어도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가.

 

그런 대선배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도 있다. 그런 대선배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들이 있을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어느샌가 점차 잊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드라마나 영화촬영현장에서 후배의 눈치를 보며 후배의 눈밖에 날까 작은 충고조차 꺼려지더라는 이야기처럼. 선배가수의 이름을 들어도 모르고, 그분들의 음악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 없고. 무엇 하는 사람인지도. 하기는 이제는 같은 분야의 선후배보다 소속사와의 관계가 더 중요할 테니까. 조금은 쓸쓸한 풍경이 아닐까.

 

미처 챙겨보지 못했다. 그리고 뒤늦게 보면서 감동했다. 이런 게 설연휴 가장 적철한 특집이 아니겠는가. 가족이 함께 모였을 때 함께 보며 웃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세시봉이 어떻게 그렇게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아이돌보다는 그 아이돌과 함께 모든 세대가 아우를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으면. 오랜 선배들과 지금 활동하는 신인아이돌과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러나 그건 역시 스케줄 문제로 힘들겠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그것에 투자해야 할까. 몇 개씩 겹치기하는 상황에서.

 

참 구봉서 선생님도 많이 늙었구나. 그때만도 구봉서 선생님 위에 몇 분이 더 계셨다. 송해 선생님도 자료화면에서 보이듯 한참 아래연배셨다. 서영춘 선생님은 너무 일찍 가셨고. 이제는 이름조차 떠오르지 않는 분은 분들이 계셨고. 한 시대는 이렇게 저물고 또 잊혀져간다. 그래도 기억하는 후배들이 있기에.

 

"선배한테 갚으려 하지 말고 후배들에게 그만큼 베풀어."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이홍렬과 이성미와 이경실. 무릎팍 도사에서도 강호동은 그렇게 이홍렬을 깎듯이 모시고 있었다. 이경규가 나타나면 역시 개그맨 후배들은 그를 대선배로써 공경한다. 굳이 선배라고 무한도전에서도 후배 개그맨들을 챙기고 이끄는 모습들 역시. 이번에 MBC에서 새로 시작하는 코미디프로그램에서 정준하 등이 출연료를 양보해가며 출연을 결정했다고 하지. 언제고 그들도 구봉서처럼 진심어린 절을 후배들에게 받을 날이 있으리라. 그때는 또한 나도 그 시절을 추억하고.

 

시간을 생각하며. 시간 속에 쌓이는 기억들을 떠올리며. 기억은 쌓여 흐르며 사람과 사람을 잇고 그렇게 시간은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홍렬도 재미있었고, 이성미도 재미있었고, 김희철은 대선배들마저 감탄할만한 감각이 돋보였고, 문득 떠오르는 추억이 있어 참으로 빛나던 시간이었다.

 

재미있었다. 이번 설연휴 가장 설이라는 의미에 어울리는 프로그램이 아니었을까 한다. 오랜만에 뵐 수 있었던 구봉서 선생님은 부디 건강하시기를. 즐거운 시간이었다.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