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창 뜨거웠던 디워 논쟁에서 내가 어떤 슬픔마저 느꼈던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어째서 영화를 이야기하는데 국위선양이 나오고, 외화벌이가 나오고, 국민이 나오는가.
황우석 때도 마찬가지였다. 줄기세포를 둘러싼 경제적 이익의 이야기들. 민족적 영광에 대한 이야기들. 그것이 갖는 학술적 가치나 윤리적 의미에 대해서는 깡그리 무시되었었다. 얼마나 타당하고 가치가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철저히 부정되었다. 도대체 과학은 어디에 있는가.
차라리 내가 보기에 좋은데 뭔 상관인가 하는 것은 귀엽다. 그것도 하나의 감상이고 평가일 테니까. 영화를 보고 재미있었다. 좋았다. 비평가들의 전문적인 비평만이 아니라 이 또한 영화에 대한 한 비평일 수 있는 것이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비평일 테지만.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국가가 나오고, 국민이 나오고, 국가적 자존심 이야기가 나오고, 경제적인 이득과 외화벌이가 나오고, 헐리우드와의 경쟁이 나오고, 심지어 아예 영화를 보지도 않을 것이면서 단지 관객수 늘려주려 표를 공동구매하는 현장마저 보았었다. 무언가?
당장 한류에 대한 태도에서도 나타나는 모습들이다. 외화를 얼마 벌어들이고, 일본에서 얼마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그것이 국가적으로 얼마나 이익이 되고, 민족적으로 얼마나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되고, 그렇다 보니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시시콜콜 일희일비하며 의미를 부여한다. 도대체 카라에 대해 전부터 얼마나 관심이 있었다고. 어떤 음악을 하고 어떤 활동을 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어떠한 거대서사를 완성짓는가가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얼마나 돈을 더 벌 수 있는가.
이번 카라 사태에서도 3인 쪽을 비난하는 입장이라는 게 한결같았다. 카라를 아껴서가 아니었다. 카라라는 아티스트와 그들이 보여주는 무대를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한류에 해가 될테니까. 한류에 해가 되어 국가적으로 손해가 올 테니까. 국가적 이익을 위해서라도 양보하라. 타협하라. 그리고 야단치고. 화를 내고. 심지어 증오까지 하고.
결국에 얼마나 돈이 되는가. 얼마나 거창하게 그럴싸하게 보이는가. 작품 그 자체에 대한 존경따위는 없다. 아티스트 자신에 대한 존경도 없다. 그들에게 충분한 예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자각 자체가 없다. 하기는 오죽하면 아이돌 팬조차 자기 아이돌이 더 많이 1등을 해야 한다며 이제까지의 노선을 바꿔야 한다 주장하겠는가. 그들이 보여주는 무대가 아니라 단지 1등을 더 많이 하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다. 음악도 아니고 춤도 아니고 다른 무엇도 아니다.
소속사에서 소속연예인을 홀대하는 것이나, 팬마저 단지 대상으로서 연예인을 소비하려는 것이나, 단지 1위를 몇 번 하고 돈을 얼마를 벌고, 얼마나 더 유명하고, 그래서 흘러간 원로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비웃음과 무시를. 아무리 오래 음악을 하고 그 평가가 높아도 지금 당장 인기 많은 아이돌 앞에 서면 작아질 뿐이다. 정작 영화의 내용을 만드는 것이 시나리오 작가일 텐데도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시나리오 작가를 단지 이용하려고만 들 뿐이다. 정당한 댓가조차 지불하지 않고. 소속 연예인을 단지 인맥을 위한 성접대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나 그것이 뭐가 다를까. 유진 작이라는 천재적인 음악인을 단지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긴 것과.
하기는 그러니까 자기가 보는 프로그램 시청율 가지고도 서로 그리 싸우고 하는 것일 게다. 아이돌 팬들은 누가 더 음반이 팔렸네, 누가 더 1위를 많이 했네. 원래 졸부들이 비싼 그림을 거실에 걸어놓는 이유는 그림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유명한 화가의 유명하고 비싼 그림인 때문이니까. 오로지 성과로서만 판단하고 가치를 결정하는 대중의 정서란 어쩌면 고도성장기의 흔적인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IMF도 있고.
단지 영화관계자만의 문제인가? 영화제작사만의 문제일까? 전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창작이라는 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인 줄 안다. 그냥 아무나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전혀 생각없이 아무런 준비 없이 아이디어 하나만 가지고 뛰어드는 사람도 많다.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돈이 된다니까 너도나도 기웃기웃기웃 전문성도 없고 그렇다고 심미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치 부동산투기하듯.
그렇게 가능성과 재능을 인정받았다. 더구나 그래서 무려 5개나 되는 시나리오를 팔았다. 그러면 그만한 댓가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만일 그래서 영화가 실패했어도 그것은 시나리오를 보는 눈이 없는 제작자의 탓이지 시나리오 작가에게 탓을 돌릴 일은 아닌 것이다. 차라리 팔리지라도 않았다면. 아예 팔리지 않았다면 일찌감치 포기를 했겠지. 시나리오가 영화화되는 것이야 제작자가 책임질 일인데 왜 그것까지도 시나리오작가가 떠안아야 하는가.
하기는 어디 시나리오작가만인가. 조연들. 스태프들. 제작현장에서 직접 뛰는 무수한 사람들. 물론 그 모두가 스타배우나 감독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최소한 정당한 댓가를 받고 자기가 한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도록 해줄 수는 없는가. 그러나 그것이 안된다는 것이. 아이돌이니까 돈을 밝히면 안 된다. 아이돌이 정당한 댓가를 요구하는 자체가 순수하지 않은 것이다. 마찬가지. 제대로 판단할 능력이 되지 않는데 그에 대한 댓가라도 제대로 계산해 지불할 수 있을까? 뭐가 뭔지도 모르고 오로지 제 욕심만 챙기기 바쁠 뿐이다. 혹은 국가나 민족, 사회, 정의, 경제...
결국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진다. 예술은 곧 돈이다. 예술이란 곧 돈으로 계량될 수 있다. 대중예술은 그렇다. 돈이 되어야 대중예술이고 인기가 있어야 대중예술인이다. 돈도 안 되고 더구나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따위. 그래서 심형래의 헐리우드 언플이 먹혀든 것이었다. 영화가 아닌 국가주의를 상징하는 무엇으로서. 어떤 수단이고 대상으로서만 인식된다. 그런데 그 앞에 작가고 작품이고 어디 보이겠는가. 돈이 보이고 인기가 보이고 어떤 목적이 보인다. 그 앞에 하찮은 시나리오 작가따위. 시나리오 따위.
예술을 계량하려고. 작품을 줄세우려고. 대중은 아티스트의 머리 위에서 놀려 하고 장사꾼은 단지 그것을 이용하려고만 하고.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단지 수단이다. 대상이다. 오로지 그를 전제해서만 예술도 작품도 아티스트도 존재한다. 어떠한 존중도 존경도 없다. 오히려 사양하고 겸손해야 한다. 복종해야 한다. 대중이 시키는대로. 자본이 바라는대로. 어떤 경우에도 그를 위해서만. 그깟 것들. 어디나 마찬가지다. 얼마든지 있다. 어떤 작품이든 창작자이든. 그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소모되어 버리는 것이.
아무튼 그래서 이 블로그에서도 내가 가장 화를 내는 경우란 대개 그에 대해서일 것이다. 아티스트에 대한 제대로 된 예우가 없을 때. 그 노력과 재능만큼의 존경과 존중이 없을 때. 나는 그런 것 굉장히 싫어하거든. 남다른 재능이 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얻는 만큼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충돌하는 부분이다. 나는 그런 것 용납 못한다. 내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부분 가운데 하나다.
도대체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과 연예인이 무슨 상관인가? 그리 생각한다면 너무 단편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연예인은 있으면 돈이나 많이 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 역시 인기와 돈으로 계량된다. 제대로 인격으로조차 취급되어지지 않으면서. 시나리오 작가의 작품화되지 못한 작품들처럼. 공인이란 공적인 개인이기에 공인公人인가? 인격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공인空人인가?
영화제작자의 횡포에 생활고로 끝내 죽음에 이른 시나리오작가나. 대중의 폭력에 심지어 죽음까지 생각하는 연예인이나. 지금도 대중의 폭력 앞에 노출된 무수한 사람들이. 그에 전혀 무감각한 현실이라는 것이. 누구도 자각하지 못하는 그런 자신들이란 것이다. 바로 지금의 그 모습들이다.
한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아야 하는 사람들, 특히 그 가운데서도 무언가를 생산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무형의 기쁨과 행복을 생산해 들려주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쩌면 채 피우지 못한 그 재능과 가능성들에 대해서.
지금이라도 창작에 임하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평가와 대우가 돌아가기를. 더 이상 이런 억울한 안타까운 일들이 없도록. 그다지 기대는 되지 않지만. 수단이 아닌 목적임을. 대상이 아닌 주체임을. 오늘을 슬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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