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무한도전의 런닝맨화인가? 지난주에는 런닝맨이 무한도전이 되어 있더니만. 아무래도 MC가 유재석, 더구나 하하까지 있다 보니. 문득 아이스링크에 멤버들이 늘어서 있는 것 보고서 런닝맨인가 했었다. 지난주 런닝맨의 편가르기는 마치 무한도전을 보는 듯했고.
라인의 부작용이다. 그보다는 특정 MC가 너무 많은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때로 출연자까지 겹치고 나면 이게 그 프로인지 그게 이 프로인지 헷갈리는 경우마저 있다. 정말이지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오히려 런닝맨보다 더 런닝맨스러웠던 것이 이번의 무한도전이라 할 것이다. 바로 무한도전을 처음 보았을 때 이런 포맷을 기대했던 것이었는데 말이지.
길의 역할과 존재가 두드러진 회차였다고 할 수 있다. 평균 이하라던 무한도전. 그러나 길은 그 가운데서도 한참 미달이다. 겁많고, 몸 둔하고, 거기다 몸치고, 한때 싸움도 좀 했다더니만 이건 뭐... 몸컬링할 때는 아예 바로 앞에서 자빠지는데 그냥 쓰러지는 줄 알았다. 그런 것도 있어야 예능이 재미가 있다. 길과 하하와 노홍철의 연이은 엉덩이 들이받기도 우스웠었고.
하지만 역시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스키점프대 올라가기였다. 깃발뽑기. 수십미터 높이의 가파른 경사, 그것도 눈으로 뒤덮인 비탈을 올라가는 데 보는 내가 다 조마조마할 지경이었다. 원래 사람은 겁을 먹으면 몸에 쓸데없는 힘이 들어가고 체력도 일찍 떨어진다. 길은 내가 보기에 아직 애다. 음악을 하는 사람답게 어린아이 같은 데가 있어 에고가 강하다. 그만큼 몸을 사리고 이런 미션에서 그 한계를 드러낸다. 그나마 처음 오를 때 끝까지 오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이젠마저 풀려버려서. 도전이 계속될수록 힘은 떨어지고, 힘이 떨어질수록 겁도 많아지고, 겁이 많아지니 다시 힘이 떨어지고... 그나마 끝까지 버티고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팀"이라는 의리 때문일 것이다. 피해를 줄 수 없다.
"나를 잡아!"
"같이 떨어져요."
"왜 못 믿어?"
"위험해요!"
하기는 줄에 매달려 길을 지탱해주려는 유재석의 마음이나 혹시나 피해를 끼칠까 자기 힘으로 올라가려는 길의 마음이나 뭐가 다를까? 그렇게 지친 몸으로도 몇 번을 다시 도전하고, 끝내 미끄러져 굴러떨어졌다가도 다시금 기어오르려 하고, 한심해 보이지만 그런 게 또 팀이니까. 군대라면 고문관이라고 포기하고 내버리겠지만 군대가 아니기에 그래도 끝까지 함께 느리더라도 같이 간다.
다만 거들겠다는데 대책없이 사양만 하고 있는 것도 민폐는 민폐다. 함께 가야 할 때는 도움은 줄 때 받는 것이 오히려 예의일 수 있다. 도와줄 수 있다고 손을 내미는데 미안하다고 사양만 해봐야 시간만 끌고 상황만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역시 길에게 아직 아이스런 부분이 남아 있다는 이유다. 사회성이 부족한 것일까? 그런 때는 자기가 미안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힘들어도 유재석의 도움을 받아 조금이라 빨리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최선이었을 텐데. 어차피 할 것이면 빨리 끝내는 쪽이 오히려 상대를 돕는 길일 것이다.
유재석의 리더십이 정말 놀라웠다. 노홍철까지 올라오고 가장 체력적으로 시원찮은 박명수, 정준하, 길만이 남아 고전하고 있자 자기가 스스로 줄을 잡고 내려가 조금이라도 다른 멤버들이 자기를 잡고 수월하게 줄을 잡고 올라갈 수 있도록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미끄러운 눈비탈에서 몸을 지탱하며 줄을 잡고 올라오는 멤버들을 버티는 것이. 그리고 심지어는 길이 중간에 지쳐 멈춰서자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가 올라와서는 뒤에서 밀어 올리고. 그리고 다시 줄을 잡고 끌어주고. 줄을 잡고 나니 뒤에서 밀어준다.
군대 가도 그런 고참들 있었지. 두 가지가 있다. 결국 나중에 자기가 욕먹으니까 군장을 대신 들어주는 대신 욕설과 매질을 일삼는 고참과 자발적으로 군장을 들어주며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참. 고문관이니까 버리고 가는가, 고문관이니까 더 배려하고 끌고 가는가. 마지막에는 모두가 함께 간다. 그게 바로 리더십일 것이다. 가장 힘들고 가장 위험한 곳에서는 항상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나중에. 그렇기 때문에 나이와 상관없이 리더는 리더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위가 높다고 모두 리더가 될 수는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자막도 그럴싸하다. 마치 전쟁드라마처럼. 아마 PD도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소대원의 짐을 대신 짊어지고, 총탄이 빗발치는데 직접 참호를 뛰쳐나와 신병을 구해 올라가고, 유재석의 모습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길은 그런 유재석에 기대어 그래도 폐를 끼치기 싫은 어린 신병. 과연 길은 언제 일병이 되고 상병이 될까. 하지만 또 그런 길이 있기에 가능한 부분도 있다. 마지막은 어쩌면 짜증스러웠을 테지만 그래서 마지막 한 사람을 기다리며 함께 오르는 모습이 느낌이 있었다. 감동코드의 예능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아니라면 길에 의해, 그리고 유재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드라마에 느끼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예상하고 그같은 게임을 구상했던 것일 수도 있겠고. 잘나지 못해서 만들어지는 감동과 재미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아쉽다면 맨살을 얼음에 대고 하는 윗몸일으키기의 가학성과 먹을 것 받기 게임에서의 상품의 기만이었을까? 가학성이야 웃음의 한 요소이고 하니 그렇다 치더라도, 기껏 게임을 시켜놓고는 상품으로 제시한 먹을 것이 아닌 가짜가 나오고 하는 것은 보는 사람마저 힘빠지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그나마 멤버들이 그것을 잘 살려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도대체 게임에서 상품을 가지고 사기치는 게 어디 있는가. 게임이 주목적인가? 아니면 상품으로 사기쳐서 멤버들 당황스럽게 하는 게 주목적인가? 더구나 게임을 주로 하는 포맷에서. 맥을 끊는 부분이었다. 너무 의도가 과했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 아마 최근 무한도전 가운데 가장 실망스러웠던 부분이었다.
어쨌거나 역시나 무한도전다운 웃음이 있었고, 무한도전 멤버들이 있기게 가능한 재미가 있었다. 아무래도 부상 때문인지 혼자 게임에서 배제되어 심판 겸 MC를 맡은 정형돈과 전혀 협력하지 않고 오히려 방해를 놓는 멤버들, 그리고 마침내 유재석은 MC의 자리마저 빼앗고. 기껏 처음으로 얼음을 깨고서도 엉뚱한 곳에 이름표를 갖다 건 정준하나 그런 정준하를 무시하며 박명수에게만 특혜를 주는 정형돈도. 떡 대신 상품으로 고무공이 나왔어도 그것을 살리는 깨알같은 상황연기 역시. 라면은 아마 덜 익었던 모양이다.
도대체 왜 내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캠페인을 예능을 통해 봐야 하는가 의문이기는 하지만 겨울에 어울리는 에피소드 아니었을까. 게임들도 약간의 에러는 있었지만 재미있었고, 그것을 살리는 멤버들의 실력은 무르익었고, 마지막의 뿌듯한 감동까지. 가는 겨울이 아쉬워지는 회차였다. 드라마틱한 재미가 있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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