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한 여자를 사랑했다. 그리고 친구도 그 여자를 사랑했다. 마침내 친구와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사랑을 쟁취한 첫날밤, 그러나 남자는 어떤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림자였다. 날카로운 칼날 모양의 그림자였다. 남자는 생각했다.
"친구가 앙심을 품고 나를 해꼬지하고자 숨어 있구나."
그리고 남자는 그길로 도망쳐 수십년을 객지로 떠돌게 되었다. 아마 친구에 대한 미안함과 차라리 이대로 그 여자가 친구와 함께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수십년을 떠돌고 마침내 죽을 날이 가까워 고향을 찾았을 때, 그러나 그의 집에는 그가 떠날 당시 모습 그대로 그의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첫날밤조차 치르지 못한 모습 그대로 아내는 다소곳한 모습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임자...!"
그가 방안으로 들어서자 아내가 입을 열어 물었다.
"어찌 이제서야 오시는지요?"
놀라고 당황하면서도 남자는 떠듬떠듬 대답했다.
"그... 그날... 그 친구는...?"
아내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친구라 하심은...? 그날 이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아내의 눈을 쫓아 방문으로 눈을 돌렸을 때 그는 볼 수 있었다. 창호에 비친 대나무 그림자를. 어이없게도 그는 대나무 그림자를 친구가 칼을 겨누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그는 늙었고 아내는 점차 바래더니 백골만 남아 삭은 신부복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한때의 착각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수십년의 시간을 그렇게 먼지로 날려버린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 사람은 결코 근거를 가지고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결론을 먼저 내리고서 근거를 찾는다. 이 블로그에서도 그러지 않던가? 본문에 뻔히 있는 내용임에도 지레 판단하고는 반론이랍시고 리플로 달고 그런다. 왜이겠는가? 읽기도 전에 이미 결론은 내려져 있고 읽는다는 것은 그 결론을 확인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저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저 그림자를 보았을 뿐이다. 아마 조금 더 찬찬히 살펴보았다면 그것이 대나무 그림자였음을 알았을 테지만 그러나 남자는 지레 그것을 칼이라 판단함으로써 있지도 않은 친구마저 만들어내고 있었다. 친구와 아내와의 사이에 대해서도.
내가 네티즌이라는 종자들을 경멸하는 것도 그래서다. 뭔 소문이라도 떠돈다. 이러이러한 게 있다더라... 근거라고 내미는 것들을 보면 참 이걸 뭐라 해야 할 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기는 하지만 확정해 결론을 내릴만한 것들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그것만으로 결론을 내린다.
"원래 이런 거야!"
"이게 사실이야!"
그리고는 다그친다.
"말해!"
"대답해!"
"자백해!"
만일 당사자에게서 나온 대답이 자신들이 내린 결론과 다르면 바로 화를 낸다.
"거짓말!"
"이제는 거짓말까지!"
더 웃기는 건 그 순간 바뀌는 말이다.
"그런 짓을 한 건 상관없는데 거짓말을 했으니 더 나빠!"
"거짓말을 한 건 용서할 수 없어!"
그러면서 나오는 말, 대중, 국민, 네티즌... 웃기지도 않아서.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사실"대로 자백하면 어쩔건데? 그러면 용서해 줄텐가?
그들의 어이없음을 보여주는 실례가 바로 박재범 사건이었을 것이다. 슬랭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박재범이 썼다는 글에 대해 번역해서는 원래 그런 뜻이 아니라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자 하는 말이,
"왜 우리가 슬랭까지 알아야 하는데?"
"왜 슬랭까지 알아가며 그 뜻을 이해해야 하는데?"
참고로 예전 이순신 관련 낚시글이 한창 떠들썩할 때, 그 낚시글을 펌질한 한 네티즌에게 누군가 그 사실을 지적한 적이 있었다.
"이거 낚시인데요..."
그러자 그 네티즌 왈,
"낚시면 어때? 시원하기만 하면 됐지?"
근거라는 건 이미 상관없다는 것이다. 먼저 결론이 있고, 그에 대한 믿음이 있고, 그를 충족할 어떠한 증거들 뿐. 설사 조작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결국 그것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 뒤로도 그들은 그렇게 떠든다.
"저 인간은 원래 이런 인간이었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고 밝혀도?
"그걸 믿냐?"
사실 그래서 나는 네티즌들이 사실이라 들이미는 어떠한 근거들이나 그 주장들에 대해 잘 믿지 않는다. 과연 그것이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한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믿음에 불과한 것일까? 100% 확실하지 않은 한 가능성에 불과한 것이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는 것인데.
결국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던가 말이다. 말도 안되는 루머로, 아니 설사 사실이더라도 당사자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서.
무슨 심각한 범죄라도 된다면 모른다. 기껏해야 사생활에 관련된 것. 내게 직접적인 영향도 없고 피해도 없는 알아서 앞가림할 일들 따위. 알아서 뭣하고 밝혀서 뭣하고 욕해서 뭣하는가? 그런데도...
도대체 그들이 바라는 건 무얼까? 정의의 실현? 도덕과 윤리의 사수? 아니면 죽음? 너같은 건 그냥 죽어라일까? 죽거나 아니면 사라지거나. 그래서 그들이 얻는 건 무얼까? 그런 주제에 누가 크게 상처를 입고 죽었다거나 하면 지들이 먼너 나서서 까대기 바쁘지.
참 오지랖들도 넓다는 게... 그래서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정의로운 놈들만 다 뒈져도 세상은 100배는 더 정의로워질 것이다. 결국 세상을 오염시키는 것은 그런 쓸데없는 오지랖들이므로.
내가 너무 쿨한 건가? 아니면 그놈들이 멍청한 건가... 아무튼 그래서 나는 네티즌들이 뭐라뭐라 떠들기 시작하면 먼저 눈부터 돌리고 귀부터 닫고 본다. 기꺼이 병신취급하며. 비웃으며. 참 하찮은 것들이라.
하여튼 뻑하면 하는 말 네티즌, 네티즌... 결국 몰리면 나오는 말, 인터넷 여론, 인터넷 여론... 심지어는 국민 어쩌구, 대중 어쩌구...
내가 또 싫어하는 말이 하나 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거든?"
꼭 순정만화에서 찌질한 캐릭터가 주인공 괴롭히면서 내뱉는 말이다. 참으로 어울리는 말이랄까?
진짜 욕이라도 한 바탕 거하게 해주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고... 즐거운 인터넷 생활에 가장 해악이 되는 것들이다. 세상의 암. 종양. 쓰레기. 재활용불가능 방사성쓰레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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