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렇다. 개그맨은 웃기면 용서된다. 음악인은 음악만 좋으면 된다. 배우는 연기만 잘하면 다 좋다. 더구나 명분도 있고 입장도 있다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개그맨에게도 음악인에게도 배우에게도 "연예인"을 연기할 것을 요구한다. 워낙 사회가 각박한 탓일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순수한 인간상을 연기할 것을 요구한다. 한 점 흠결 없이 옳고 바르게. 개인도 없고 이기도 없고 욕망도 없고 욕구도 없고.
아이돌은 그나마 캐릭터다. 이미지다. 아이돌이란 대중의 판타지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대중은 판타지를 소모하고 그 판타지가 효용을 다하면 아이돌은 사라진다. 과거 아이돌의 연령상한을 20대 초반으로 잡았던 것이 그래서다. 그때까지가 아이돌로서 순수를 유지하기에 가장 좋은 나이니까.
착해야 한다. 성실해야 한다. 밝아야 하며 예의바르고 싹싹해야 한다. 개성이 있으되 모나지 않고 짓궂기도 하지만 악의가 없어야 하고 무엇보다 어린 나이와 그에 어울리는 활기가 있어야 한다. 카라의 생계형 아이돌이라는 캐릭터가 의미하는 바도 어려운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했다는 게 있으니까. 함께 똘똘 뭉쳐서 어려운 시절을 극복했다고 하는 극적인 드라마가 그곳에 있었다. 대중은 그러한 드라마를 소비한 것이었고, 멤버들의 캐릭터를 소비한 것이었고, 멤버들 사이의 가족같은 관계를 소비한 것이었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돌의 원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돌에게 있어 구속이기도 하다. 괜히 소속사에서 아이돌을 한데 모아 놓고 기숙사생활시키듯 숙소생활 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니까.
박규리도 아마 예능 등에 나와서 말했을 것이다.
"사람들의 기대치가 있으니까..."
그래서 일상도 관리한다고. 그게 바로 프로정신이다. 아이돌이지만 그조차도 아티스트로 인정하는 것은 스스로 아이돌로서 자신을 관리할 줄 아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중의 욕구 위해 판타지를 유지하기 위해 아이돌도 기획사도 미디어도 함께 노력한다.
그런데 거기에다 대고 말한다.
"우리도 사람이야!"
누가 뭐라는가? 다만 사람이 되려는 순간 판타지는 깨진다. 왜 사람들이 카라 3인에 대해 차갑게 돌아서고 있는가. 더구나 한국사회는 더욱 여성에 대한 이상화의 수준이 높다. 여성을 대상화하다 보니 여성연예인에 대해서도 한결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한다. 그것이 과연 도덕적으로 정당한가를 떠나 그만큼 이상화된 대상으로써 여성연예인을 소비한다. 하물며 아이돌이다.
물론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한 것처럼 사실이 밝혀지고 나면 모두가 인정할 수 있고 카라 자신도 웃을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깨져버린 판타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항상 열심히 하고, 항상 최선을 다하고, 순수하고, 밝았던, 더구나 우정이라는 코드마저 깨져나가려 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카라 5명의 사이마저 의심하고 있다. 그동안의 친한 모습을 보여주던 것이 가식은 아니었는가.
재판에서 이긴다고? 이길 수 있다고? 그럴만한 확실한 근거가 있다고? 그러면 뭣하는가? 판타지는 깨지고 요정은 인간이 되어 버렸는데. 그리고 신성이 깨어진 만큼 분노하는 여론이 있다. 이유가 정당하고 재판에서 승리했다고 과연 대중이 다시 카라를 - 정확히는 카라 3인을 호의적으로 보아줄까? 재판 결과가 어떠하든 카라는 10중 8,9는 깨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연기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아이돌 활동중에도 이미지를 위해 연기가 필요하듯 기왕에 기획사의 부당함과 싸우려 해도 그에 걸맞는 캐릭터 연기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철저히 피해자로써.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기획사의 부당한 대응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렇게까지 올 수밖에 없었다. 판을 깨기 전에 먼저 피해자 연기를 통해 분위기를 조성했으면 어땠을까? 먼저 DSP를 철저히 악당으로 만들고 도저히 어쩔 수 없어서 여론에 등떠밀리듯 소송을 한다.
아니 그것까지도 필요 없다. 다섯 명이 함께였어도 사정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다섯 명이 함께 한 마음이 되어 소속사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대항한다. 차라리 연예계 활동을 그만두더라도 다섯 명이 하나가 되어 현실의 부담함을 바로잡으려 일어선다. 그랬다면 확실히 소속사는 여론의 지탄을 받았어야 했을 것이다. 최소한 팬들은 단합하여 카라의 편에서 힘을 실어주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것은 DSP에게도 더욱 압력이 되었을 것이고.
명분이라는 게, 절차라는 게 괜히 필요한 게 아니다. 그것도 하나의 연기다. 내가 이만큼 열심히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는. 내가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개인적인 어떤 욕심만을 채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부분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런데 상황이 어쩔 수 없이 나를 이렇게 내몬다. DSP가 그것을 잘하고 있다. 지금 모습만 봐서는 오히려 DSP가 피해자다.
과연 재판에서 이기고 카라 3인은 원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 일단 DSP에 남은 2인과는 다시 합쳐지기 어려울 것이다. 소속사만 갈린 채 카라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이어간다? 과연 DSP가 그런 조건을 받아들이겠는가? 더구나 그러고 DSP를 나가 다른 기획사로 옮겨가 버리면 대중의 시선은 어떠할까? DSP와의 소송에서 이겼으니 옳구나 전처럼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줄까? 팬들은 어떨까?
지금 중요한 건 누가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다. 아예 연예계 생활을 접을 것이 아니라면 옳고 그르고를 따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대중에 어떻게 보이느냐. 대중에 어떤 이미지로 보여지느냐. 그리고 재판 이후 어떤 모습으로 활동하려 하는가. 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여론의 흐름은. 팬들의 움직임은.
팬을 믿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수많은 카라보다 더한 충성도 있고 거대한 팬들이 있었다. 그래서 아마 그 팬을 믿고서 팀을 깨고 나온 멤버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조아이돌 HOT가 증언하듯 팀이 깨지고 나면 더 이상 그들은 아이돌이 아니다. 팬도 팬이 아니다. 판타지를 더 이상 충족할 수 없을 때 팬들도 떠나간다. 지금이야 앞으로도 변함없이 팬으로 남아 있을 것 같이 말하지만 그것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그보다는 대중을 봐야 한다. 여론을 봐야한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답답한 노릇이다. 대중이나 여론과 옳고그름을 두고 싸우는 것은 나같은 블로거나 하는 짓이다. 사실 블로거들도 어지간해서는 대중과 싸움질같은 것 하지 않는다. 대중의 여론에 편승하려 든다. 그것이 편하니까. 거스르는 것이 없으니까. 그런데 하물며 아이돌이 대중을 가르치려 들고 따지려 들고 싸우려 들고.
이겨도 절대 이기는 싸움이 아니다. 설사 이기더라도 결코 이겼다고 할 수 없는 싸움이다.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과정이 그렇다. 그런데도 아직도 싸움의 결과에 집착한다. 누가 옳고 그르고.
항상 느끼는 것이다. 주위에 조언해 주는 사람이 없는가? 진심으로 카라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전략적으로 조언해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가 말이다. 팬이야 자기들만 있으면 된다고 하지. 어떤 상황에서도 지지해주겠다. 그런 건 조언이 아니다. 위로지. 위로는 결코 조언이 될 수 없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도 가장 호의를 가지고 지켜보던 팀이었는데. 베이비복스는 이런 식으로는 깨지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좋아하는 팀이어서 이런 식으로 처참하게 깨지는 것이리라고는. 좋아지게 된 것이 오히려 미안하기까지 할 정도다. 나 때문인가 싶어서.
팬들이야 무작정 카라에게 함부로 하는 DSP가 밉겠지만 현실이 가리키는 바는 하나다. 이대로는 소송에서 이겨봐야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끝이다.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과연 이런 말을 한다고 들어먹을까는 모르겠지만. 고작해야 2천 명 남짓 들어오는 약소블로거따위. 더구나 평판도 그다지 좋지 못할 텐데.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다. 말하지만 내게 있어 카라의 멤버는 카라이기에 의미가 있었다. 여전히 카라이고자 할 때는 개인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개인이란 없다. 그것을 다짐해두려 한다. 결과만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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