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어떤 유쾌한 암투병기...

까칠부 2011. 3. 7. 08:29

"기러기 아빠라 혼자 있으니까... 아내에게 이야기하기가 너무 미안한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인데, 그 자체가 너무 미안한 거야. 내가 내 몸을 건사 못한 거니까. 미안하고... 책임이 없는 놈이 되어 버리고, 가장으로서..."

 

아마 남자의 자격과 암특집과의 관계를 가장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이 아니었을까?

 

작년에도 건강검진을 하면서 이경규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혹시라도 이상이 있다고 나오면 남은 가족은 어떻게 하는가?"

 

김태원이 암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말한 이유도 결국은 가족이었다. 자기가 떠난 뒤 남은 가족들에 대한 생각을 가장 먼저 하게 되었다고.

 

"필리핀에 가고 싶다고... 애들 보고 싶다고... 마지막에 생각나는 건 가족 밖에 없잖아요."

 

SBS의 월요일 심야버라이어티 <밤이면 밤마다>에 출연해서도 김태원은 그리 말한 적 있었다.

 

"나 자신의 존재가 가족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다."

 

남자가 남자로서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누구를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누구를 때리고 빼앗고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외부로부터 가족을 - 아내와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다. 집안에서 가장이란 다른 아무것도 없어도 단지 그 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어야 하는 것이다. 건강은 따라서 남자가 남자로써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건강하지 않고서 - 오히려 걱정을 끼치면서 어찌 가족을 지킬 수 있는가 말이다.

 

김태원은 말한다.

 

"우리 나이쯤 되면 자기 자신에게 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돈이나 명예나 그런 것보다는 건강에 대해서..."

 

하지만 또 말하고 있다.

 

"누군가 때문에 내가 죽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이 한 사람 쯤은 있어야 될 것 같애. 그런 사람마저 없으면 쉽게 놓을 수 있는 게 성인들의, 어른들의 생각이거든."

 

이기가 이타가 되고 이타가 이기가 된다. 지독히 이기적이 됨으로써 이타적이 되고, 이타적인 것이 가장 지독한 이기가 된다. 그것을 사랑이라 말한다. 오히려 수술을 받으러 들어가는 김태원은 방귀로 인해 스타일을 구길 것을 걱정하는데, 남은 아내 이현주씨나 이경규, 김국진, 이윤석 등이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마는 것처럼.

 

그래서 암이라는 소식을 듣고 수술을 앞두고서도 아무 문제 없다는 양 웃고 떠들 수 있었던 것일 게다. 서로에 대한 신뢰이며 그리고 배려다. 서로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서로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낙천적으로 상황을 보기 위해. 마치 시술을 받으러 가며 김태원이 이경규에게 건낸 담배처럼. 반드시 돌아와 이 담배를 다시 피우겠다. 이경규의 거친 언사는 그런 김태원의 마음씀씀이에 대한 고마움과 걱정이었을 것이다.

 

자기 건강에 대해 이기적이 되라는 것은 그로써 걱정하는 주위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켜야만 하는 가족들. 그동안 쌓인 인연들. 관계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 때문에 죽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절박함은 더욱 이기적으로 자신을 지키게 만든다.

 

아름답다는 것은 아마 그런 것일 게다. 오히려 김태원의 암을 걱정하는 것은 주위 사람들이다.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것도 아내와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 동료들,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이다. 그런 한편으로 김태원이 저리 태연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한 가족들이, 친구와 동료들이 있을 테니까. 사소한 농담 한 마디가, 짓궂은 장난 하나가 그래서 더없이 정겹고 따뜻하다. 괜히 김태원이 시술받는 동안 울었던 것이 창피하다는 이경규의 말처럼.

 

왜 <남자의 자격>인가. 그리고 왜 암특집인가. 항상 느끼는 거지만 김태원은 드라마를 만들 줄 안다. 아니 삶 자체가 드라마다. 아무리 초기암이라도 스스로 암에 대해 충격을 받고 슬퍼하거나 두려워만 했다면 그저 뻔한 신파극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 전에 그는 가족을 믿었고 동료들을 믿었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했고 동료들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했다. 그래서 주위에서도 기꺼이 웃고 농담도 할 수 있었고 조용히 눈물도 떨굴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남자에 대해서. 가장에 대해서.

 

자기를 위해서 하라는 것이 아니다. 물론 자기를 위해서다. 그러나 자기를 위하는 것이 가족을 위하고 주위를 위하는 것이다. 이기적이 되는 것이 가족과 주위를 위한 이타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 건강을 지키는 것은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무튼 참 유쾌한 암투병기였다. 눈물이야 있었지만 그렇다고 비극적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라기보다는 걱정하는 마음에서 오는 격동의 눈물이었다. 암이니까. 암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충격이었고 두려움이었던 것이지 병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너무나 작은 암이었으니까. 자칫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었다 할 정도로 초기의 너무나도 사소한 암이었다. 혹시라도 잘못된 확률이 아주 낮은, 더구나 내시경시술로 위를 절제하지 않아도 간단히 치료가 끝날 수 있었다. 식도 근처에 암이 발병하면 위암의 경우 위 전체를 들어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어려운 수술이라고 했는데 결과도 좋았고 경과도 좋았고.

 

오죽하면 자막으로 '선물'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었다. 김태원 자신도 그것을 '행운'이라 표현하고 있었다. 담당의도 운이 좋았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운이었을까?

 

"2011년 들어서 가장 사랑하는 단어는 내시경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 않겠다는 것을 억지로 설득해서 내시경검사를 받게 한 <남자의 자격> 신원호PD가 있었다. 조기에 검사를 해서 발견했기에 더 심각해지기 전에 간단한 치료만으로 완치될 수 있었다. 암이란 백신이 없어 1차예방은 불가능하지만 조기검진으로 초기에 발견하여 완치할 수 있다. 암특집의 의의일 것이다.

 

아마 흥미롭다면 이번 위암편에서 멘토로 나선 배재문 교수와 이경규 사이의 악연이었을 것이다. 과거 10년 전 MBC에서 했던 <건강보감>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암특집을 하려 했는데 그때 배재범 교수가 출연한 것을 이경규가 막아 결국 그 한 편으로 끝나고 말았다고. 웃자는 예능에서 무슨 암인가?

 

격세지감일 것이다. 지금도 <남자의 자격>의 암특집을 비판하는 여론이 적지 않은 가운데 이경규는 그 중심에서 암 검진미션을 수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40대와 50대는 건강에 대한 기본 마인드부터 다르다.  50대를 넘어가면 모든 건강상의 문제는 당면한 현실문제가 된다. 얼마나 암이란 우리의 일상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가. 그렇게 쉽게 걸리고 너무 흔하다. 모든 것이 이제는 많이 바뀌었다.

 

신원호PD의 인터뷰처럼 이 프로그램을 보고 지금이라도 암검진을 받고자 결심하는 사람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조기에 암을 발견해서 김태원처럼 웃으며 치료받을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남겨질 - 걱정할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도. 내 건강은 나 자신의 것만은 아니다.

 

명언이 나왔다.

 

"아프고 치료하고 낫고, 다시 아프고 치료하고 낫고, 그게 우리 인생이야."

"사건이 없으면 재미가 없지."

 

그것은 인생의 이야기이면서 또한 암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김태원이 암에 대해 긍정적이고 낙천적일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배재문 교수도 말미에 나와 말한다.

 

"어쩌면 암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암을 치료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암을 첮아내는 것을 꺼려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까지 치료의 가능성을 믿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맞이해야 한다. 모든 암을 발견하거나 발견할 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남자의 자격>이 전하는 메시지였다. 암은 단지 질병의 하나에 불과하다.

 

웃음보다 더 아름다운 공감이 있었다. 감동보다 더한 긍정과 낙천이 있었다. 암을 두려워하지 말라. 암을 치료하는 것을 겁내지 말라. 암과 마주하는 것을 꺼려하지 말라. 정면으로 마주하라. 현대의학은 바로 그 아래까지 와 있다. 최고의 암예능이었다고 생각한다. 순도 100% 24K암리얼바이어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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