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라 하니 놀라겠지. 아무리 초기라지만 암이 바견되었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오죽하면 암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환자의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고 한다 하겠는가. 가족이기에, 친구이기에, 동료이기에, 무엇보다 당사자로써 충격과 공포, 공황이 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제작진 자신도 프로그램을 아예 닫으려고까지 생각했다 하고 있으니.
그런데 시골의사라는 양반도 전혀 고려치 못한 게 - 아마 이 사람은 전혀 남자의 자격을 보지도 예고편을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기사도 꼼꼼히 읽지 않았을 걸? 왜 하필 방송이 김태원의 2차수술이 끝난 시점에 나오려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수술사실도 2차수술까지 다 끝나고 퇴원하고 나서야 언론에 공개되었다. 무슨 뜻일까? 하필 암이 발견되고 나서도 이제까지 끌다가 언론에 발표하고 방송에 내보내는 것은?
말 그대로다. 완치되었다지 않은가? 한 차례 더 수술을 받고 조기에 발견된 덕에 개복도 아니고 내시경으로 간단히 수술을 마치고 있었다. 아내 이현주씨는 더 이상 걱정할 것 없다는 소리 듣고 이미 그 전에 필리핀으로 돌아갔다고 하고. 그러면 이후 방송에 나갈 때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묘사할까? 시골의사가 걱정하는대로 다 치료되었는데도 엉엉 죽을 듯 공포에 떨며 오버하고 할까?
이런 걸 프레임이라 한다.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샌가 사람들이 그 프레임에 갇혀버린다. 동의하거나 혹은 반발하거나. 왜냐면 그 말을 가장 우선적으로 떠올리게 되니까. 정작 살펴보면 전혀 그와는 동떨어지게 상관없이 현실에 나타날 것임에도 오로지 그것만이 전제가 되어 사람들을 오판케 한다. 프로그램의 오버가 환자들에게 더 큰 고통과 상실감을 줄 것이다.
하지만 초기암이다. 초기든 아니든 암이란 상당히 무거운 병이다. 초기암이라고 하하호호 감사하고 웃을 수 있는 그런 병이 아니라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초기암은 별 것 아니니까 발견되어도 더 중한 암환자들 생각해서 괜히 호들갑떨지 말고 감사하며 조용히 넘어가라는 의사가 있는 병원에서는 별로 검진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개별의 환자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서사적인 판단을 내리려는 것일 테니.
그러나 일단 언론보도에도 치료가 끝났다 나가고 있고. 프로그램 입장에서도 그런 보도가 나간 시점 - 즉 수술이 끝나고 치료가 완료된 시점에서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제작진 입장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시청율에 도움이 되겠는가? 수술이 끝났는데도 징징 짜는 모습? 만일 수술 전에도 의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바로 개별의 고통을 계량화하려는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결국은 해피엔드로 끝날 것이다. 일요일저녁예능답게 치료가 끝났다며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며 조기에 암검사를 통해 발견한 것이 다행이라며 그나마 웃으며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라면 신원호PD는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겠지. 오히려 오버를 한다면 그 순간에 모두가 오버하는 느낌으로 과장되게 웃고 떠들며 암이란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하게 되겠지. 그러면 그것은 문제겠다.
개별의 고통을 계량화하여 서사적으로 종속시키고자 하는 의도도 고약하고, 무엇보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미리 단정하여 비판부터 하려는 것도 우습고, 그 프레임에 갇혀 - 혹은 의도적으로 파닥거리는 사람들은 단지 가여울 따름이고. 무엇 하나 드러난 게 없는데? 그리고 드러난 것만으로도 그 오버가 반드시 초기암을 쓸데없이 과장하여 공포와 슬픔을 확대하려는 것도 아닐 텐데?
하여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엄숙주의라는 것이. 이게 엘리트주의와 맞물리면 아주 골때려진다. 모두는 절제하고 사양해야 한다. 어떤 고통도 어떤 충동도 어떤 욕망도 어떤 슬픔도,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기에. 더 못한 사람들도 있고 사회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도 삼가고 사양하고 절제하여 항상 냉정하고 침착하게. 칸트가 이성을 말한 게 그러라 말한 것이 아닐 텐데도.
도대체가 초기암이니 암이라고 충격받고 무서워하는 자체가 말기암환자들에게 상처가 되리라는 그 사고방식이 어이가 없다. 그다지 중하지 않은 암이니 더 중한 암을 배려해서라도 충격도 공포도 고통도 슬픔도 모두 인내하고 감추라. 상처받고 고통받는다. 비슷한 말로 비정규직 있는데 정규직이 왜 파업이냐? 실업자 있는데 비정규직은 왜 파업이냐? 대단한 대한민국이랄까? 감탄하는 이유다. 왜 이 모양인가?
시골의사의 글은 그다지 본 적이 없는데 아무튼 이번 글을 통해 나와는 그다지 어울릴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논리의 전개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서 혐오감까지 느끼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근본적 병폐가 고스란히 느껴진달까? 너보다 더 못한 사람이. 너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람이.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인간은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 텐데도.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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