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SH - 백지영
벌써 며칠째야 애만 태우는게
날 사랑한단 한 마디 말조차 하지 못한 채
용기가 없는 넌 다가오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그렇게 멀리서 바라볼 거야
이젠 내가 너보다 먼저 다가갈 거야
널 사랑한다 그 말을 내가 먼저 하고 말거야
서로가 사랑인 걸 알고 있는데
왜 이러고만 있어야 하는지도 정말 답답해
이런 얘길 내가 먼저 한다면
언제나 남자들은 부담스러워 하지
너 역시 그렇다면 어쩔 수 없어
넌 사랑 받을 자격도 없는 거니까
이제 와서 이런 얘길 하기가
조금은 껄끄럽고 어색하긴 하지만
사랑은 그리 쉽게 얻을 수 없어
언제까지나 이럴 순 없잖아
누가 먼저란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아
짧은 생을 사랑 하나 만으로 산다면
가사 출처 : Daum뮤직
이게 아마 2000년이었을 것이다. 이 비슷한 시기 클론의 '초연'이 열심히 거리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백지영 노래가 아닌 줄 알았다. 아니 정확히는 당시까지 백지영이라는 가수 자체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그냥 그런 가수가 데뷔했구나. 그런데 노래가 너무 좋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음색이었다. 허스키하면서도 깔끔하게 올라가는 고음. 그리고 흥겨운 리듬감. 무대 또한 훌륭했다. 다만 어설프게 이름만 들어 알고 있었기에 이게 진짜 백지영이고 백지영의 노래인가? 아마 처음 무심코 들었을 때는 그 목소리 톤 때문에 김종국 노래인 줄 알았었지?
아무튼 그때 이 노래에 놀라 감탄하며 지인에게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백지영 노래 잘하네?"
"원래 잘해!"
그랬었나?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그 일이 있었다. 여성으로써 매우 치명적인, 가수 백지영을 영영 매장해 버릴 뻔한 사건이었다. 참으로 남자로써 비열한 행위였고, 한국 연예매니지먼트의 어두운 부분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그리고 관음에 목매는 한국 남성들의 저속함도.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얼마전에 비슷한 사건이 있으면서 어느 정도 학습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것을 터뜨린 동기 자체가 너무 비겁했고 저열했다. 여성에 대해 엄숙함과 정숙함을 강조하던 대중마저도 백지영을 동정했을 정도로. 그 악의는 당연히 단죄되었고 백지영은 상당한 동정여론과 더불어 가수로서의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아마 2006년이었던가 "사랑 안 해"로 다시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그때도 물었었다.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데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대답은 간단했다.
"걔가 돈이 있냐? 빽이 있냐? 요즘 노래 잘한다고 다 가수 돼?"
누구나 꿈을 꾼다. 스타란 꿈이다. 스타를 꿈꾸고 스타가 되려 한다. 무대에 서고자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만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무대에 설 수는 없다. 선택된 소수만이 무대에 선다. 꿈은 많고 그 꿈을 이루어 줄 수 있는 기회는 한정되어 있다. 그만큼 마음은 급하고 절박하다.
그동안에도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가? 비디오촬영과 성상납과 스폰서, 그리고 각종 추문들. 그로 인해 사람이 죽기도 했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었다. 원래 연예계란 그렇다.
한국의 일반 대중의 무의식에 그것은 하나의 당연한 상식처럼 되어 있다. 아니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일본에서든. 어디에서든. 꿈이 절실한 만큼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한다. 이용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이용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누군가가 있다. 혹은 노예계약이라 불리우는 것도 그런 경우일 것이다. 오죽하면 계약금도 인세도 없이 음반제작과 홍보비까지 자기가 다 내가며 데뷔하려던 사람들까지 있었겠는가.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에 시청자의 관심이 몰리는 것도 그래서다. 공정하지 않은 사회에 공정한 기회가 주어진다. 오로지 실력에 의해 참가자들에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진다. 또한 오디션에서의 심사나 결과에 대해 시청자의 반응이 뜨거운 것도 그래서다. 판타지일 테니까. 결코 공평하지 않은 사회에서 오디션에서만큼은 공평하고 정정당당하기를 바라는. 그래서 오로지 실력에 의해서만 평가받고 꿈을 이루고 성공할 수 있기를. 그래봐야 오디션을 통과한다는 것은 겨우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는 뜻에 불과할 테지만 말이다.
하기는 백지영도 노력형이다. 당시 백지영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그렇게 불안할 수 없었다. 음반으로 들을 때는 정말 좋은데, 그러나 라이브는 많이 힘들었었다. 안무가 홍영주의 회고를 보더라도 리듬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몸치였지만 스스로 노력한 결과 어느 순간부터 리듬을 탈 수 있게 되었다고 하고.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의 그녀의 무대란. 더구나 <나는 가수다>에서 그녀가 부른 '무시로'는 정말 놀라웠다.
그런 열정이 있었으니까. 그런 의지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때로 부당함도 억울함도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일 게다. 데뷔를 위해서. 무대를 위해서. 꿈을 위해서.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단지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을 때 그것을 시작으로 여길 것이냐? 끝으로 여길 것이냐? 최악의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온 결과 그녀는 지금 그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백지영이라는 가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역시 예능의 폐해일 텐데. 예능에서의 그녀의 모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천하무적야구단>을 즐겨 보다가 백지영이 나오면서 안 보게 되었겠는가?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가수로서의 백지영을 평가하자면 참 맛있게 노래부르는 가수다. 소리를 정말 어떻게 그렇게 뽑아내나 달착하게 귀에 달라붙게 뽑아낸다. 감정의 선이 디테일하게 살아있고. 앞서 말한대로 기본적으로 음색이 좋다. 댄스가수로 시작했지만 발라드를 주로 부르는 지금도 그래서 어색하지 않다. 아마 <나는 가수다>에서 자문단으로 나온 누군가의 말처럼 어쩌면 가장 저평가된 대중가요 가수 가운데 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강한 사람을 좋아한다.
문득 생각났다. 참 힘들던 시절이었다. 열정이 사그라들며 마치 허공에 붕 뜬 것처럼 모든 것이 혼란스럽던 때였다.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떻게 될까? 물론 지금도 방황은 끝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어떤 막연한 낙관과 기대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때였다. 그때였다.
아마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겠지. 백지영 자신도. 당시 백지영의 노래를 나처럼 감탄하며 즐겨 듣던 사람들도. 시간은 흐르고 그 시절의 이야기들은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된다. 노래처럼. 마치 그 노래를 듣던 종로의 어딘가처럼. 파고다공원 앞, 조금 나가면 낙원상가가 있고, 아직 종로서적이 문을 닫기 전, 자주 들르던 분식집과 만화방, 그리고 펜티엄3 컴퓨터. 그때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던 노래가... 에...
때로 사람은 음악을 듣기보다 기억을 듣는다. 사람을 떠올리기보다 기억을 떠올린다. 그 시절 그 사람. 그 시절 그 노래. 노래보다 의미있는 건... 아니 그것이 음악이 가진 힘일 것이다. 기억을 함께 한다는 것.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기억의 키워드일 것이다. 음악이든 영화든 소설이든 만화든 무엇이든. 그것이 또 대중문화가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고. 기억을 사는 것이다. 문화를 즐긴다는 것은.
하여튼 이제 와서 과거의 안 좋은 이야기야 무슨 소용일까? 좋은 일들만 떠올리며 살아도 부족한 것이 인생이다. 앞으로 시간들은 더 많고. 백지영이 저리 밝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니 그래서 기분이 좋다.
윤도현의 Dash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쉬움이 남는다. 그 시절 그 거리를 떠올리며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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