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수채화 (권인하, 강인원, 김현식)
빗방울 떨어지는 그거리에 서서
그대 숨소리 살아있는듯 느껴지면
깨끗한 붓 하나를 숨기듯 지니고 나와
거리에 투명하게 색칠을 하지
음악이 흐르는 그카페엔 쵸코렛색 물감으로
빗방울 그려진 그가로등불 아랜 보라색 물감으로
세상사람 모두다 도화지속에 그려진
풍경처럼 행복하면 좋겠네
욕심 많은 사람들 얼굴 찌푸린 사람들
마치 그림처럼 행복하면 좋겠어
음악이 흐르는 그카페엔 쵸코렛색 물감으로
빗방울 그려진 그가로등불 아랜 보라색 물감으로
세상사람 모두다 도화지속에 그려진
풍경처럼 행복하면 좋겠네
욕심 많은 사람들 얼굴 찌푸린 사람들
마치 그림처럼 행복하면 좋겠어
빗방울 떨어지는 그거리에 서서
그대 숨소리 살아있는듯 느껴지면
깨끗한 붓 하나를 숨기듯 지니고 나와
거리에 투명하게 색칠을 하지
오 오 오
아아 아아
아아 아아
가사 출처 : Daum뮤직
이 노래가 처음 나온 게 아마 1990년이었던가? 참 맑은 빗소리같았다. 시커먼 사내 셋이서 부르는데 뭐가 이리 투명하고 맑은가? 권인하의 묵직함과 강인원의 청명함과 김현식의 처절함이 말 그대로 빗소리같고 수채화같았다. 한 귀에 참으로 아름답구나 감탄했던 노래였다. 거의 빠지지 않고 부르는 노래다. 아마 내 또래, 혹은 그 앞뒤로 많이들 그렇지 않을까? 남자가 불러 아름다운 노래가 그리 흔치 않다.
아마 곡을 강인원이 썼을 것이다. 생소한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내공이 깊었다. 나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한때 전인권과도 옴니버스 음반을 냈을 정도로 차근히 내공을 쌓아 주류무대로 올라선 전형적인 경우였다. 내가 기억하기로 1986년이었던가 '영어선생님'이라는 상당히 관조적이면서 사춘기적인 감수성의 노래를 발표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기도 했었을 것이다. 상당히 수수하면서도 단정한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는데 내 기억이 맞는가는 모르겠다. 1955년생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어쩌면 소년같은 느낌마저 받았으니까. 그러고 보면 발표했을 당시가 벌써 30대였다.
솔로로도 활동했지만 그보다 더 주력했던 것이 아마 영화음악과 작곡이었을 것이다. MBC의 예능 <나는 가수다>에서 김범수가 부르게 된 민혜경의 히트곡 "그대 모습은 장미"도 강인원의 곡이었다. 그러고 보면 박정현이 부르게 된 "비오는 날의 수채화"까지 일곱곡 가운데 두 곡이 강인원의 곡이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는 그가 영화음악을 맡았던 동명의 영화에 쓰인 주제가였다.
감독이 곽재용, 주연이 강석현, 옥소리, 영화의 내용은 뻔한 10대 취향의 로맨스 판타지였다. 양자로 입양된 강석현이 양아버지의 친딸인 옥소리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게 되는 뻔한 신파극이 주된 내용인데, 워낙에 보다가 졸아버린 탓에 내용은 그다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강신성일의 아들로써 아버지의 후광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강석현의 연기는 무척이나 훌륭한 편이었고, 이후 또래들 사이에 여신으로 군림하게 되는 옥소리의 청순한 매력은 치명적인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곽재용 감독의 아름다운 영상까지 어우러지며 판타지는 충족되었고 영화도 제법 흥행에 성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이 영화로 인해 강석현이나 옥소리나 하이틴스타로 등극하지 않았을까? 일단 기억은 그렇다.
아무튼 이 노래가 내게 의미가 깊다는 것은, 바로 이 노래를 통해 당시 언더그라운드의 실력자였던 권인하와 김현식이 주류무대를 통해 대중에 그 이름과 얼굴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일 터다. 김현식이야 이전에도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고 방송출연도 몇 번 하고 했었다. 하지만 나 역시 권인하라고 하는 가수에 대해서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들 셋이 무대에 올라 함께 노래를 부르는데... 충격도 그런 충격이 없었다. 오죽하면 이후로 노래를 부를 때마다 거의 반드시 세 사람 분의 모창을 시도하고 있었을까? 그렇게 닮고 싶었다. 그들의 목소리를. 그렇게 그들처럼 노래를 부르고 싶어했었다.
노래 자체는 사실 강인원의 목소리가 어울린다. 강인원의 파트에서 노래는 멜로디와 가사에 어울리는 투명함을 갖는다. 하지만 노래는 마냥 투명하고 맑은 노래만은 아니다. 구름끼어 어두운 하늘과 추적추적 젖어오는 대지, 비를 머금은 옷은 마음마냥 무겁다. 호소이며 절규다. 소년의 꿈과 같은 노랫말과 멜로디는 그래서 권인하에 의해 무게와 두께가 더해지고, 차라리 시원스럽기까지 한 김현식의 치열함이 힘을 더하며 하나의 노래로써 완성된다. 세 가지 전혀 다른 색깔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가는 것. 노래가 아름다운 이유일 것이다. 그야말로 세 남자가 그려가는 한 폭의 수채화라 할 것이다.
내가 <나는 가수다>에서 박정현이 노래한 "비오는 날의 수채화"에 거부감을 갖는 이유다. 일단 남자의 노래다. 그리고 솔직한 노래다. 정직하게 불러야 한다. 꾸미지 말고 속엣것을 가감없이 토해내듯 불러야 한다. 여기에서의 비는 우울한 비가 아니다. 젖어서 눅눅하고 불편한 비가 아니라 씻겨내려가며 시원하고 후련한 비다. 그것을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에 비하면 박정현의 노래는 뭐랄까... 비에 붙잡힌 느낌? 마치 찬 겨울비처럼 그 무거움이 뼛속까지 스민다. 수채화가 아닌 두터운 유채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것도 아주 나쁘지는 않지만 그러나 내게는 맞지 않는다. 원곡이 워낙 손 댈 수 없이 좋은 까닭이다.
문득 떠올랐다. 정말 오랜만이다. 한때는 노래방 가면 거의 빠지지 않고 부르고 했었는데. 그만큼 마음속에 순수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뜻일까? 확실히 세파에 찌든 마음으로 부르기에는 참으로 낮간지러워지는 노래인 터라.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처럼 먼 향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그래서 또 항상 그리움으로 기억되어지는 노래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는 퇴락해 버린 요정에 대한 기억처럼.
아래는 권인하와 강인원, 김현식이 함께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부르던 김현식의 생전의 모습이다. 아마 동영상은 1990년 6월의 방송분인 것 같은데, 김현식이 세상을 떠난 것이 그해 11월이니까 바로 그 몇 달 전의 모습일 것이다. 이때 이미 김현식의 건강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고 나중에서야 들었다. 이래저래 생각이 날 수밖에 없는 노래일 것이다. 아쉬움과 그리고 안타까움과. 그리고 간절한 그리움. 기억은 남는다.
이건 실수로 제목을 잘못 봐서 다운로드받은 다른 가수의 버전이다. 항상 이런 경솔함과 허술함이 후회와 미련을 남긴다. 그래봐야 한 곡 600원, 아이스크림 하나 값도 안 되지만. 어쨌거나 기껏 돈주고 다운로드받은 것이니 함께 올려본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래 바라던 것이 권인하, 강인원, 김현식의 오리지날 버전이라는 것이다. 역시 순정보다 나은 리메이크는 힘들다. 조금은 그래서 아깝다.
덧, <나는 가수다> 최종 방송분 음원을 듣는데 괜찮다. 원곡에는 분명 미치지 못하지만 나름대로 자기 색깔을 갖추며 원곡의 투명함을 살려낸 것 같다. 역시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박정현이라는 커리어에 있어 충분히 긴 시간이었달까?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오는 날의 수채화'는 권인하, 강인원, 김현식 세 사람의 노래다. 리메이크로써 훌륭하다는 것이다. 일단.
'오래된 음악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활 - 안녕... (0) | 2011.04.03 |
---|---|
백지영 - Dash... (0) | 2011.03.27 |
추억들국화 - 사랑한 후에... (0) | 2011.03.01 |
부활 - 새벽... (0) | 2011.01.20 |
부활 - 가능성... (0) | 2010.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