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라면카페 대표라는 한창국씨의 말이 정답일 것이다.
"신비주의 컨셉을 싫어합니다. 라면이란 대중화가 되어야 하는데 육수비법이랑 35년 된 된장이 없으면 못 먹잖아요, 다른 사람은."
박남수씨가 요리한 '전통된장라면'에 대한 평가였다. 그리고 신동우씨가 요리한 '얼큰개운라면'에 대해서도 같은 취지의 말을 하고 있었다.
"굉장히 맛있었는데요, 그런데 육수를 낼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그 육수가 (들어가는 재료의)종류도 너무 많아서 신동우씨가 아니면 그 라면을 끓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 같습니다."
하긴 결승에 올라온 8개의 라면 모두가 그다지 복잡하거나 고도의 기술을 요하지 않는 라면들이다. 30분이라는 제한시간 안에 충분히 끓일 수 있도록.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누구나 쉽게 끓일 수 있게. 그것이 라면이 가진 원래 뜻 아니겠는가?
라면은 인스턴트 식품이다. 오랜 시간을 들어 정교한 조리법을 동원해 값비싼 재료로 요리를 할 것이라면 굳이 라면일 필요가 없다. 쉽게 간편하게 먹을 수 있기에 라면이다. 그런 점에서 장소녀씨의 '908라면'은 군대라면답게 호쾌했다. 재료는 많이 들어갔지만 굳이 복잡하거나 어려운 조리법이 없다. 박승희씨의 '파차라면'이나 유윤경씨의 '샐러드라면', 이영우씨의 '다이어트 웰빙라면'도 정교한 조리법보다는 아이디어와 정성이 돋보인 라면이었다. 일반적인 라면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러나 라면이 추구하는 본질은 잃지 않았다.
실제 만드는 모습만 보아도 나도 따라 만들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것이 바로 저런 라면들이다. '전통된장라면'이나 '얼큰개운라면'은 허들이 너무 높다. 어디선가 전문점을 개업했다는 소리가 들리면 찾아가서 맛을 볼 수는 있겠다. 이경규의 '꼬꼬면'조차 많은 연구가 있었던 듯하지만 그에 비해서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명쾌하지 않은가.
아무튼 이제까지 가운데 가장 재미있었다. 3월 27일 방영된 KBS <해피선데이 - 남자의 자격>의 '남자, 그리고 아이디어'편 첫번째 '라면의 달인' 결승전은 이제까지 가운데 예능으로써의 재미에 가장 충실했던 편이었다. 한 마디로 버라이어티했다.
확실히 무려 50명에 달하는 출연자들이 7개 조로 나뉘어 2주에 걸쳐 나오고 있다 보니 시간의 제약 때문에라도 개개의 출연자에 대해 할애할 수 있는 분량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장소녀씨가 이렇게까지 재미있는 분인 줄은 바로 직전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경규와 주고받는 대화들이 마치 한 편의 콩트 같았고 만담같았다. 예능인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지만 그렇기에 더욱 색다른 자연스런 웃음이 있었다. 박승희씨는 채연이 응원차 찾아오면서 의외의 장면을 만들고 있었고. 5시간이나 기다렸다는 채연에 비해 너무 쿨하다. 의외성은 곧 반전의 재미가 있다. 이영우씨는 자신의 라면처럼 시원한 성격으로 보였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리얼리티란 바로 이런 재미를 기대하는 것일 게다.
라면도 지난주까지의 예선과 비교되며 또 하나의 서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지난주보다 더 업그레이드 된 '샐러드라면'과 '다이어트웰빙라면', 그에 비하면 욕심이 지나쳤는지 오히려 맛이 떨어졌던 '908라면'과 '얼근개운라면', '파차라면', 그리고 이윤석의 '라플레'. 이경규의 '꼬꼬면'도 고기고명이나 계란흰자를 푸는 타이밍인 나아졌지만 어쩐지 예선에서의 깔끔한 국물에 비해 더해진 재료들이 잡스럽게 보였다. 제작진도 맛을 보고는 텁텁해졌다 하고 있었고.
노력했는데 오히려 결과가 거꾸로 나온다. 그런 게 또 아마추어의 재미겠지. 전문요리사가 아니기에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더 나아지려는 것이 오히려 퇴보하기도 한다. 라면의 서사란 바로 그런 과정의 연속이다.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고 우연도 더해지고, '라면의 달인'에 출연한 라면 모두가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라면들 아니겠는가. 하나의 아이디어가 더해지고, 한 번의 실패가 더해지고, 그리고 실패를 딛고 새로운 성공을 더하고, 그런 맛에 다시 하나의 맛을 더하려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부족한 것에 하나를 더하기는 쉬워도 완성된 것에 하나를 더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예선에서 그리 완성도 높은 라면을 만들고서도 다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출연자들이 대단하게 보이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심사위원들의 심사평도. <위대한 탄생>도, <슈퍼스타K>도, 그리고 같은 <남자의 자격>에서의 '아마추어 밴드'나 '하모니'편에서도 오디션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심사위원의 심사평이었다. 위트있으면서도 신랄한. 개인적으로 한창국씨의 심사평이야 말로 매우 시청자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어디서나 쉽게 간편하게 끓여먹을 수 있는 라면. 그에 반해 데이비드 권씨는 요리사로써, 그리고 라면 3사에서 나온 세 사람의 심사위원들은 업계종사자로서. 현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심사평은 흥미로움을 더해준다. 더구나 항상 보면 세 현업에 종사하는 심사위원들은 같은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전문가의 시각이랄까?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이 <남자의 자격> '신입사원' 편에서도 나왔던 N라면의 이정근 마케팅 상무의 놀라운 미각이다. 이정근 상무의 전문가적인 지식도 지식이거니와 출연자들의 라면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지적해내는 미각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런 재미도 있어야 오디션이 재미가 있다. 라면에 계란을 푸는 것이 국물을 끌어당기는 역할을 하고, 닭고기는 비린 맛이 나므로 훈제를 해서 넣는 것이 좋구나. '908'라면의 경우도 재료가 덜 들어간 것을 단번에 알아채고. 그야말로 제목 그대로 '라면의 달인'이었다.
어쨌거나 결국 이경규의 '꼬꼬면'이 결승에서 우승까지 하는 데는 실패했다. 8강 토너먼트에서는 이기고 올라갔지만 4명이 겨루는 결승에서는 유윤경씨의 '샐러드 라면'에 84점대 80점으로 블로거 심사위원 점수에서 4점이 뒤지면서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확실히 '샐러드 라면'의 완성도가 만만치 않았다. 직접 간장까지 조미해서 연구해 만들어 쓰고 있었다니. 역시 재야에는 고수가 많다. 그렇게 완벽해 보이던 이경규의 '꼬꼬면'도 한 수 위의 상대를 만나면 어쩔 수 없다.
어느 정도의 오디션이 주는 긴장감과, 그러나 일상의 라면이 주는 친숙함이 좋았다. 오가는 이야기들도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였고. 소소한 웃음이 역시 <남자의 자격>다웠다. 크게 부담 없이. 어떤 거창한 의도를 가지고서 나온 것도 아니고. 적당히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유쾌하게.
안타깝다면 <나는 가수다>가 워낙 거세게 화제를 몰고 다니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보인다는 것. <남자의 자격> 가운데서도 가장 재미있는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일 뻔 했는데. 타이밍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역시 아무리 재미있어도 강적을 만나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일 게다.
'꼬꼬면'의 상품화를 기대하며. '꼬꼬면'이 대박치더라도 부디 <남자의 자격>은 계속 해 주시길. 다음주는 새멤버 양준혁의 첫방송이다. 기대하고 있다. 다시 한 주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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