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서사로써 문화를 소비한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연극이든 소설이든 대중문화란 대부분 서사로 이루어져 있고 그 개별화된 서사를 두고 달리 드라마라 이야기한다. 대중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찾아 보는 것도 꾸며지지 않은 날 것의 드라마를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리얼버라이어티가 추구하는 지향점일 것이다. 리얼리티가 추구하는 다큐멘터리와 버라이어티의 드라마가 추구하는 시트콤. 기존의 캐릭터와 관계에 시트콤에서 매회 다른 상황이 주어지듯 다른 주제가 주어지며 각본 없는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큰형님 이경규와 국민할매 김태원, 국찌니 김국진, 국민약골 이교수 이윤석과 비덩 이정진, 막내 윤형빈. 그들이 시골로 내려갔다.
예전 하나의 유행처럼 널리 만들어지고 소비되던 드라마였다. 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시골로 내려간 도시사람들이 그들이 꿈꾸던 것과는 전혀 다른 농촌의 현실에 좌충우돌하며 적응해가는 이야기. 하필 평균나이도 40세가 넘는 멤버들이 그 가운데 김국진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농촌생활을 경험한 적 없는 도시촌놈들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이경규조차 도회지인 부산이 고향이다.
난리가 아니다. 닭과 거위 등 가금들을 보더니 겁을 집어먹고, 어떻게든 방안에 몰아넣어야 하는데 잡지는 못하고 엉덩이를 뒤로 뺀 채 어기적거리며 떠밀어낸다. 상추씨를 뿌리랬더니만 뭉터기로 뿌려 놓고. 결국 서로 잘했네 못했네 지적질하다 심지어 싸움까지 날 뻔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남다른 재능과 가능성을 선보인 비덩 이정진. 닭을 쫓고 쇠스랑으로 씨앗을 뿌린 두둑을 훑어내리고.
결국 보다 못한 마을 주민들이 나선다. 아니 아예 여섯 남자들을 믿지 못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마을 주민들을 모아 놓고 도움을 청한다. 무엇을 심어야 할까?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할까? 그러나 듣는다고 알까?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성에 차지 않아 직접 나선 주민들에 의해 하나하나 마무리되어간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겠지? 항상 그곳에 머물면서 밭이며 농작물들을 돌볼 수는 없을 테니 마을 주민들의 손을 빌어야 할 것이다.
한심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도시촌놈인 것을. 도시촌놈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게 꽤 되었다. 일제강점기 이무영에 의해 쓰여진 소설 <제 1과 제 1장>에서도 농촌의 삶을 동경하여 고향으로 내려간 수택은 이상과는 전혀 다른 농촌의 현실에 당황하며 주민들과 특히 아버지의 도움과 조언으로 겨우 농촌에 정착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제아무리 도시에서 잘나가는 지식인이고 엘리트이면 무엇하는가? 예능의 전설이고, 코미디의 전설이고, 록의 전설이고, 대학교수이고, 미남배우에, 인기 개그맨, 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눈앞의 검은 흙으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능력이다. 상추를 심고, 감자가 싹을 틔우고, 수박이 열매를 맺고, 닭이 알을 낳고, 거위가 마당을 노닐고. 농사일은 농사꾼이 전문가다.
소동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토록 반복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했던 것이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근대 이후 가장 널리 소비되는 이야기의 소재 가운데 하나가 문명을 벗어나 반문명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우리사회에서의 반문명은 상당부분 전근대적인 요소를 간직한 농촌에 남아 있다. 농촌에 대한 노스텔지어는 그에 대한 희구다. 문명화된 사회의 번거로움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마음의 피난처일 것이다. 쉬어가고 싶은. 풀어놓고 싶은.
전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농촌의 일상에 허둥대면서도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캐릭터와 관계, 이야기들. 사건이 일어나고 사건에 캐릭터가 얽히고 관계를 통해 확장된다.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아마 농촌을 배경으로 도시남자들이 농촌생활에 적응해가는 드라마를 만든다면 이렇게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것이 평균나이 40세 이상에, 코미디언이고 음악인이고 배우라면. 물론 남자의 자격에서와 같은 개성적인 캐릭터란 그다지 흔치는 않겠지만 말이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흐뭇한 웃음이 입가에 걸리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일 터였다. 사람들이 <남자의 자격>에 기대하던 것이었다. 감동코드라 불리는 그것. 일상의 소소함이라 여겨지는 그것. 어쩌면 어디선가 흔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모습들이. <남자의 자격>을 보는 동안에는 그들은 더 이상 코미디의 전설이고 음악의 전설이고 인기연예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또래의 단지 그런 직업을 가졌을 뿐인 '남자'들로만 보인다. 전혀 아무런 각본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그런 모습들에서.
"도대체 저 양반보고 누가 자꾸 위대하대?"
아마 경쟁방송사인 MBC의 <위대한 탄생>을 염두에 둔 디스였을 것이다. <위대한 탄생>에서는 그야말로 록의 전설이고 위대한 음악인이며 멘토지만 여기에서는 그저 '저 양반'에 불과하다. 수박이 씨앗에서 자라는 것인지, 수박나무가 있는 것인지 전혀 모르는. 마을주민들에게 국수를 삶아 대접하고, 형과 동생들이 밭에서 열심히 일할 때 할머니의 손맛을 보여주려 여념이 없는.
스태프의 계속된 놀림에 끝내 분을 참지 못하고 기름을 끼얹으려 한다.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며 마치 아이처럼 천진스럽게 스태프들에 자랑하기도 한다. 솔직히 우엉과 버섯과 어묵이 들어간 우엉밥은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차라리 괴기와 스릴러일까? 돼지고기김치찜과 돼지고기김치찌개, 정확히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전혀 다른 음식들.
작가가 부르는 '오빠'라는 말이 왜 이리 정겨운가? 자막으로 보이는 '저 양반'이라는 말도. 마을사람들조차 스스럼없이 할머니라 부른다. 그렇게 그는 할머니이며 오빠이며 형이고 저 양반이다. 전설도 뭣도 아닌 그냥 이웃이며 친구이며 가족이다. 그렇게 그들은 그곳에 존재한다. 어우러진다.
모든 게 생소하고 모든 게 다 처음이다. 그런데도 그것이 즐거워서 열심이다. 아니 즐거운가는 모르겠다.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어느새 그것을 즐기는 모습들이 있다. 작은 것에도 놀라고 감탄하고 감동하면서. 도시에서는 비덩이더니만 농촌에서는 귀덩, 차가운 농촌남자 차농남 이정진의 새로운 가능성은 흥미롭다. <남자의 자격> '귀농편'은 이정진을 위한 또 하나의 기회가 되어줄까?
원래는 이런 모습이었어야 했을 텐데. 그러고 보면 여섯 멤버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함께 무언가를 수행해 본 것도 꽤 되었다. 거의 1년이 넘어가지 않나 싶다. 밴드편 이후로 거의 각자 따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그래서 더 반가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그것이 하필 농촌이라는 것에서. 필자 또한 방송을 보는 내내 TV 속으로 뛰어들어가 함께 마음껏 흙을 밟고 흙냄새를 맡고 싶어졌다.
솔가지 타는 내음과 쇠똥내음, 돼지똥내음, 어디선가 풀내음과, 알 수 없는 수많은 자연의 향기가 뒤섞인 구수함과, 그리고 가슴이 탁 트이도록 시원한 넉넉함. 특히 덕구가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는 우리집 고양이 세 녀석도 저기서 저러고 뛰어놀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방안에서 뒹구는 녀석들을 보고 있으니 죄를 짓는 기분이다. 아니 그것이야 말로 나 자신의 솔직한 간절함일 것이다.
도시 사는 모든 사람의 꿈일 것이다. 굳이 시골이 고향이 아니어도 누군가 그런 꿈을 한 번 쯤은 꾸어 볼 것이다. 아무데라도 시골을 고향삼아 내려가서 도시에서의 메마르고 답답한 삶을 벗어단지고 그 넉넉함을 누려보고 싶다. 현실은 결코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지만. 하지만 그렇더라도 누구나 꿈은 꾸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익숙지 않은 농촌의 삶에 좌충우돌하는 그런 모습들마저.
<남자의 자격> 올해 가장 기대하는 미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앞으로 상추가 싹을 틔우고, 감자줄기가 자라고, 수박이 주렁주렁 열매를 맺고. 닭이 알을 낳고, 거위가 새끼를 치고, 온통 주위에 푸성귀 향기가 가득차고. 볕에 그을은 얼굴에 농부의 넉넉함과 자연과 싸우는 치열함이 맺혀 있기를. 그러고 보니 다음주부터는 새로운 멤버 양준혁이 합류한다. 이번주인 줄 알았더니 제작진에 낚인 모양이다.
그야말로 예능의 기적이라 할 것이다. 예능의 전설, 코미디의 전설, 록의 전설, 야구의 전설, 일곱 멤버 가운데 전설만 넷이다. 각 분야에서 한 번씩은 최고가 되어 보았던 이들. 그들의 소박한 이야기이기에 더 의미가 있을까? 기대해 본다. 양신 양준형의 쿱쿱한 땀내 전 일상의 이야기들을. 향기처럼.
오랜만의 흐뭇함이었다. 그리고 행복한 배부름이었다. 언제나처럼 나 역시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나 또한 그들 가운데서 함께 체험하고 있는 것처럼. 오버하지 않고 크게 두드러지려 하지 않고. 어우러짐이 마치 산능선을 따라 폭 안긴 농촌의 집들과 닮았다. 어느새 정겨운 그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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