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김인숙(염정아 분)에게 있어 인간의 증명이란 남들과 같아지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운명이 가혹했기에 더욱 김인숙은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기를 바랐다. 받아들여지기를. 인정받기를. 그녀가 공순호(김영애 분) 회장을 증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남편 조동호의 가족 로열패밀리의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것만 생각했을 것이다. 남편 조동호의 아내로써, 아들 조병준(동호 분)의 어머니로써, 시어머니 공순호의 며느리로써, 동서 임윤서(전미선 분)의 동서로써, 시누이 조현진(차예련 분)의 올케로써. 드라마의 전반 김인숙의 노력은 바로 그것을 위한 것이었다.
당연히 거부되었다. 그녀는 인간이 아닌 K였고, 로열패밀리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만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발버둥치고 또 발버둥쳤지만 그녀는 JK의 가족이 될 수 없었다. ‘저것’이었고, ‘K'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노력은 그녀의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간다.
조니 헤이워드의 죽음은 따라서 김인숙의 목표를 180도 전혀 다르게 바꾸어 놓는다. 내가 저들과 같지 않다면 저들이 나와 같도록.
“그게 사람이다. 그러면서 살아가는 게 바로 사람이야!”
왜 나만? 왜 나에게만? 아들 예수를 끌어안은 성모 마리아에게 퍼붓던 저주는 이내 공순호에게로 돌아간다. 끝내 그녀를 거부했고 그녀로 하여금 인간이 아니게 했던. 인간이 아님을 깨닫게 했던. 그 모든 원망이 공순호에게 쏟아진 것은 그토록 인정받으려 했으나 인정받지 못했던, 인간이 되지 못한 김인숙의 악다구니와도 같았을 것이다. 예수의 시체를 안고 있던 마리아는 조동호의 죽음을 끌어안고 있던 공순호를 대신하고 있었을까?
“그때는 확실하게 벼랑에서 밀어주세요.”
“이제는 숨죽여 다음을 도모하기보다는 차라리 공멸하는 게 낫겠어요.”
대한민국 부와 권력의 정점. 그 이전에 남편 조동호와 아들 조병준의 가족. 그러나 그녀는 끝내 거부되었다. 거부되었고 최악의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녀의 잃어서는 안 되는 가장 소중한 것을 그로부터 잃어버렸다. 공순호는 그녀의 운명을 지배하는 신이 되었고 동시에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 인간이 아닌 그녀는 무기가 된다.
JK의 로열패밀리에게 있어, 아니 그녀의 오랜 친구였던 진숙향에게마저 인간이 아닌 김인숙은 용납될 수 없는 존재였다. 더럽고 추하고 천박한 - 부와 권력, 무엇보다 세상에 군림하는 그들의 신성에 있어 그 순수를 더럽히는 독과 같은 것이었다. 차라리 죽여서라도 부정하고 싶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런 것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그들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마지막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김인숙에게 그것은 매우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
차라리 죽이라. 차라리 자신을 죽이라. 자신이 아들 조니 헤이워드를 찔렀듯 그들 역시 그들의 부와 권력을 위해 김인숙을 찌르라. 자신의 피로써 그들의 피를 더럽힌다. 자신의 피로써 그들의 긍지와 명예를 욕보인다. 그들도 자신과 같다. 그들도 나와 같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들 조니 헤이워드에 대한 원망도 함께 자리한다.
“그래서 더 용서할 수 없어!”
한지훈(지성 분)이 그렇게 들쑤시며 뛰어다닌 끝에 얻어낸 결론을 김인숙은 이미 조니 헤이워드의 죽음을 듣는 순간 바로 깨닫는다. 어머니였으니까. 그리고 아들이었으니까.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죽음마저 무릅써 가며 멀어지려 했던 조니 헤이워드에 대한 원망이었다.
차라리 그때 그녀의 방에 머물며 치료를 받고 살아주었으면. 그래서 차라리 김인숙을 멈추게 하고 조니 헤이워드 자신이 살아 자신의 원망을 들을 수 있었으면. 하긴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조니 헤이워드 역시 김인숙을 지키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보다 겨우 만난 엄마 김인숙으로부터 미움 받기 싫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니 헤이워드의 죽음은 그렇게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김인숙은 더 이상 인간이 될 수 없었고, 그리고 인간이 아닌 김인숙은 JK를 파멸시킬 독이 되었다. 마치 어떤 불길한 존재처럼. 불결한 무엇처럼. 목표를 잃어버린 김인숙은 파멸을 위한 질주를 시작한다. 살아 있을 때는 성냥팔이 소녀에게 그 환상들이 아름다운 꿈이었겠지만 이미 죽어버린 소녀에게 있어서도 그것은 꿈으로 남았을까? 자기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리고 여전히 죽은 육신에 머물고 있음을 알았을 때.
모든 것이 원망스럽다. 자기를 강미자의 집에 데려다 준 누군가에 대한 김인숙의 원망은 어느 정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JK와 싸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었던 한지훈에 대한 원망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죽어 버린 아들 조니 헤이워드. 끝내 그 죽음의 죄를 대신 쓰고자 하는 것은 그같은 그녀의 발버둥이며 악다구니인 것이다.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어쨌거나 점차 전모가 드러난다. 사실 원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코오리 쿄코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자신의 아들을 찔렀고, 아들 조니 헤이워드는 어머니 쿄코를 지키기 위해 현장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까지 걸어가 거기에서 목숨을 잃었다. 죽으면서까지 어머니를 지키려 했던 버려진 아들과 그런 아들을 죽여가면서까지 또한 지켜야 했던 현재의 행복과. 코오리 쿄코도 역시 인간이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 잔혹한 진실.
차이라면 아마도 김인숙이 119에 걸었던 전화일 것이다. 도대체 왜 거기에 그 전화기가 감춰져 있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어쨌거나 순간의 충동이었어도 이내 그녀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JK의 일원이고자 했던 김인숙이 아들 조니 헤이워드에게 위해를 가하는 순간 인간 김마리가 깨어나 아들을 위해 분노하고 슬퍼하고 절규했을 것이다. 조니 헤이워드는 그것을 보았을까? 자신을 지키고자 그 먼 곳까지 가서 죽어야 했던 아들 조니 헤이워드에 대해 원망할 수 있는 어머니의 마음을 조니 헤이워드는 보았을까?
“김마리가 아닌 김인숙이라면 찔렀을 수도 있습니다.”
김인숙에게 있어 - 아니 어느새 깨어나 버린 김마리에게 있어 그래서 김인숙 자신도 복수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자기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으나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은 지키고자 했던 김마리와 모든 것을 가지려 했으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어버린 김마리. 그녀에게 구원이란 바로 그에 대한 응징이었다. 그에 대한 징벌이야 말로 그녀에게 있어 인간을 증명하는 것일 터였다.
JK를 손에 넣거나 - 아니 설사 JK를 손에 넣었다 하더라도 그녀는 더 이상 멈출 생각이 없다. 공순호를 굴복시키고도 그녀는 더 이상 멈출 생각이 없다. 그것은 김인숙이 바라는 것이니까. 김인숙을 태어나게 만든 원흉일 터이니까. 조롱하고 원망하고 증오하며 모든 것을 더럽히고 부숴버릴 것이다. 산산이. 흔적도 없이. 자기가 존재했다는 흔적조차도 없이.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을까? 그렇게 그들도 자기와 같다 만족하고 나면 그녀의 인간으로서의 증명이 끝나는 것일까? 최고의 정점에서 JK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여진 그 순간에조차 그녀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JK를, 공순호를, 그들 일족을 자기 수준으로 더럽히고 끌어내린다고 그녀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이 될 수 있을까? 어차피 그 순간 JK도, 공순호도, 정가원도 인간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래서 한지훈이 있는 것이다. 한결같이 김인숙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믿어주던 - 김인숙을 천사라 불러주던 그가. 공순호가 끝내 자기를 존경해 줄 수 있는 마지막 가족인 조현진을 후계자로 선택하려는 것과 같다. 결국은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 사이에서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이다. 자기가 자신을 인정하기 이전에 주위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한다.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싶어한다. 자존이다. 자아란 그 자존의 너머에 존재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람과 사람 사이다.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것이다.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공존하는 것이다. 김인숙에게 필요한 것은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것은 처음 김인숙이 조동호와 결혼하고 JK의 일원이 되어 바라던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본능일 테니까. 인정받고 싶다. 존중받고 싶다. 함께 어울리고 싶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김인숙이라는 괴물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거짓으로 꾸며진 김인숙이 아닌 본래의 김인숙을 드러냈을 때 공순호는 물론 심지어 자매처럼 여기던 진숙향마저 그녀를 거부하고 부정하며 심지어 배제하려 든다. 그녀는 그들에게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온전히 그녀의 진실마저도 받아들여준다면 어떨까? 믿어주고 존중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준다면? 결국은 궁극적으로 모두가 그리 해야 할 것이다. 엄기도(전노민 분)가 한지훈에게 김인숙의 변호를 부탁하며 김인숙을 지켜 달라 말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인간임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주고 도와달라.
결국은 그것이 드라마의 주제가 될 것이다. 인간으로써 자기를 증명하기 위해 쫓기듯 내달려온 한 인간에 대해,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 세상이, 무엇보다 김인숙 자신이 그녀 자신을 용서하고 타협할 수 있는 것. 이대로 살아도 좋다.
하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듣고 싶어 하는 말이기도 하다. 네 탓이 아냐. 네 잘못이 아냐. 상관없어. 어때? 그래도 좋지 않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전혀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듯. 그렇게 자기 자신을 긍정해도 좋다는 듯. 구원일 테지.
모르겠다. 남은 마지막회가 어떻게 그려지게 될 지. 김인숙이, JK가, 공순호가, 한지훈이, 무엇보다 김인숙은 과연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증명할 수 있게 될까?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될 것인가? 구원은 있을 것인가? 있다면 어떤 형태일 것인가?
숨가쁘게 달려왔다. 숨이 턱에까지 차오른다. 그러고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듯 옭죄는 이 긴장감은 무엇인가? 마지막회를 남겨놓고도 전혀 흐트러짐 없이 마지막까지 보는 이의 가슴을 조인다. 과연... 여전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깊이가 있다는 뜻이리라. 어쩌면 원작을 뛰어넘는 인간의 실존적 죄와 욕망에 대한 보고서였다. 완성도가 있었다.
대미를 기대한다. 대미라는 말에 어울리는 마지막회를. 답답할 정도로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쓸어내릴 수 있는, 아니면 더 무겁고 큼지막한 것을 남겨 놓을 수 있는 그런 마무리가 될 수 있기를. 용의 눈을 그리고 나면 하늘로 날아오르리라. 기다린다. 설렌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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