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강력반 - 여지없이 무너진 개연성...

까칠부 2011. 4. 27. 08:26

제정신인가?

 

“동료고 나발이고 무조건 증거부터 들이미는 정과장 당신이나, 윗선 무서워서 벌벌 떨어야 하는 우리나,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짜증나서 경찰 안 한다고!”

 

문득 이게 무슨 경찰다큐멘터리인가 싶었다. 제식구 감싸주기로 수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어떤 타락한 경찰의 이야기를 리얼리티로 보여주려는가. 그런데 하필 그것이 주인공편인 남태식(성지루 분)에 의해서 의분에 못 이겨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비판도 단죄도 없다. <강력반>이 내세우는 정의란 이런 것일까? 같은 경찰이고 서로 아는 사이니까 증거가 나왔어도 용의자로 간주해 수사해서는 안된다.

 

하긴 박세혁(송일국 분)이 범인으로 몰리는 상황이라는 것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박세혁이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고 조상태가 죽은 것을 확인한 순간 바로 경찰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며 열려고 하는데 상대가 누구인가를 살피려 하기보다는 박세혁은 그 즉시 달아나는 것을 선택했다. 자기가 범인으로 몰렸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경찰이 사건현장을 두고 도주하기로 한 것이다. 경찰이 아니었다면 모를까 - 더구나 박세혁은 정의감 넘치는 경찰이었다. 뿐만 아니라 박세혁은 조상태가 이미 조민주(송지효 분)의 아버지인 것을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살인현장을 두고 경찰이 도망부터 친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바로 그때 이미 박세혁은 정일도(이종혁 분)와 짜고 허성구 의원과 박용석 총장, 그리고 유명철의 죽음에 얽힌 ‘물건’의 행방을 쫓고 있던 중이었다는 것이다. 서로 짜고서 수사를 시작하는데 조상태가 납치당하고 살해당하는 상황을 방치한다?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이미 조상태가 죽은 상황에 그것마저 이용하려 든다는 것은 경찰로써의 직무유기이며 나아가 경찰로써 당연히 지켜야 할 윤리를 저버리는 행위이다. 아무리 수사가 중요하기로서니 한 사람의 죽음을 방치하고, 심지어 이용하려 드는가? 물론 이제까지 보아 온 강력반의 수사방식을 보면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이건 법과 당연한 윤리마저 저버려가며 목적을 달성하려는 첩보물이 아니다. 직업윤리란 특정한 직업을 소재로 할 때 가장 우선해 지켜야 하는 가치 가운데 하나다.

 

그래놓고서는 정작 조상태가 숨겨 놓은 ‘물건’을 찾았을 때 박세혁은 정일도에게 연락을 취하기보다는 남태식과 아무 생각없이 납골당을 나오다 그것을 다시 빼앗기고 만다. 빼잇간 ‘물건’을 찾으려 허성구 의원의 사무실까지 잠입해야 했고 거기서 공교롭게도 허은영을 다시 만나게 되고. 기왕에 ‘물건’을 정일도에게 넘겨줄 것이라면 어째서 낮이어서는 안 되었을까? 허성구 의원이 보낸 사람들에게 빼앗기기 전 그것을 다시 회수할 수 있었다면 일은 그렇게 꼬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조상태가 납치될 당시 지하주차장은 그다지 어둡지 않았었다. 그 정도 조명이면 충분히 자동차 번호판을 인식할 수 있다. 오래전 쓰이던 구형도 아니고 신형은 시인성이 그렇게 나쁜 편이 아니다. 더구나 아주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조상태와 박세혁을 차에 싣고 떠나기까지 조민주는 숨어 그것을 하나하나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번호판을 보지 못했다. 보지 않으려 해도 그런 상황이면 번호판이 눈에 띄겠다.

 

마치 어거지로 상황을 그리로 몰아버리려는 듯한. 그 대표적인 것이 유명철의 죽음에 대해 증거랍시고 보존되어 있는 권총 탄피 아니겠는가? 정일도가 당시 들고 있던 총은 리볼버다. 리볼버는 총을 쏠 때 슬라이드식과는 달리 탄피를 배출하지 않는다. 현장에 탄피가 남아 있다면 정일도의 리볼버에 남아 있는 것을 제외하면 정일도 이외의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증거밖에 되지 않는다. 시체에서 나왔다면 그것은 더욱 탄피가 아닌 탄두여야 할 테고.

 

아니 당시 정일도는 분명 유명철을 노리고 총을 쏘고 있었다. 정일도가 쏘았고 그리고 다른 총알이 유명철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면, 정일도가 총을 처음 잡아보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유명철이나 혹은 차 안에 또 다른 총알의 흔적이 남아 있어야 했을 것이다. 탄두가 하나 더 나왔어야 했다. 그런데 탄두는 없이 탄피만. 38구경 리볼버가 그렇게 사람을 관통해 탄두가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위력이 강한 권총이 아니다.

 

결국은 정일도와 허은영을 이어주기 위한 장치이리라. 더불어 박세혁과 정일도의 관계를 회복시켜주기 위한 장치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공식홈페이지에 나온 시놉시스상의 캐릭터를 보면 정일도는 출세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심만만한 인물이다. 드라마상의 정일도와는 맞지 않는다. 막판 박용석 총장이 정일도에 대해 야심을 일깨웠을 때 위화감을 느낀 것은 그래서다. 원래 없었던 내용을 수정해 넣은 것일까? 너무 억지스런 설정에 보고 있던 내가 다 놀랐다. 설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 것이다.

 

수사의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 경찰에 대한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 같은 경찰이니까 증거가 명백한데도 봐주고, 수사를 하는데 사람이 죽는 상황마저 이용해가며 범죄를 추적하고, 그리고 그 증거들이라는 것도 너무 동떨어진 어처구니없는 것들이다. 탄두가 아닌 탄피가 증거로 남아 있으며, 정작 총을 쏜 사람은 탄피가 배출되지 않은 리볼버를 들고 있다. 그렇게 오지랖 넓던 조민주는 지하주차장에서도 번호판을 보지 못한다. 우연과 우연. 우연이 아니고서는 사건을 만들지도 해결하지도 못하는 것일까?

 

아무튼 참 허탈하다. 뭐라도 대단한 흑막이나 있는가 싶더니만. 고작 비자금세탁 장부 하나. 그것도 연루자는 허성구와 박용석 단 둘. 둘이 그렇게 밀착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 그렇게 없었을까? 장부라면 단순히 허성구와 박용석만의 문제는 아닐 텐데도 오로지 두 사람만 나서고 있는 것도 개연성이 떨어진다. 꼬리자르기? 드라마에서도 꼬리자르기를 시도한 것일까? 장부 안에 기록되어 있을 보다 큰 거물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수사드라마였을까? 과연 <강력반>이란 경찰 강력반이었을까? 미성년자들에게 태연히 그들의 자존을 짓밟는 말을 하고, 범인을 잡으면서는 불우한 환경을 그 이유로 들고. 수사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목청과 운과 눈물로 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드라마다. 이렇게까지 초지일관 예상을 벗어나며 상식을 무시한 드라마도 드물다. 수사드라마의 문법도, 추리물의 문법도, 스릴러의 문법도 어느 하나도 지켜진 것이 없다. 놀래키려고 여러 장치를 하기는 했지만 단지 진부하고 어색하기만 할 뿐. 철저한 준비와 탄탄한 구성없이 트릭이란 억지에 다름 아니다.

 

배우들의 연기마저도 붕 떠 있었다. 캐릭터를 잡지 못한 때문이리라. 감정선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것이 차라리 안쓰럽기까지 했다. 특히 초반에 어느 정도 안정된 연기를 보여주다가 후반 들어 아예 무너져 버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끝까지 보고 난 나 자신에게 찬사를 보낸다. 나도 아주 인내심이 바닥은 아닌 모양이다. 내가 대견스럽다. 진심으로.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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