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멘티 정희주의 탈락이 결정되자 멘토 김윤아는 위로하듯 정희주에게 이렇게 말한다.
“노래를 못해서 떨어진 게 아니다. 잘했다.”
어쩔 수 없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것이니. 오디션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대중의 판단에 맡기고 대중을 상대로 무대에 오른다. 결국 대중에 의해 결정된다.
심사위원 점수 30%, 시청자 문자투표 - 위대한 국민투표 70%, 어차피 프로가수들 역시 실력과 인기가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가요차트는 실력차트가 아니다.
전문가들이야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그 실력과 가능성에 대해서만 평가를 한다. 전문가란 자신의 감정이나 기호에 대해 자기로부터 유리시켜 사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뜻한다. 어느 정도는 작용하겠지만 그보다는 전문적 지식이나 경험들이 더 크게 작용한다.
하지만 대중은 아니다. 어차피 누가 잘하고 못하고는 주관적이다. 더구나 MC 박혜진 아나운서의 멘트처럼 다음주에도 그 목소리를 듣고자 한다면 그보다는 대상에 대한 호불호가 더 크게 작용한다. 누가 더 잘 하고 못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대중들에 어필하여 그들의 호의적 반응을 이끌어냈는가?
물론 아마추어다. 프로가 되고자 하는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한 오디션이다. 이은미의 말처럼 실력과 더불어 성장가능성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오디션이기 때문이다. 오디션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바로 그 아마추어들이다. 프로가 되고자 하는 그들의 열정. 그들의 땀과 노력과 환희와 눈물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이유다. 대중은 그것을 소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한 서사를, 드라마를 기대하고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중심에 놓이며 프로가 되고자 하는 아마추어라는 자체로써 대중들에 의해 소비된다.
흔히 말하는 인기투표라는 것이다. 누가 더 좋다. 누가 더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누구를 다음에도 또 보고 싶다. 어디까지 올라가는가 지켜보고 싶다. 그러한 주관적인 이끌림이 그들의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대중이 프로 가수들, 아티스트나 연예인을 판단하는 매커니즘과 같다.
어찌 보면 상당히 잔인한 것이다. 채 싹이 자라기도 전에 맛있다고 먹어치우고 있는 것이니. 태어나지도 않은 짐승을 맛있다고 잡아먹고 있는 것이다. 대중이란 그렇게 제멋대로에 일방적인 존재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이 없다. 단지 충동적이고 즉흥적이며 이기적인 용구와 본능이 있을 뿐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바. 바라는 바. 그것을 충족할 수 있는 무언가. 그리고 누군가.
멘토가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역시나 그들은 아마추어일 테니까. 대중의 냉혹함과 변덕을 알지 못하는 아마추어인 채로 대중들 앞에 던져진 채일 테니까. 무론 밤무대도 경험해 보았을 테고, 아마추어 밴드나 배우로써 무대에 서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욕망과 충동으로 이루어진 대중이라는 실체조차 불분명한 유기체란 그들로써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것일 터다.
차라리 심사위원이 편하다. 독설을 하더라도 명확한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만 충족한다면 심사위원은 예상할 수 있는 판단을 내려줄 터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비교적 객관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실력과 가능성에 대해 판단하고 결론을 내려 줄 터다. 심사위원은 고작 몇몇의 개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체조차 불문명한 대중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해야 하고 접근해야 하는가? 그것은 결국 멘토들이 해결해 줄 수밖에 없다.
프로듀스다. 프로듀스란 말 그대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대중음악인으로써. 대중과 만나는 존재로써. 대중에 판단을 맡긴 존재로써. 어떻게 대중과 만날 것이며, 무엇으로 대중과 만날 것이며, 대중으로부터 어떤 호의적인 판단을 이끌어낼 것인가? 대중이 좋아할만한 음악을 고르고, 그것을 다시 꾸며 만들고, 가수를 훈련시키고 스타일까지 결정한다. 가수와 관련한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끌고 그들의 호의적인 판단을 유도하는 것도 프로듀서의 몫이다. 말하자면 <위대한 탄생>이란 멘티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멘토들의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의 겨룸이기도 한 것이다. 누가 더 자신의 멘토를 보다 멋지게 포장해서 대중에 보이고 대중의 호의적 판단을 이끌어내는가?
어차피 심사위원 점수의 비중이란 고작 30%에 불과하다. 시청자에 의한 위대한 국민투표에 나머지 70%가 달려 있다. 이경규가 말한 바 있다. 어째서 보이지도 않는 라디오에서 무대에서 뛰어내리며 과도한 퍼포먼스를 보였는가? 청취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심사위원들이 중요한 거니까. 합격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청취자가 아니라 바로 앞에서 보고 있는 심사위원들이다. 30%의 심사위원보다 70%의 대중이 더 중요하다.
알고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우연이었을까? 그런 점에서 그러한 오디션프로그램의 특징을 가장 잘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멘토 김태원일 것이다. 유독 김태원의 멘티 가운데 한 사람의 탈락자도 없이 세 사람 모두 TOP5까지 살아남은 것이 이유가 있는 것이다.
모두가 아는 김태원 멘토스쿨의 드라마. 김태원의 멘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누구라고 하는 강력한 캐릭터가 덧씌워졌다. 사람들은 이제 누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가를 안다. 이 노래를 누가 부르고 있으며 그 누군가에 어떤 사연이 있는가. 그리고 그들의 노래를 듣고 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때의 감동이 떠오른다.
더구나 어설프게 단점을 보완하려 하지 않는다. 연습기간에야 단점을 최대한 보완해야 할 테지만, 매주 새로운 미션에 도전해야 하는 멘티들에게 있어 생방송 기간 동안 연습과 단점보완을 병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차라리 그보다는 시청자에 어필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장점으로써 시청자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어야 한다.
생방송 2주차에 김태원이 손진영에게 ‘She's Gone’을 선곡해 준 것도 그런 맥락이다. 손진영만의 처절한 음색과 시원한 고음을 살릴 수 있는 노래는 이것이다. 실제 후반 고음에서 힘에 달려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손진영의 노래에 감탄하고 기대하고 있기도 했었다. 지난주의 ‘사랑해, 그리고 행복해’를 부르고 나서도 김태원은 손진영의 단점인 올드하면서도 과잉된 음색에 대해서 누구도 선호하지 않는 음색을 개척해가고 있다며 의미를 부여해 준다.
확실히 단점을 보완하려 하기보다 장점을 살리는 김태원식의 선곡은 어제의 무대에서 이제까지 가운데 - 아니 다른 TOP6에 비해서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여전히 아직도 어색하고 보완해야 할 점이 많지만, 그러나 손진영의 목소리가 가진 강점이 무언가는 확실하게 어필되고 있었다. 생방송 첫주 ‘이 밤이 지나면’에서부터 이어진 김태원의 마법이었다. 확실하게 대중에 각인시킨다.
이태권이나 백청강이야 생방송 시작 전부터 유력한 우승후보들이었지만, 전혀 누구도 기대도 않았던 손진영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미라클맨. 김태원이 부여한 별명 그대로 손진영이라고 하는 캐릭터와 그에 어울리는 적저한 선곡은 상승작용을 일으켜 대중의 판단을 유도하고 강제한다. 떨어지면 안돼. 다시 보고 싶어. 심지어 이제는 그토록 의심받고 비난받던 실력에 대해서조차 제법 잘한다는 말을 듣고 있다.
그야말로 마법인 것이다. 때로 사람들은 말한다. 도대체 저 노래가 어떻게 히트했는가. 저 가수가 어떻게 인기가수가 되었는가. 도저히 이해하지도 납득할 수도 없는 상황들을 만들어가는 것이 쇼비즈니스인 것이다. 도저히 히트할 수 없을 것 같은 노래도 히트시키고, 도저히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은 가수도 스타로 만들고.
어쩌면 현역 프로듀서인 방시혁의 굴욕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돌 기획사의 사장으로써 대중의 기호를 읽고 판단하는 최전선에 있는 방시혁일 텐데도 대중들에 자신의 멘티들이 갖는 강점을 어필하는데는 그다지 성공하고 있지 못하다. 데이비드 오는 그 타고난 가능성과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현재 가장 위태한 멘티 가운데 하나다. 이은미나 김윤아나 그런 시류에 휩쓸리기에는 비주류적인 감성이 강한 사람들이라 그렇다 할지라도 신승훈의 경우도 그의 노래처럼 너무 자신에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까지 다른 멘토들의 멘티들이 탈락한 과정을 보면 너무 맞지 않은 옷이 입혀졌다. 권리세와 백새은의 경우는 적절한 서사를 통해 대중들에 접근하는데 실패하고 있었으며, 황지환과 조형우 등은 명백한 선곡의 실수였다. 김혜리 역시 대중들에 호의로써 다가가는데 실패하고 있었다. 노래를 못해서가 아니었다. 대중이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노래를 잘해서도 있다. 재능도 뛰어나고 실력들도 훌륭했다. 그보다는 결국 멘토들의 프로듀스에 따라 결과가 갈리지 않았는가. 프로듀서 김태원의 승리라 할 것이다. 그다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자원들을 가지고도 이렇게 확연하게 차이를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멘토 김태원의 서포트가 그만큼 훌륭했었다. 김태원의의 힘이다.
물론 그렇다고 <위대한 탄생>에서의 결과가 그네들의 음악에 대한, 삶에 대한 평가이고 판단일 것인가? 김태원이 말한 대로 이것은 단지 과정에 불과하다. <위대한 탄생>에서 어떤 결과를 내든 그것을 프로로서의 출발점에 서는 것에 불과하다. 과거 한 때 모든 이를 내려다 보는 최고의 자리에 있었으나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얼마나 오래 하는가. 그래서 말하지 않는가. 앞으로도 이와 같은 음악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면 좋겠다.
게임이다. <나는 가수다>가 한 가수에 대한 판단을 전적으로 결론짓지 않듯 <위대한 탄생> 역시 하나의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참가자들의 현재 실력과 가능성을 대중의 판단을 빌어 평가하 보는 것에 불과하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전문가인 멘토들도 모르는 것이다. 단지 지금의 무대에 충실하게. 이후는 <위대한 탄생>이라는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비로소 다시 시작하고 설계해 나갈 것이다.
지나치게 심각할 필요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은미 멘토스쿨에서 TOP12에 들지 못했던 박원미도 이번에 음원을 낸다 한다. TOP12에 들지 못해도 음원을 내고 프로로써 데뷔할 수 있다. 가수로서의 판단은 그때부터 내리면 된다. 아니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고 열정을 잊지 않고 있다면 그때라도 판단은 내려 볼 수 있다. 음악을 하는 동안에는 그들과의 관계는 여전히 끝나지 않을 채일 테니.
아무튼 백청강은 한계가 너무 뚜렷하다. 아쉬운 부분이다. 오히려 손진영의 경우는 단점이 크고 많은 대신 내세울만한 강점이 있다. 이태권 역시 자기만의 강점으로써 대중들에 어필하기가 쉽다. 그러나 백청강의 경우는 이렇다 할 단점은 없지만 목소리가 주는 감성을 제외하고 이렇다 하게 강하게 인상을 남길만한 강점은 부족한 편이다. 그것이 백청강이 정체되고 있다 여기는 이유가 되고 있을 텐데. 이번 조용필 미션에서도 목소리에 두께가 없다는 단점이 특유의 고음과 리듬감에도 불구하고 밴드 사운드에 먹히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개인적으로 데이비드 오와 함께 최악의 무대였다.
손진영의 경우는 이제까지의 과잉된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고 부르니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물론 가왕 조용필에 비할 바는 아닐 테지만 마치 자기 노래를 부른 듯 너무나 잘 어울리고 있었다. 누구나 인정할만한 최고의 무대였다. 비록 심사위원의 점수는 출연자 가운데 최하를 달리고 있었지만 충분히 시청자에 어필할만한 무대이고 노래였다.
정희주의 경우는 뭔가 불안불안했다. 잘하기는 하는데, 그 감정선이 잘 살아 있어 빨아들이는 맛은 있는데, 전적으로 끌려들어가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정희주의 경우는 그나마 나머지 멘티들 가운데서도 가장 서사가 잘 만들어진 캐릭터일 텐데. 역시 백청강과 마찬가지로 어필할만한 강점이 부족하다. 단점은 없지만 장점도 없다. 백청강이 보고 경계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살아남는 것은 단점이 없는 누군가가 아니라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자기만의 강점을 가진 누군가일 것이다.
셰인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오로지 음색 하나였다. 마성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특유의 미성이 오로지 그가 가진 전부였다. 그러나 항상 그것을 최대한 잘 살려 대중에 어필했기에 가능성과 한계의 기로에 있다는 멘토 김태원과 방시혁의 평가에도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단점도 크지만 장점도 그것을 커버할 만큼 크다.
이태권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담백함은 ‘꿈’이라는 노래와 너무 잘 어울린다. 여전히 열정이 남아 있지만 관조할 수 있는 연륜이 있다. 20대의 나이에 40대의 감수성을 가진 이태권의 미성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이태권이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상상하기도 했었다. 이은미가 단 한 소절로 인해 평가를 바꿨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그렇게 저리게 아프고 아름다운 노래였다. 단연 최고였다.
데이비드 오는 그냥 퍼포먼스였다. 노래는 들을 게 못 되었다. 무대에서 밴드 사운드에 맞춰 방방 뜬다. 하긴 그것이 밴드이기는 하다. 라이브다. 무대를 즐기는 것. 그 무대에 맞춰 순간순간 만들어가는 것. 데이비드 오의 강점은 바로 이런 데 있을 터였다. 그동안의 무대들은 너무 짜맞춰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태권에 대해서도 신승훈이 더 이상 음정과 박자에 신경쓸 필요 없이 필을 따라 가도 좋다고 허락한 바 있었지. 이 쯤 되었으면 짜여진 무대에 따라가기보다는 자기만의 무대를 만들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위대한 탄생이라니. 최장수밴드이며 최고의 실력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허락되는 최고의 밴드다. 가왕 조용필과 함께하는 음악적 동지들. 단순히 반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음악을 만들고 무대를 만들어가는 이들이다. 오로지 조용필을 위해서만 연주를 하고 무대에 서던 그들이 아마추어들을 위해 무대에 서고 연주를 한다?
하기는 아마추어니까. 음악의 꿈을 가진 햇병아리들이니까. 가능성에 불과하니까. 아직 프로의 치열함을 경험하지 못한 어린아이들이기에 베풀어질 수 있는 관용이며 선물일 것이다.
솔직히 연주에 묻혀 멘티들의 노래조차 잘 들리지 않았다. 명성에 어울리는 최고의 연주와 그 연주를 들려주는 최고의 사운드. 이제까지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무대였다. 그리고 그런 밴드 사운드로 인해 또한 명운이 갈리기도 했었다. 정희주가 떨어진 데에도 위대한 탄생의 밴드 사운드를 최대한 살리지 못한 선곡과 편곡에 있었을 것이다. 데이비드 오의 무대는 그 완성도와는 별개로 신이 났다. 앞으로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은 무대. 영구소장하고 싶을 정도다.
이제 TOP5. 그렇다고 그다지 멀지는 않았다. 4주면 끝이리라. 한 주에 한 명씩 4주면 마지막 우승자가 갈린다. 그리 많지 않은 시간 최선을 다해 꿈을 이룰 수 있기를.
조용필의 노래를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구나 새삼 깨달았다. 그다지 조용필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고 있었는데. 가수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명곡. 그 말 그대로. 명곡과 함께 업그레이드되어가는 멘티들이었다. 아쉬움 만큼이나 만족도 컸던 훌륭한 무대,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63
'예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가수다 - 왕의 귀환, 그러나... (0) | 2011.05.02 |
---|---|
무한도전 - 디너쇼... (0) | 2011.05.01 |
위대한 탄생 - 조용필 미션... (0) | 2011.04.29 |
승승장구 - 김완선의 눈물... (0) | 2011.04.27 |
놀러와 - 나가수와 토토즐... (0) | 2011.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