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나는 가수다 - 왕의 귀환, 그러나...

까칠부 2011. 5. 2. 10:18

눈물이 핑 돌았다. 아아, 왕이 돌아왔구나. 전설이 돌아왔구나.

 

그런 때가 있었다. 한국인에게 메탈이란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인이 메탈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연주도 연주지만 외국에서와 같은 파워풀한 고음보컬이 당시까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얼마나 놀랐겠는가. 하나의 기적이었다. 한국인에게서도 이런 소리가 나오는구나. 한국인도 이렇게 노래를 부를 수 있구나. 3대 보컬이라 했었다. 임재범, 김성헌, 김종서, 하나같이 탁월한 고음보컬들이었고 당시 한국 메탈의 붐을 주도하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임재범이 있었다.

 

노래하는 짐승이다. 짐승은 본능으로 살아간다. 노래하는 짐승이란 노래하는 본능으로 살아간다. 타고난 목소리에 그저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것만 생각했다는 피나는 노력이 곁들여지며 그는 이미 20대 초반에 완전체 보컬이 되었다.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오로지 단 한 사람의 임재범으로써.

 

말한다. 임재범의 노래는 그저 부르는 것만으로도 손해다. 어째서 여성들은 노래방에서 남자들이 임재범의 '고해'를 부르는 것을 그리 싫어하는가? 노래가 싫어서가 아니다. 임재범이 아닌 것이 싫어서다. 모창이라는 자체가 불가능한 특별함. 탁월함. 그 자체가 브랜드다.

 

아니나 다를까. 세월이 그의 야수같은 목소리를 무디게 만들기는 했지만 또한 그 첨예한 감정의 선을 더욱 예리하게 다듬어 놓았다.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노닐 듯 잇고 끊고 밀고 당기고 흘리고 굴리는 그것이 그저 마법과도 같다. 조련사에 의해 길들여진 강아지마냥 어느새 그의 노랫소리에 휩쓸려 나 역시 눈물을 글썽이고 만다. 단연 그는 최고다. 임재범이다. 심연에서 끌어올려진 듯한 마성의 목소리란. 취해버린다. 노래에 취하고 임재범의 목소리에 취하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생각한다. 이대로 과연 좋은가? 전설일 것이다. 전설이란 이미 판단이 끝난 것이다. 판단이 모두 끝나고 그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신해철도 말한 바 있었다. 이름만으로 음반을 사 주는 음악인이 최소 100명은 되어야 한다.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받아들이는 것이다. 먼저 다가가서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지금 누가 피카소를 두고 그림을 잘그리네 못그리네 따지고 하던가? 이제 와서 고흐더러 그렇게 그림을 그리면 안 된다고 해봐야 모두 끝난 이야기다. 현대검도로 따지면 고작 4단 정도의 실력에 불과하다지만 그렇다고 과연 미야모토 무사시더러 약하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마찬가지로 음악에 있어서도 이미 판단이 끝났으니까. 그의 음악인으로서의 역량과 가치에 대해서 이미 판단이 끝난 뒤인 것이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더할 것은 있어도 이미 이루어 놓은 것이 있기에 빼는 것은 의미가 없다. 불경이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가수들마저 놀라고 설레어하며 동경해 마지않는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 임재범이 과연 지금에 와서 대중들 앞에 자신의 노래에 대해 평가를 받아야 할까? 더구나 전성기를 한참 지난 50살이 다 된 나이에 한참 후배들과 자신의 기량에 못 미치는 실력으로 경쟁하며 평가되어야 하겠는가 말이다. 그러다 자칫 7위를 하고 떨어지기라도 하면?

 

박완규의 염려를 이해한다. 방송을 보는 순간 절절하게 깨닫고 말았다. 나 역시 전설이 상처입는 것은 보고 싶지 않다. 전설은 전설인 채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이제 와서 후배들과 경쟁하여 누가 더 잘하네 못하네, 그것만으로도 이미 내게는 상처다. 아픔이다.

 

신승훈도 <놀러와>에서 그리 말한 바 있었다. 김태원이 부활을 알리기 위해 예능에 출연하기로 결심했다고 했을 때 우리나라 음악계가 이래도 좋은가 생각했었다고. 그나마 김태원은 예능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도전한 것이다. 하물며 이미 전설이 되어 버린 이가 다시금 사람들 앞에 나서서 평가받고 판단되어진다는 것은 과연 어떨까?

 

그럴 레벨은 지났다는 것이다. 그러기에는 임재범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단지 한 사람의 가수로써 대중 앞에 노래를 평가받는다. 살아남고 탈락하고를 판단되어진다. 그것은 그를 우상으로 여기던 시대에 대한 모독과도 같다.

 

다만 그럼에도 모순이라는 것은 그런 무대조차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리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것이다. 결코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안타깝고 슬프면서도 그의 노래를 듣는 것이 이리도 기쁘고 즐겁다. 나 역시 이기적인 개인이니까. 그리고 그것이 대세일 테니까.

 

<나는 가수다>에 대해 이리저리 비판적인 이야기도 많이 하고 하지만 사실 필자 개인으로서 <나는 가수다>에 대한 감정은 그리 없다. 오히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무척 좋아한다. 실력있는 음악인들로 하여금 경쟁이라는 장치를 통해 그들의 음악인으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최선을 다해 무대를 만들고 노래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은 더 할 나위 없는 축복일 테니까. 이제는 명맥이 끊긴 과거 공중파의 쇼음악프로그램들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짜여진 무대만을 반복하는 것이 아닌 무대를 만들고 채워가는 그 모습들이 지금은 잊혀진 무엇을 닮아 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것이다.

 

어차피 더 이상 가수들이 설 무대가 사라져가고 있고. 특히 사람들이 주로 TV를 시청하는 황금시간대에서 음악프로그램들이 사라진 것이 꽤 되었다. 아주 늦은 심야에나 가서야, 다음날 일찍 일어나려 할 때 애로사항을 감수해가며 지켜보아야 겨우 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나 무관심 속에 아주 적은 수만이 살아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무대도 좋지 않을까?

 

다만 그럼에도 임재범과 같은 이들마저 그런 무대에 서야 한다는 것은 그리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감정의 영역일 것이다. 조용필마저 무대에 세우자 한다. 나훈아마저 무대에 서야 한다고 한다. 서바이벌을 통해 경쟁하고 평가단으로부터 평가되어야 한다고 한다.

 

어째서 현재의 대중음악이 아이돌 위주로 흐르고 있는가. 아이돌의 음악이야 말로 대중을 섬기며 대중의 욕구에 충실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대중들로부터 평가받고 대중들에 의해 판단되어지는, 그러고자 만들어지는 음악인 때문이다. 대중의 요구에 충실하여 이익을 노리는 연예기획사의 의지의 산물이라고나 할까? 그토록 평가하기 좋아하고 판단하기 좋아하고 주체로써 가수를 인정하고 존중하려 하지 않으니 기획사의 의지가 관철된 아이돌이 대중적으로도 대세를 이룰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임재범쯤 되면 전설로써 존중되었으면. 단지 무대에 서는 자체만으로 영광스럽고 반가울 수 있었으면. 임재범과 함께 무대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감격스러워하는 가수들처럼. 임재범은 충분히 그만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난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이며 자존심 그 자체일 테니까.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당사자야 좋다고 한다. 당사자야 딸이 바라고 하니 괜찮다고 한다. 내가 불편하니까. 내가 괜찮지 않으니까. 임재범 한 사람 정도는 전설로 남아주기를 바라니까. 영원히 전설로써 존경받을 수 있기를 바라니까. 그럼에도 또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임재범의 노래에 - 아니 출연 가수들의 노래에 감동받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이율배반의 모습일 것이다. 어쩌겠는가? 그리 안타깝고 아쉬우면서도 존경스러울 뿐이다. 한국 대중의 보컬에는 임재범과 나머지만 존재한다.

 

의미깊은 무대였다. BMK에, 김연우에, 사실 몇몇 가수들의 노래는 취향과 거리가 멀었다. 좋았던 노래보다 그다지인 노래가 더 많았다. 하지만 호불호로 판단하기에는 나머지 역시 이미 전설을 향해 가고 있는 가수들일 터이므로. 무대에 짙은 여운과 감동이 있었다.

 

임재범, BMK, 김연우, 세 사람의 새로운 멤버들을 환영하며. 에피타이저로서는 너무 진했다. 기대가 커진다. 도대체 어떤 음악을 들려줄 것인가?

 

여전히 비판적이다. 앞으로도 항상 비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귀기울여 들으리라. 대한민국 최고의 내로라 하는 가수들이 만들어내는 천상의 소리를. 그 아름다움을. 그것은 나란 인간의 본능일 터이므로. 더 나은 훌륭한 음악을 듣고 싶다. 욕심이다.

 

바라는대로 딸에게도 자랑스런 아버지가 될 수 있었으면. 이번에 1위를 했으니 체면은 세웠을까?. 아내의 병도 얼른 차고 일어나 건강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지킬 것이 있을 때 남자는 강해지며 또한 약해진다. 그것은 결국 하나다. 강한 남자 임재범은 그 노래 만큼이나 아름답다.

 

사랑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사람은 노래를 들으며 가수와 사랑에 빠진다. 그와의 관련된 이야기에 도취되어 사랑을 하고 우정을 나눈다. 임재범이여! 그 임재범을 매주 볼 수 있다는 한 가지만으로도 프로그램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씁쓸함과 아쉬움, 그리고 반가움. 전설이 전설로 남을 수 있기를. 그러면서도 멋진 노래들을 들려주었으면. 매주 방송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축복인가?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예전엔 전혀 상상도 못했다. 방송 펑크는 안 내겠다는 마지막 다짐처럼. 이런 날도 오는 것일까?

 

전설은 잃었으나 기적을 얻었다. 그러나 전설은 여전한 전설이다. 그럴 수 있기를. 부디.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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