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잔 - 남진
그대의 싸늘한 눈가에 고이는 이슬이 아름다워
하염없이 바라보네 내 마음도 따라 우네
가여운 나의 여인이여
외로운 사람끼리 아~ 만나서 그렇게 또 정이 들고
어차피 인생은 빈 술잔 들고 취하는 것
그대여 나머지 설움은 나의 빈잔을 채워주
그대의 싸늘한 눈가에 고이는 이슬이 아름다워
하염없이 바라보네 내 마음도 따라 우네
가여운 나의 여인이여
외로운 사람끼리 아~ 만나서 그렇게 또 정이 들고
어차피 인생은 빈 술잔 들고 취하는 것
그대여 나머지 설움은 나의 빈잔을 채워주
나의 빈잔을 채워주
가사 출처 : Daum뮤직
솔직히 내게 있어 남진이란 관심외의 인물이라. 제법 좋아하는 노래들도 많은데 정작 가수인 남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단지 70년대까지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는 정도? 나훈아가 70년대까지 남진에게 안 되었다. 80년대 들어서나 따라잡고 있었지. 지금은 완전 역전이지만.
아무튼 이 노래가 아마 1982년 발표된 노래였을 것이다. 당연히 기억에는 없다. 어느 순간 귀에 들리고 따라부르고 있었을 뿐. 이은미가 예전 왜 자기 노래는 반응이 느리게 올까 한탄한 적 있었는데 원래 히트곡이라는 게 그렇다. 관심이 없어도 어느샌가 자연스레 귀에 스미고 입에 배인다.
참 가사가 성인스럽다. 아니 남진과 얽힌 어떤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아마 헤어지는 중이었을 것이다. 애써 매정하게 이별을 통보하는 순간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 그리고 그 눈물을 보며 그녀의 아픔을 본다. 헤어짐에 대한 원망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는 그녀의 애닲음이.
어차피 외로운 사람끼리 만나서 그렇게 정을 주고 정이 들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한다. 그렇게 만나고 그렇게 정이 들고 그렇게 헤어지는 것이라고. 빈 술잔을 들고 취하는 것처럼 그렇게 흉내내며 살아가는 것이다. 취하지 않고도 취한 것처럼 취했어도 취하지 않은 것처럼. 그러니 받아들이리라.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태연한 척, 그렇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주리라. 그렇게 연기해 보이리라.
그러니까 그 이야기가 생각난다는 것이다. 얼마전 그와 관련해서 또 한 당사자가 나와서 이야기 한 바 있었는데. 예전에도 들으면서 혹시 아닐까 싶었다.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오히려 시간이 지남으로써 무르익어 표현되는 것이기도 하기에.
인생의 쓴 맛 단 맛을 다 보고 이별의 아픔조차도 관조할 수 있게 된 어른의 이야기다. 어느새 딱정이가 지고 새살이 돋아 괜찮아졌지만 그 영혼에 새겨진 숱한 상흔들은 그가 겪어야만 했던 아픔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아픔조차 면역되어 버렸다. 빈 술잔에 취하듯 아무렇지도 않다며 견뎌낼 수 있게 되었다. 삭이고 또 삭여 태연히 웃으며 보내 줄 수 있게 되었다. 서러움은 내 가슴 속에만. 나 홀로 혼자서만.
임재범의 '빈잔'을 들으면서 어색했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그렇게 처절하게 피를 토하며 부를 노래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상처에는 피를 철철 흘리며 절규하듯 부르는 노래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물론 바로 그것이 임재범이기는 하다. 너무 임재범스러웠다. '빈잔'이 아니라.
과연 임재범이 남진처럼 불렀다면 맛이 났을까? 그는 임재범이니까. 다만 남진이 부른 원곡의 느낌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임재범에게는 임재범만의 색깔이 있고 남진에게는 남진의 색깔이 있다. 그리고 '빈잔'은 남진의 노래다. 남의 노래를 부른다는 느낌이 확실히 강하다.
참 남진도 노래 하나는 끝내주게 부르는 가수인데. 벌써 환갑도 한참 넘은 원로 가수에게 노래를 잘하네 못하네 하는 자체가 불경이기는 하지만, 남진이 부른 팝이나 록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장르를 뛰어넘는 보컬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듯. 트로트에서 최적의 매력을 발산하지만.
문득 듣고 싶어졌다. 임재범의 '빈잔'을 들으며. 내내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은 남진이 부른 그 능글맞을 정도로 처절한 '빈잔'이었다. 떠나는 이를 위해 아픔마저도 웃음으로 삭여낼 수 있는 남자의 허세라고나 할까? 그건 또 역시 임재범과는 안 어울리지. 그는 짐승이니까. 이건 남자의 노래다.
하여튼 바로 이런 것이 트로트라는 것이다. 록과는 다르다. 임재범이 남진이 될 수 없는 이유다. 남진 또한 임재범이 될 수 없을 테고. 그리고 나는 그런 트로트를 좋아한다. 어른의 노래다. 원초적인 어른의 동요. 임재범의 '빈잔'보다는 역시 남진의 '빈잔'이 좋은 이유다. 듣게 되는 것이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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