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생각한다. 그럴 때 사고가 터진다.”
비단 공아정(윤은혜 분)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누구나 그런 때가 있다. 머리가 마비되어 버린 듯 입과 손발이 따로 놀 때가. 사고가 터지는 순간이다.
하기는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란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항상 냉정하게 이성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얼마나 재미없는 세상이 될까? 전혀 생각지도 않은 말이 터져 나오고,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이 불거지고, 그래서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공아정이 유소란(홍수현 분) 앞에서 하지도 않은 결혼을 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굳이 그랬어야 했던 이유가 있는가? 아직 결혼은 커녕 사귀는 상대도 없는데 굳이 결혼했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는가? 하지만 유소란 앞에서 꿇리기 싫었으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내가 너보다 잘난 남자를 만나는 게 싫은 거네? 내가 너보다 못난 남자를 만나야 공평한 거니?”
“당연하지! 그것이 우주의 법칙이고 세상의 질서야!”
확실히 이쯤 되면 누구라도 머리로 생각하기보다는 가슴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남자라면 아마도 바로 주먹이 날아갈 테고, 여자라도 역시 손발이 먼저 움직이려 들지 않을까? 그리고 공아정의 경우 그것을 이 한 마디로 대신하게 된다.
“여보!”
공아정이 사실을 밝히고 헛소문에 대해 해명해 줄 것이라 믿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던 현기준(강지환 분)의 순간 굳어버리는 모습이라니.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일 것이다. 느닷없이 경쟁심에 오기로 내뱉은 말에 하지도 않은 비밀결혼의 당사자가 되더니, 이제는 그 상대로부터 여보라는 말까지.
아마 로맨틱 코미디 사상 가장 불쌍한 남자주인공이 아닐까? 다른 로맨틱 코미디에서는 그래도 최소한의 호감이라든가 관계를 전제로 만남이 이루어지는데, 하지만 보아하니 아직까지는 현기준에게 공아정에 대한 어떤 감정도 없는 것 같다. 더구나 공아정마저 현기준에 대해 어떤 호감도 없어 보인다는 점이 크다. 사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랑받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남의 사정에 의해 떠밀려 얽히고 엇갈리게 된다? 드물게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남자주인공 현기준이 인내심 강한 좋은 남자임을 알게 해준다. 일반적으로 그 쯤 되면 그렇게 이성적이기 힘들다.
바로 그런 비대칭적이고 일방적인 관계가 이 드라마의 매력포인트일 것이다. 아마 드라마에서 현기준은 철저히 당하는 역할로 나오리라. 상황은 공아정이 주도하고 있고, 그 공아정을 떠미는 것이 그녀의 친구 유소란일 터이니. 유소란의 존재가 공아정의 등을 떠밀고, 공아정에 의해 어느새 현기준은 자기도 모르는 새 유부남이 되어 있다. 앞으로 공아정의 입장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릴 현기준의 모습이 선하다고나 할까?
아마 그래서 현기준의 캐릭터는 작은 농담조차 하지 않는 것일 게다. 오히려 항상 진지하기 때문에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 현기준이다. 그렇게 잘나고 대단한 현기준의 캐릭터가 공아정과 주위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난처해하는 모습이 묘하게 가학적인 쾌감을 느끼게 만든다.
열등감일 것이다. 질투심일 것이다. 마치 유소란이 공아정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이며 유일한 사랑이던 천재범을 가로채 결혼에까지 이른 것처럼. 그리고 공아정이 결혼을 했고 그 상대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자 그것을 믿지 못하고 공아정을 몰아세우는 그 모습처럼. 역시 유소란 또한 여러 가지로 자기가 따라가지 못하는 공아정의 장점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런 식으로 공아정을 비웃고 조롱하는 식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텐데. 그런 뒤틀린 감정이 저와 같은 비대칭적 상황에 야릇한 대리만족마저 느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유소란 역시 가슴으로 생각하는 캐릭터였을 것이다. 이성으로 냉정하게 사고하고 판단하기보다는 순간의 충동과 감정에 솔직하다. 유소란이 공아정을 대하는 것이 그렇다. 공아정이 실제 현기준과 결혼했을 리 없다는 믿음도 이성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맹목적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어쩌면 세상이란 그렇게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캐릭터들은 가슴으로 생각하여 사건을 만들고, 시청자는 그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여 웃고, 그러면 제작진은 그냥 있는가? 그래서 이 드라마는 철저하게 로맨틱 코미디 가운데 코미디에 맞춰져 있다. 세세한 부분에서의 사실적 묘사 따위는 한 구석에 치워 버린 지 오래다. 사장이 이야기하는데 직원들이 일일이 반응하며 고개를 젓고 끄덕이고 할까? 하긴 공아정과 현기준이 비밀결혼을 했다고 해도 그런 이야기가 그렇게 빨리 자세하게 사람들 사이에 퍼지지는 않는다. 철저히 과장되었다. 하지만 그 과장된 묘사들이 어울리는 것은 굳이 이성으로 판단하고 보는 드라마가 아닌 까닭이다.
충동으로 사건은 벌어지고, 따라서 묘사 역시 충동적이다. 머리로 계산하고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느낌을 따라 가는 것이다. 시청자가 이쯤에서 이렇게 반응하리라. 시청자가 이쯤에서는 이렇게 느끼고 생각하리라. 그것을 그대로 묘사해 보여주는 것 같다. 장면장면이 상황과 캐릭터에 반응하여 보여지는 것 같다. 한 마디로 생각없이 보기에 좋다.
칭찬이다. 항상 사람이 심각할 수는 없다. 항상 진지할 수도 없다. 그것은 또 그것대로 따로 어울리게 즐기면 된다. 진지하게 고민해 가며 웃는 것도 웃는 것이지만 때로는 가슴이 시키는대로 그대로 받아들이며 웃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그것이 또 코미디이기도 할 터다. 머리로 생각하고 웃는 것이 아니라 웃음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웃는 것.
그런 드라마다. 유쾌하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웃고 나서도 잔찌꺼기가 남지 않는다. 후련할 정도로 산뜻하게 웃음 그 자체에 천착한다. 그러면서도 개연성을 무시한 억지스러움?그다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대단한 점일 것이다. 충실하지만 완고하지는 않다. 분방하지만 그렇다고 허술하지는 않다. 그 균형점을 잘 찾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볼수록 매력적인 드라마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보았는데 갈수록 드라마의 매력에 빠져드는 것 같다. 아직 캐릭터의 매력까지는 느끼지 못하지만 상황을 만들고 전개해가는 모습이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다.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는 전개되어 갈 것인가? 기대하게 된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성을 고순도로 정제한 듯한 느낌일까? 마음이 놓이면서도 새로운 재미가 있다. 로맨틱 코미디가 추구하는 바, 남자와 여자가 만나 만들어가는 달달하면서도 간지러운, 유쾌한 이야기가. 그저 마음껏 웃게 된다. 가장 목적이 충실한 로맨틱 코미디였다.
유소란의 캐릭터를 주목해 본다. 얼마나 욕을 먹느냐에 드라마의 성패가 달려 있으리라. 어쩌면 드라마의 방향타와도 같은 존재다. 과연. 흥미로울 것이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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