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애정, 나는 독고진이야! 특별한 사람이야! 그런데 어쩌다가 너같은 사람이 들어온 거야?”
“나는 구애정이 함부로 들락날락거리면서 쑤시고 다닐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내가 내 안전을 지켜주는 비밀번호를 너한테 알려줄 것 같아? 나는 철통같이 잘 지켜왔고 안전하게 잘 살아왔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래야만 해. 함부로 드나들게 그냥 두지 않을 거야!”
참으로 진지하다. 비장하기까지 하다. 감히 독고진(차승원 분)이 구애정(공효진 분) 따위에게 반하다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상황을 차마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그는 구애정 앞에 선언한다.
“너 따위가 나 독고진의 마음을 함부로 들락날락 들쑤시고 다니도록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독고진의 비장하고도 단호한 각오와 다짐은 구애정의 짧고 무심한 한 마디에 의해 그대로 허물어져 버리고 만다.
“이거, 해제됐네?”
“아까 안전범위 60에서 90, 그래서 6090 눌렀더니 되던데요?”
구애정에 이끌리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기 싫어 필사적인 독고진에 비해 얄미울 정도로 무심하고 여상한 구애정. 그리고 그 순간 독고진은 그 사실을 인정해 버리고 만다.
“구애정에게 해제됐어!”
상당히 속도가 빠르다. 의외로 상당기간 속마음을 인정하기 싫고 들키기 싫어 이야기를 쓸데없이 꼬지 않을까 싶더니만 전개가 상당히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기는 사랑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니까. 독고진이 구애정에게 반했다고 구애정 또한 독고진에게 호감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현실은 최고의 인기스타 독고진과 국민비호감 구애정이지만 그렇다고 구애정이 일방적으로 독고진의 마음에 응해주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더구나 구애정에게는 윤필주(윤계상 분)라고 하는 역시나 선량하고 다정한 완벽남이 있다. 윤필주의 조건 또한 독고진에게 뒤지지 않는다.
결국은 독고진이 구애정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알리게 되면서 이제부터는 구애정의 마음 가는 곳을 따라가는 것이 아닐까? 하필 더구나 독고진이나 윤필주나 하나같이 구애정과 이런저런 사연들로 얽혀 있는 강세리(유인나 분)와도 관계가 있다. 과거 국보소녀에 관련해 강세리와 얽힌 이야기들도 그렇게 풀어갈 것이다.
하여튼 정말 연출이 기가 막히다. 마치 복선과도 같고 몽타쥬와도 같이 적절히 사물과 상황을 메타포로 아주 잘 사용해 보여주고 있다. 앞서의 현관 비밀번호도 마찬가지다. 현관을 열 수 있는 비밀번호지만 그 순간 독고진에게는 자신의 마음으로 들어오는 비밀번호로 여겨지고 있었다. 구애정에게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그의 마음도 열려 버렸다.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구애정이 오빠와 자신의 매니저와 함께 국보소녀 시절 리더였던 제니(이희진 분)의 가게로 향했을 때 홀로 남아 집으로 돌아온 독고진의 대사였다.
“쟤는 떨어져 나갔는데 너는 왜 혼자 물들어 있는 거야?”
이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고진이 굳이 장미꽃잎 하나를 손수건에 싸서 가지고 오게 된 사연을 먼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극중 연애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커플메이킹’에서 윤필주에 의해 구애정이 선택되고 구제되는 순간 윤필주가 건네는 장미꽃을 받아드는 구애정의 모습에 독고진은 자신이 구애정을 좋아하고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도저히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사실에, 더구나 윤필주에 대한 질투심까지 더해지면서 독고진은 구애정에게 심술을 부리고 구애정이 윤필주로부터 받은 장미꽃을 쳐서 떨어뜨린다. 그리고 그 장미꽃을 주워서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려는데 이 장미꽃잎이 쓰레기통 뚜껑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거슬리지 말고 떨어져, 구애정! 알짱거리지 좀 마! 떨어져! 떨어져! 제발 떨어져!”
그런데 정작 장미꽃잎이 쓰레기통 뚜껑에서 떨어질 듯 보이자 그것을 서둘러 멈춰 세우고는 곱게 손수건에 싸서 가져오게 되었으니 바로 독고진의 손수건에 붉은 하트 문양을 물들여 놓은 그 장미꽃잎이 이 장미꽃잎이었다.
한 마디로 구애정이었다. 독고진이 쳐서 떨어뜨린 것도, 그것을 주워 버리려 했던 것도, 그럼에도 끈질기게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던 것도, 떨어지려 할 때 서둘러 붙잡아 세운 것도, 그리고 장미꽃잎이 진하게 하트를 새겨 놓은 독고진의 손수건은 독고진 자신이었으리라.
바로 그 윤필주에 의해 구애정이 구제되고 그를 통해 자신이 구애정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놀라고 당황해서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온 독고진이 기대 서 있던 벽에 붙어 있던 드라마 포스터들도 아주 짓궂으면서도 노골적이었다.
“내 인생의 콩깍지”라는 제목 그대로 독고진은 콩깍지가 씌어 버렸으며, “황태자의 첫사랑”이라는 제목처럼 연예계의 황태자로서 비로소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 “위기의 남자”는 그 순간 독고진의 심정을, 그리고 구애정이 촬영장을 나와 독고진의 앞에 섰을 때 그녀의 뒤에는 “당신은 참 예쁘다”라는 드라마 제목이 보이고 있었다. 각각 2003년에 방영한 월화드라마, 이듬해 방영한 수목드라마, 2002년 방영한 월화드라마에, 2011년 현재 방영중인 아침드라마의 제목이다. 절묘한 배치와 상황연출이 가히 예술의 경지에 있다.
아예 대놓고 복선이다. 드러내 놓고 암시다. 드라마 자체가 스포일러다. 섬세한 심리묘사 따위 내다 버리라는 식으로 이렇게 여러 장치를 통해 아예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드라마가 더욱 속도를 낼 수 있는 이유다. 속도를 더욱 빨리 하면서도 어느 한 구석 허술하거나 빈 곳이 없다. 꽉꽉 눌러 채운 것이 굳이 억지로 비틀거나 꼬지 않고서도 그리고 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그 장면장면들이 그리 유쾌하고 재미있다. 결과야 어차피 뻔히 정해져 있을 테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무척 쏠쏠하다. 빠져들고 마는 이유일 것이다.
아무튼 그리고 드라마를 보면서 또 눈길을 끄는 것이 과거 10년 새 일어난 연예계에서의 어떤 사건들에 대한 오마주일 것이다. 멤버간의 폭력사건으로 해체된 모 그룹에 대해서도 당사자 가운데 나이가 많았던 멤버가 아마 지금도 싼티 이미지로 활동을 계속 해 오고 있을 것이다. 4인조 걸그룹 가운데서도 원맨팀이었다가 해체 이후 입장이 완전히 역전된 경우도 있고. 전혀 눈여겨 보는 이 없었는데 해체 이후 오히려 스타덤에 오르게 된 경우도 있었다. 아마 그런 여러 가지 사건이나 상황들을 적절히 버무려 사용한 것이 아닐까.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드라마가 더욱 현실성을 갖는 것은. 허구의 이야기이고, 더구나 작위적인 설정과 연출에 의한 코미디일 텐데도 묘하게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까닭일 것이다.
“그냥 일반 직장생활을 10년 정도 했으면 입사 초기 동료와 싸우고 사내연애 한 번 한 것 가지고 지금까지 씹히고 그러지는 않았겠지?”
구애정의 입을 빌어 토로되는 연예인으로서의 비애. 벌써 10년도 더 된 사건으로 한 인간이 규정되고 단정되고 단죄된다. 기억도 못하는 사건까지 끄집어내어가며 판단하려 든다.
윤필주가 연예계에 문외한으로 설정된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구애정이라면 대표적인 비호감 연예인이다. 그런 연예인들이 꽤 된다. 그러나 어째서 비호감인가? 무슨 이유로 그들은 비호감이 되었는가? 연예계도 연예인도 전혀 알지 못하는 윤필주에게 따라서 구애정이란 밝고 호감가는 한 여성일 뿐이다.
“연예인으로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이미지 같은 것 생각 못했어요.”
어쩌면 이야 말로 작가가 의도한 바가 아닐까? 연예인과 이미지에 대한, 그리고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에 대한 냉소일 것이다. 지난주 1화와 2화에서 CG를 통해 구체화된 인터넷 댓글 또한 그런 의미일 것이다. 실체 없는 허구이 세계. 그것이 주는 모순과 허무들.
바로 그래서 구애정, 제니, 강세리, 그리고 이번 아이엄마가 되어 다시 구애정 앞에 나타난 한미나(배슬기 분)까지 포함한 국보소녀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일 게다. 다 그만두고 완벽하게 잊혀지고 싶다던 한미나, 그리고 일찌감치 다른 길을 선택한 제니, 여전히 비호감이 되어서도 연예계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는 구애정, 입장이 역전되어 가장 크게 성공한 강세리. 강세리 역시 완전한 악녀는 아닐 것이라는 것은 유인나의 연기력 부족 때문만일까?
정말이지 장면장면이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허투루 지나가는 것이 없었다. 다 의미가 있고 어떻게든 이어진다.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써 재미있다. 그저 지켜보면서 마음껏 웃을 수 있으면 된다. 웃으며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은 드라마다. 그래도 느끼는 것이 있고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고심한 흔적이 눈에 보인다. 톡톡 튀는 재치와 그러면서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치밀한 준비와 노력들이. 좋은 드라마 - 작품의 가장 첫째조건일 것이다. 영감과 기술과 노력. 대본과 배우와 연출이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다. 멋진 드라마로 완성될 것을 예감한다. 최고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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