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 부활
어느 단편소설속에 너는 떠오르지
표정없이 미소짓던 모습들이
그것은 눈부신 색으로 쓰여지다
어느샌가 아쉬움으로 스쳐지났지
한창 피어나던 장면에서 너는 떠나가려하네
벌써부터 정해져 있던 얘기인듯
온통 푸른빛으로 그려지다
급혀도 회색빛으로 지워지었지
어느새 너는 그렇게 멈추었나
작은 시간에 세상을 많이도 적셨네
시작하는 듯 끝이나 버린
소설속에 너무도 많은걸 적었네
가사 출처 : Daum뮤직
예민의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 소년이 세월이 흘러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이런 노래를 부르게 될까? 문득 아련히 떠올라 어느새 통곡하게 되어 버리는.
긴 시간이 지나고 채 묻지 못한 기억이 떠올라 그 시절을 반추하게 한다. 아마 어느 여름날. 어느 햇살 좋던 여름의 뙤약볕 아래에서. 그 시절의 아름다움을. 그 빛남을. 향기로움을. 그리고 그 순간의 수줍던 떨림을. 문득 따갑던 햇살처럼 빈 자리가 느껴지고 그것이 그렇게 서럽게 다가온다. 마치 갑작스런 소나기처럼.
갑작스레 내리는 소나기와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 그리고 소나기와도 닮았고 소설 속의 소년과 소녀와도 닮은 애닲은 기억들. 잠깐 내리는 비로 세상은 그렇게 젖어 있고, 막 피어나는 듯 싶던 소년과 소녀의 사랑은 잿빛 절망으로 가라앉았다. 아주 잠깐의 이야기지만 여전히 깊이 아로새겨 있는 많은 이야기들. 그 아련한 상처들이. 비가 지나고 난 청명한 하늘처럼. 눈물나도록 아득한 맑은 하늘빛처럼.
입술이 떨리고 가슴에 무언가 막힌 듯 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무언가 무척이나 화가 나는데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소리를 지르고 싶은데 소리는 나오지 않고 하늘은 또 왜 이리 맑은가. 바람은 서늘하고 꽃들은 향기롭고 사람들은 여유롭다. 에이는 고독과 상실감. 서럽다. 눈물이 난다. 눈물이 쏟아진다.
그립고 그립고 또 그리워서 화가 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해서 원망스럽다. 그 대상이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지금 그리워하고 있는가 사랑하고 있는가조차도 모르겠다. 마치 빈 폐허와도 같은. 잡초 무성한 오랜 폐허의 스산한 허무와도 닮아 있다. 닳고 닳아 흔적조차 희미한 눈물조차 말라 있는 그 자리와도 같다.
오히려 부활 3집의 아련함보다는 부활 2집의 음산함에 닿아 있는 노래일 것이다. 때로 그 저미는 아픔에 섬뜩함마저 느낀다. 부활 2집의 "슬픈사슴"과 부활 3집의 "소나기"... 그래서 떠오르는 것이 일본의 소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아마 17년 동안 가슴에 품어 오던 히로세 아키를 떠나보내던 순간의 마츠모토 사쿠타로의 눈물이 그러했을 것이다. 문득 서럽고 문득 화가 나고 문득 원망스럽고 그래서 메이도록 아프고 슬프던. 마치 죽은 이의 세계를 엿보는 듯한 불길함마저 느껴진다.
최소한으로 절제된 연주가 그래서 죽음의 적막과도 닮아 있는. 아니 그 순간에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묵음이 되어 버린 동영상처럼 모든 것은 그렇게 소리없이 너무나 선명하게 돌아간다. 입조차 열지 않고 가슴으로 내뱉는 소리들. 그래서 그 노래는 무척 처절하다.
개인적으로 부활의 음악 가운데 가장 처절한 슬픔을 담고 있다 여기는 노래다. "사랑할수록"에서 어느새 슬픔마저도 관조할 수 있게 된 시간이 가져다 준 아련함과는 전혀 다르다. 헤어짐을 받아들여야 함을 알게 된 성숙한 감성과도 전혀 다르다. 여전히 잊지 못하고 여전히 놓지 못한다. 잊어야 하고 놓아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절망스럽고 원망스럽다. 어쩌면 그는 그 시간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귀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에 머문 채 몸만 지금에 와 있는 사람이 아닌 귀신. 불길함의 정체는 그것이었는지도.
김태원이 이런 불길한 노래를 부르게 해서 김재기를 죽게 했다고 인터뷰했을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런 말이 충분히 나올 만한 노래였다. 어째서 김태원의 생각과는 달리 당시 부활 3집을 냈던 음반회사에서는 "소나기"가 아닌 "사랑할수록"을 타이틀곡으로 밀었는가? 그렇게 간결한 멜로디와 사운드에 실린 슬픔이라는 감정은 감당할 수 없이 무겁기만 하다. 어느새 스민 슬픔에 젖은 솜이 되어 무겁게 아래로 잡아끌어 내린다. 마치 헤어날 수 없는 심연과도 같다.
사람의 감정은 어떻게 해서 그리움에서 슬픔으로 향하는가. 일상에서 절규로 통곡으로 이어지는가? 음악이란 언어다. 말로 다 하지 못하는 말이다. 그 감정의 흐름을 잡을 듯 느끼게 해준다. 멜로디는 그렇게 가사가 전하는 감정을 충실히 그 선을 따라 전해준다. 흐느낌처럼 읊조리는 김재기의 목소리는 절정에서 그대로 터져나오고, 김태원의 기타솔로는 막힌 울음처럼 꺽꺽거리고 있다. 맺혀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청명하다.
세이렌의 노래가 이러했을 것이다. 세이렌의 노래에 취해 바다에 뛰어들던 선원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김재기보다 더 슬프다면. 아니 더 서럽다면. 슬프지조차 않은 것이 서러운 것이다. 너무나 슬퍼서 그 슬픔조차 받아들일 수 없을 때 서럽다고 한다. 그 서러움이 김재기의 목소리에는 있다. 삭이고 삭여 너덜너덜해진 그리움이 그의 목소리에는 있다. 안개처럼 아련한 김태원의 기타와 하나로 녹아든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그래서 이 노래에는 김재기 이상이 없다고 생각한다. 마치 스미는 듯하다. 문득 멍하니 서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대 내리는 이슬비에 몸마저 젖어 버리는 듯. 눅눅하게 서러움에 젖게 만든다. 그 서러움에 젖어들고 만다. 상당히 직설적으로 들리는 이승철이나 다른 보컬의 버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서일 터다. <나는 가수다>에서의 박정현의 버전에서는 물론. 너무 화려하고 너무 드러나 있다. 것은 아일랜드의 정서이거나 미국의 감정일지는 모르지만 한국인이 느끼는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지 않아도 우울한 부활의 음악 가운데서도 가장 우울한 노래. 그저 울부짖을 뿐이던 1집과 음울하게 가라앉던 2집에 이어 슬픔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서러운 절망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슬픈사슴"의 연장이며 "사랑할수록"의 전주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슬픔을 받아들일 수 있겠지. 그렇게 막힌 눈물을 터뜨리고서야 꽃모자를 떠나보내고 뼛가루를 바람에 흘려보낼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랜 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슬픔이 곪고 곪아 터지려 할 때. 곰삭고 곰삭아 끊어지려 할 때 쯤. 바랜 사진과 같이.
김태원 특유의 우울한 서정이 한계치를 넘어 녹아든 음악이다. 가사는 가히 예술이라 할 터이고, 듣는 것만으로도 황순원의 <소나기>가 떠오른다. 내 나이 또래가 되었을 때 소녀를 떠올릴 한 소년의 모습이. 비가 내리고 오들오들 떨던 파리한 안색의 가련한 소녀의 모습이. 마치 영화처럼.
김재기만 요절하지 않았다면. 들으면서 또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운명 아니었을까? 우연이 아닌 필연을 믿고 싶어지게 만드는 노래.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우울해지는 것 같다. 구름이 두껍게 깔리고 갑자기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내리고. 눈물도 흘러내리고. 운명이고 필연처럼.
요란한 빗소리와 함께 들으면 더 좋을 텐데. 원래 노래의 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한여름 우연처럼 내리는 소나기의 적막한 소란스러움이란. 너무 일찍 생각나 버린 모양이다. 아직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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