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내사랑 내곁에 - 명예살인이 일어나는 이유...

까칠부 2011. 5. 29. 09:33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의 신화에서 신들이 인간을 만든 까닭은 신을 대신해 노동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신을 대신해서 일을 하고, 그 산물을 바치며 제사를 지내고, 신을 섬기고 공경하는 것만이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비단 메소포타미아의 경우만이 아니었다. 신 자체를 쫓았으며 신의 뜻과 의지를 쫓았다. 동아시아에서는 천명이라는 것이 있었다. 인도에는 카르마가 있었다. 당연히 복종해야 하는 것이며 마땅히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사람이 사람인 이유였다.

 

흔히 말한다.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이냐? 사람도 아니다. 사람 같지도 않다. 무슨 뜻일까? 그 당위를 말한다. 인간이기에 당연히 쫓아야 하는 도덕적 규범과 윤리적 가치. 인간이란 바로 그러한 규범과 가치를 따를 때 비로소 인간으로 인정받는다.

 

명예란 다름아닌 바로 그에 따른 훈장이라 할 수 있다.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자랑스러운 것이다. 잘 했다. 훌륭히 해냈다. 충실하게 설실히 수행해냈다. 홈런을 많이 친 타자를 홈런왕이라 부르듯. 팀내에서 에이스라 불리는 것이 투수에게 있어 영광이듯. 그것은 무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고 하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 존재의 의미이며 보람이기도 하다. 그를 위해서도 사람은 살아간다.

 

어째서 이슬람권에서는 아직도 명예살인이라는 야만적인 행위가 이루어지는가? 조선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멀쩡한 며느리를, 이제 갓 청상이 된 딸에게, 열녀라는 미명 아래 자살을 강요하고 했던 이유. 남부끄러우니까. 창피하니까. 그리고 자랑하고 싶으니까. 정절이라는 여성으로써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를 지키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그것을 응징하려는 단호하고 성실한 노력을 통해서 자신의 명예를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인간이 수단이던 시대의 이야기였다. 무리 속에서, 가문이나 씨족, 학파, 지연 등 여러 관계 속에서 선천적으로나 후천적으로 주어진 역할과 의무에 일방적으로 복종할 것을 요구받던 시대였다. 인간이란 각각의 그들이 속한 집단의 명예를 위해 존재했다. 그 집단 안에서 명예로써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 존재했었다. 차라리 수치를 당하느니 죽겠다. 죽음마저도 오히려 미화되던 시절이다.

 

참 어이없는 일이다. 친구다. 어제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 사이다. 그런데 그 친구 도미솔(이소연 분)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자 어느새 주위의 태도가 한 순간에 돌변해 버린다.

 

"다른 학교 학생들이 알면 어떻게 해? 우리까지 똑같은 취급 당할 것 아냐?"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그 아이들에게 있어서의 명예였던 것이다. 다른 학교 학생들에 알려지면 어떻게 하는가? 같은 취급을 받으면 어떻게 하는가? 그리고 그 순간 한 아이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한 마디,

 

"나 정말 미솔이 그렇게 더러운 애인 줄 몰랐어."

 

바로 학생의 본분이라는 것이다. 학생으로서의 의무. 학생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도덕적 규범과 가치. 그리고 그것을 어겼을 때 그는 남부끄러운 수치스러운 존재가 된다. 더럽고 불결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런 아이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 역시 그렇게 취급되어질 것 같다. 마치 자신의 누이를 명예살인이라는 이름으로 돌로 쳐 죽이는 이슬람의 남자들처럼.

 

그것은 두려운 것이다. 더없이 공포스러운 것이다. 수치스럽다는 것은. 부끄럽다는 것은. 무리 안에서 다른 이를 당당하게 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자칫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갈 수 있다. 영영 도태되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 인간은 무리 안에서 살아야 한다.

 

어떻게 친구인데 그럴 수 있느냐? 이런 때 위로해주고 해야지 어떻게 이리 잔인한가? 그때도 아이들은 항변한다.

 

"우리 이렇게 미솔이 때문에 공부 못하고 나중에 대학 떨어지면 선생님이 책임지실 거에요?"

 

솔직히 필자도 대학 떨어져 본 적 없어서 무어라 말을 못하겠다. 다만 남들과 같지 못했을 때 느끼는 자괴감이나 모멸감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이다. 더구나 누구나 가는 대학. 대학을 통해 고등학교까지의 모든 과정이 판단되어지는 마당에 어떤 대학에 들어갔는가는 이제까지의 학창생활에 대한 도덕적 평가이기도 하다. 명예다. 그리고 수치일 테고. 그것은 친구와의 우정이나 인간에 대한 연민보다도 더 강하다.

 

사실 미솔이 어머니 봉선아(김미숙 분) 역시 따로 할 말은 없다. 그녀 역시 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학생으로써 임신을 한 수치스런 친구와 더 이상 연락을 말 것을 강요하고 있었으니. 그래서 말하지 않았는가. 자기 일이라 생각하면 그리 쉽게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런데도 그런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 당위인 때문이다. 그럴 리 없다. 그럴 수 없다. 말도 안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당위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난 대상에 대해 가혹하다.

 

그토록 악역으로 나오는 배정자(이휘향 분)에 대해서도 그래서 동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과연 어머니로써 저런 수라장에 자신의 아들을 밀어넣고 싶겠는가. 인간은 공포 앞에서 잔인해지고 가혹해진다. 공포란 누구나 피하고 싶은 두려움일 것이기 때문에.

 

아무튼 현실에서도 실제 있었던 일이었다. 몇 년 전이었다. 한 여학생이 성폭행을 당하고 그 사실이 학교에 알려졌다. 그리고 학교의 명예를 위해 여학생은 강제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남성의 성에는 도덕적 의무가 부여되지 않지만 여성의 성에는 한결 가혹하고 엄격한 의무가 부여된다. 당연히 성폭행한 남학생은 약간의 근신으로 계속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결국 언론에서 그 사실이 터졌다. 학교의 실명이 인터넷상에서 거론되고 당시 오히려 피해여학생을 징계한 교사들에 대한 비난이 이어졌다. 과연 그때 전학간 옛동급생을 만난 그 학교의 여학생들은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바로 드라마에 나온 그 모습 그 대로였다.

 

"너 때문에 선생님들이 곤란해 하신다. 너 때문에 학교 명예가 실추되었다."

 

한 학생의 인생보다, 그 학생의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존엄과 권리보다, 그러나 학교의 명예가 더 중요하다. 다른 학생들의 입장이 더 중요하다. 결국은 수단인 것이다. 목적이 아니다. 인간으로써 존중하고 배려하고 아껴주는 마음보다 단지 수단으로써 얼마나 유용한가. 명예를 잃었다면 더 이상 쓸모아 없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쓰이는 말이 있다. "쓰레기"라고. 가치를 잃었다.

 

결국 명예를 잃고 그 가치를 잃은 인간이란 무리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가? 마녀사냥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다. 그렇게 마녀로 몰아 쫓아낸다. 그러면서 위안을 얻는다. 나는 저렇지 않아. 나는 저와는 달라. 다를 거야. 그것은 명예를 지키는 아주 숭고한 행위로 이어진다.

 

아이들이 나빠서? 아이들이 못돼서? 그러면 그 아이들은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동안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었던 것인가? 선생님 앞에서 대학이 친구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서슴없이 더럽다 불결하다 기분나쁘다 말하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그 말을 도미솔의 엄마 봉선아마저 이미 도미솔에게 하고 있었다.

 

물론 임신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미성년자의 임신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많은 분야에서. 다른 많은 경우에도. 의무와 당위와 그리고 명예. 여전히 인간을 옭죄고 있는 것을. 공자조차 예보다 인정이 우선함을 이야기하고 있었음에도.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현실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기도 하기에 여전히 씁쓸한. 죄인이 아닌 죄인이 되어 무리로부터 내쫓기고 스스로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의 경직성에 대해서. 그리고 야만성에 대해서. 과연 무슨 자격으로 명예살인을 야만이라 비난할 수 있을까.

 

솔직히 들었다. <내사랑 내곁에>가 그렇게 마음에 들어 주위에 보지 않느냐 하니까 바로 막장이라는 말부터 들려온다. 여고생이 어떻게 임신을 할 수 있느냐. 임신한 아이를 어떻게 학교에 보낼 수 있느냐? 다른 아이들 보고 뭘 배우라고. 바로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장장 7회에 걸친 여고생 임산부 도미솔의 수난기가 끝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미혼모 도미솔의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듯한데.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워낙 관심있던 주제라 몰입해 보았다. 많이들 보았으면. 본편은 또 재미있어 다시 보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인간과 도덕에 대해서. 그리고 명예에 대해서도. 인간의 존엄과 과연 진정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아이들의 행동을 통해서. 그 배후에 존재하는 어른들의 행동을 통해서도.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만 많아지는 드라마였다.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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