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내사랑 내곁에 - 인간은 악한 것이 아니라 독한 것이다. 약한 것이다.

까칠부 2011. 5. 30. 11:10

이래서 내가 배정자(이휘향 분)를 마냥 비난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리 독하게 악하게 봉선아(김미숙 분)와 도미솔(이소연 분) 모녀를 몰아세우다가도 이내 친구에 대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에 표정이 무너지고. 그러다가도 다시 아들을 떠올리면 더욱 교활하게 독하게 말을 내뱉고 일을 꾸미고. 과연 그녀의 눈물을 악어의 눈물이라 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악한 것이 아니라 독한 것이다. 악한 것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다. 독한 것은 단지 그 상황에 충실한 것 뿐이다. 어머니로써, 한 아이의 어머니로써 자식의 장래를 위한다. 자신의 꿈을 이루어주기를 바라기에 더욱 자식의 장래를 위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내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더라도. 내가 모든 악을 대신해서라도.

 

이휘향의 연기가 정말 놀랍기 그지없다. 물론 연기에 대해 감탄할 단계는 지나버린 베테랑일 테지만, 그러나 이휘향이 연기하는 배정자를 보고 있으면 때로 화내고 때로 짜증나는 가운데 어느샌가 연민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겠거니. 누구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잘 표현해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도미솔의 어머니 봉선아의 연기는 절망이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하겠다. 딸은 한창 수능을 앞두고 임신을 하고, 학원은 자격 없이 경영했다고 영업정지를 당하고, 여기에 철없는 동생은 애써 모은 돈을 사업자금이랍시고 훔쳐서는 도망친다. 연이은 불행에 절망하면서도 끝내 도미솔의 어머니일 수밖에 없는 그런 처절함이. 원래부터 연기를 잘 하는 배우였지만 어느새 그녀의 불행에 함께 휩쓸리는 것을 느낀다.

 

결국 도미솔은 학교를 그만두게 되고, 봉선아는 친구 배정자의 음모로 학원마저 그만둔 채 이사를 가 버리고, 돌아와서 뒤늦게 도미솔을 찾은 고석빈은 그로 하여금 미국으로 도망쳐 버리게 만든 그것들로 인해 왜곡되어버린 도미솔에 대한 소문을 듣고 방황을 시작한다. 역시나 인간은 악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나약할 뿐이다. 비록 도미솔을 버리고 도망치기는 했지만 도미솔과의 시간마저 그렇게 부정되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그리 힘들다. 그렇다고 다시 도미솔을 찾을 용기도 없다.

 

그리고 7년이라는 시간은 순수하던 소년 고석빈을 전혀 다른 인간으로 단련시킨다. 새로운 시작. 학교를 그만두고 식당에서, 우유배달 일을 하면서 봉선아의 호적에 자기 동생으로 올린 고석빈의 아이를 보살피며 못 다 한 공부를 하고 있는 도미솔과, 결혼까지 하고 돌아와 큰아버지 고진국(최재성 분)의 회사에서 기획실 팀장으로 특채되어 화려한 한국생활을 시작하게 된 고석빈, 오히려 봉선아와 도미솔의 행복한 웃음과 쫓기는 듯 경직된 배정자와 고석빈의 모습과.  그리고 우연히 우유도둑을 잡으려다 마주치게 된 도미솔과 이소룡(이재윤 분).

 

이소룡은 마친 고진국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중이다. 분명 그는 강여사(정혜선 분)의 딸 선아의 버려진 아들일 것이다. 비로소 고진국의 회사에서 이소룡은 도미솔과 강여사를 사이에 두고 고석빈과 마주하게 될 텐데. 하지만 그런 이야기보다 미혼모로써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도미솔의 모습에 관심이 더 가는 것은 어째서일까? 어느새 도미솔에 이입해 버린 때문이다.

 

조금 더 당당하기를. 조금 더 씩씩하게 자신의 삶과 맞서가기를. 잘 되기를 바란다. 행복하기를 바란다. 비극을 즐기기에는 이미 현실의 비극을 너무 많이 보아온 때문이다. 1회부터 8회까지 그녀가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겪어야 했던 일들을 지켜보아왔기에 그 안타까움의 끝에 즐거운 일들이 계속되기만을 바란다. 학업도, 사랑도, 일도, 그리고 삶도, 무엇보다 아이도.

 

확실히 드라마의 주역은 배우들이다. 각자 배우들이 어떻게 배역을 이해하고 연기하는가. 이휘향의 연기에서. 김미숙의 연기에서. 역시 온주완이나 이소연의 연기도 자기가 맡은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고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새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드라마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그만큼 대본을 잘 쓴 작가의 힘일 것이다. 특별히 힘이 들어가거나 하지 않은 담백한 연출도 좋다.

 

무색무미무취. 물은 소중한 것이다. 자극적인 재미가 없다고 드라마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지금까지처럼 삶이 소중함을, 사람이 소중함을, 사랑이 소중함을 보여줄 수 있다면. 재미없어서 재미있는 드라마도 참 오랜만이다. 이제부터는 재미있어질 것 같지만. 좋은 드라마라는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인기는 없지만 천연암반수다. 참 좋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