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내게 거짓말을 해봐 - 현기준과 공아정, 사랑은 시작되다...

까칠부 2011. 5. 31. 11:18

솔직히 실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현기준(강지환 분)이 공아정(윤은혜 분)에게 키스를 한 것이 연극이었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을 때, 괜히 가사도우미가 파티를 하고 어지른 것을 치우려는 것을 일부러 하지 못하게 하고 공아정을 불러 시키고 있을 때, 공아정이 다시 볼펜을 핑계로 현기준을 불러 영화를 보고 데이트를 하고 있었을 때, 진도가 빠른 건 좋은데 이건 너무 뻔한 연애물로 흘러가는구나. 익숙하다는 것은 친근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진부하며 지루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 이것을 왜 보고 있는가.

 

하지만 역시 오윤주(조윤희 분)와 함께 하는 장면에서 드라마는 다시 한 번 어쩌면 놓아버리고 있던 긴장을 일깨우고 만다.

 

"우리 진짜로 헤어진 것 아니었잖아!"

 

물론 이유가 있어 헤어졌던 것이었다. 약혼마저 파혼하고 서로 멀리 떨어진 채 이제껏 남이 되어 지내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현기준이랑 오윤주, 잘 어울렸어!"

 

친구이기도 한 박매니저(박지윤 분)의 말에서 그는 그것을 다시금 깨닫고 만다. 주위에서도 아직 두 사람의 사이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럴만한 사연이 있어서 그동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던 것 뿐이었다. 바로 얼마전까지 그 역시 그랬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마음은 공아정에게로 끌리고 있다는 것이다. 오윤주가 자리를 비운 사이 어느새 공아정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들어와 있었다.

 

"우리 다시 시작해!"

 

오윤주가 없는 사이, 그녀가 미처 공아정의 존재를 깨닫거나 그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 여지조차 없이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 와서 차마 그녀에게 공아정과의 관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기도 민망하다. 그렇게 오윤주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 무얼 어찌하지도 결정하지도 못하는 사이 그렇게 그녀와 전혀 상관없는 자리에서 그녀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그녀의 일까지 결정해 버린 것이었다.

 

어쩌면 사랑이란 그렇게 잔인한 것인지 모른다. 누군가는 사랑하고 또 누군가는 헤어진다. 영원한 사랑도 있지만 언젠가는 식어버리는 사랑도 있다. 더 이상 상대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는데 상대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다. 많은 비극이 여기에서부터 비롯된다. 모파상의 소설이었을 텐데, 사랑 때문에 감옥에까지 갔던 남자가 마침내 사랑이 식었음을 혼자 남아 있던 여자에게 고백했을 때 여자는 가스 스토브에 자신의 머리를 들이밀고 만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않는데 사랑한다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더구나 새로운 사랑이 생겼다면.

 

모든 비극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누구나 똑같이 사랑하고 똑같이 마음이 식으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는 사랑하고, 그러나 누군가는 이미 사랑이 식어 있고.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과 어느새 사랑하지 않게 되어 버린 사랑과. 그나마 앞에서 그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마음을 돌리도록, 다시 돌아오도록 악다구니를 쓰고 매달릴 기회라도 있었다면. 아니면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거나. 하지만 그조차도 없었으니.

 

그것이 괴로운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기준을 괴롭게 하는 것은 그런 순간에조차 오윤주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 자신이다. 제대로 끝을 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기다려주지도 못하고, 무엇보다 오윤주가 없는 사이 마음이 돌아서버린 것이 마치 배신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오윤주에게 돌아갈 수는 없다.

 

어쩌면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작가(김예리 극본) 역시 <최고의 사랑>의 작가와 코드를 공유하는 모양이다. 하필 공아정에게 키스하던 날 그녀가 만들어 남겨 놓은 음식을 먹고 그만 식중독에 걸려 쓰러져 벌리고 만다. 한참을 스쿼시를 하며 학대하듯 땀을 흘리다가 돌아와서는 공아정이 남겨 놓은 음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려 그녀와 밤을 보내고 만다. 상징적이다. 이미 현기준은 여기까지 와 버렸다. 사랑은 중독과도 같다.

문제라면 현기준은 이미 마음을 정했는데 그들 관계에 있어 또 한 당사자인 현상희(성준 분)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일 것이다.

 

"내가 말했지? 착각하지 말라고!"

 

자기로 인해 파혼까지 해야 했던 형 현기준에 대한 미안함과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오윤주가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 물론 그 대상이 자기였으면 가장 좋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오윤주가 형의 다른 여자로 인해 절망하거나 슬퍼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공아정이 그렇게 얼렁뚱땅 형의 여자가 되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요정은 때로 마녀가 된다. 장난꾸러기 요정은 어느새 사악한 악마로 돌변해 버리기도 한다. 요정의 금기를 어겼을 때.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서게 되었을 때. 현상희에게 그것은 아마도 형 현기준과 오윤주일 것이다. 공아정과 현기준과의 사이가 발전할수록 오윤주의 편에서 현상희가 그녀를 곤란에 빠뜨릴 것을 예상하게 되는 이유다. 아니라면 이야기는 매우 밋밋해지겠지. 그야말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 남녀가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가 끝일 테니까.

 

강아지를 닮은 현기준의 비서 박훈(권세인 분)이 현명진 회장에게 건낸 현기준과 공아정의 자세한 사정도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에 한 몫 하게 될 것이다. 현명진는 현기준과 현상희의 사이를 갈라놓을 오윤주의 존재를 탐탁하게 생각지 않는다. 세상에 둘뿐인 형제인데 여자의 일로 사이가 벌어져 여러 해를 얼굴도 보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여긴다. 그런데 현기준과 공아정이 어쩔 수 없이 그런 사이가 되었을 뿐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예고편에서 잠깐 나온 장면은 바로 그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기에 천재범과의 일로 더욱 공아정에 대해 집착하게 된 유소란(홍수현 분)의 존재까지 개입하고 나면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점입가경을 그리게 되리라.

 

기로에 서 있다. 시청율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그래도 평가할만한 드라마로 남는가? 아니면 그저 그런 졸작으로 남고 마는가? 여기까지는 적당히 긴장감도 유지하면서 유쾌하게 잘 끌고 왔다면 너무 일찍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을 이루는 바람에 벌써부터 김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서로에 대한 감정을 느끼기 두 사람 사이에 어떻게 다시 긴장을 부여하고 또 다시 유쾌하게 분위기를 이끌어갈 수 있겠는가. 결국은 주변 인물들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사건에 있을 것이다. 긴장이 없는 재미란 있을 수 없다.

 

상당히 지루하게 보다가 끝에서야 겨우 터졌던 회차였다. 내내 이것을 계속 보아야 하나. 끝까지 보는 의미가 있겠는가. 역시 드라마는 끝까지 봐야 한다. 그동안의 신뢰로 끝까지 지켜본 결과 만족한 재미를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기대할 것이 있다는 점이 가장 컸다. 앞으로도 흥미를 가지고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가치가 있는 드라마였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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