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동안미녀 - 강윤서의 분노, 그리고 사건의 시작...

까칠부 2011. 5. 31. 11:20

"눈에 띄어 좋을 게 없다고? 그 여자와는 얼굴까지 맞대고 있었으면서?"

 

분명 악역인데 어느새 동정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째서일까?

 

사실 지금까지 강윤서(김민서 분)가 특별히 나쁘게 하거나 한 것은 그리 없다. 아직 신입이고, 더구나 검증되지 않은 임시직이다 보니 단지 이소영(장나라 분)을 무시하고 기회를 주지 않은 것 정도가 고작이다. 그리고 그런 정도는 디자인실 누구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보다는 나이까지 속이고 회사에 들어와서는 자꾸만 그녀의 영역을 침범하려 드는 이소영이 거슬린다. 나이를 속이고 입사한 것도 문제인데, 딸 현이를 빌미로 그녀가 그토록 짝사랑하고 쫓아다니는 지승일(류진 분)에게 접근하며 다정한 모습마저 보인다. 그로 인해 지승일로부터는 냉정한 태도에 상처마저 받게 된다.

 

눈물을 흘릴 만했다. 그리고 원망을 품을 만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저 혼자 눈물을 짜며 잘 가라 손수건을 흔들러주는 것은 7, 80년대 멜로물에서나 하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혼자 애를 낳아 기르며, 아니더라도 상당기간 잊지 못하고 홀로 애를 태우다가 어려운 처지에 빠진 남자에게 도움을 주고. 혹은 그때 찾아온 다른 남제에게 위로나 받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그녀는 너무나 똑똑하다. 유능하고 실력도 있다. 힘도 있다. 무엇보다도 자기를 사랑할 줄 안다. 우는 건 남자가 되어야지 자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 남자에게 접근하는 여자가 울어야지 어째서 강윤서 자신이 울어야 하는가?

 

이와 비슷한 내용의 만화 <해피>에서도 필자의 경우 주인공 미유키가 아닌 그녀를 괴롭히는 초코에게 이입하며 봤었다. 열심히 피나게 노력해서 하나하나 얻어가려는 것을 미유키는 너무나 쉽게 자기로부터 가로채 간다. 그녀에게는 어머니의 기업은 물론 그녀에게 투자하는 수많은 스폰서의 이익이 걸려 있다. 자신을 내던져서라도 그것을 지켜야 한다. 어느새 그런 치열함에 감동하며 끌려들고 만달까?

 

전혀 드라마를 보면서도 이소영에게 이입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일 게다. 그냥 착하기만 하다. 아니 착하기만 하면 좋은데 거기에 염치까지 없다. 분명 지주희(현영 분)에게 옷이 출시되는 것만 보고 그만두겠다 말한 것은 그녀 자신이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최진욱(최다니엘 분)으로부터 고백을 듣고서도 그녀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주위는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데 오로지 그녀 혼자서만 침대에 누워 디자인만. 그에 비하면 강윤서는 얼마나 치열하게 현실을 살아가는가? 단지 현실이 도와주지 않으니 문제지.

 

모든 행운은 이소영에게로. 그녀가 차버리기는 했지만 지금도 오빠로 부르고 있는 최진욱만 하더라도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한 족발집의 아들로 '프린스 오브 족발'이라 불릴 만하다. 지승일의 동생인 지주희와는 동창이고,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난공불락인 지승일의 딸 현이마저 이소영이라면 껌뻑 죽고, 여기에 딸 때문인지 지승일마저 이소영에게 호감을 보인다. 이소영의 디자인마저 자신의 디자인과 나란히 걸리려 한다. 그렇다고 이소영이 뭔가를 하거나 한 것도 아닌데 작가의 농간인지 모든 것은 이소영을 중심으로 이소영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누가 강윤서가 되더라도 한 바탕 휘어저 주고 싶지 않을까?

 

아무튼 그렇더라도 차가 고장나 빗속에 갇혀 있는데 고스톱을 하고 있는 장면과 같은 것은 <동안미녀> 갖는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친근하다. 이소영이 사는 집에서부터 이소영의 주위 환경이며 억척을 부리며 열심히 사는 모습까지. 전통적인 주인공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저 착하다. 성실하다. 열심이다. 소극적인 모습까지 전혀 모나거나 독한 구석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필자로서는 가끔 심술을 부리고 싶어지도록 하니.

 

어쨌거나 슬금 강윤서의 어머니인 현지숙 이사(나영희 분)의 음모는 현실화되어가는 것 같고,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강윤서의 반응으로 보아 지승일과 이소영의 후견인과 같은 백부장을 타겟으로 하고 있을 것이다. 주주총회를 기다리라 한다면 경영권을 노리는 것일까? 아마도 이제까지 답답하던 것이 이소영이 본격적으로 나서게 될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존재감 없던 동생 이소진(오연서 분) 역시 이번 기회로 전면으로 나서게 되지 않을까. 최진욱 또한 더욱 존재감을 키우게 될 테고. 다만 회사 안인가? 아니면 밖인가? 지승일은 조금 떨어져 내릴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도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 좋다. 열심히 꿈꾸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미워하고 뭐든 열심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좋다. 말하지만 우리사와 나오키의 <해피!> 역시 초코를 주인공으로 여기고 보면 느낌이 새롭다. 아쉽다면 주인공이 어디까지나 이소영인 탓에 강윤서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상세하게 나오지 않는 점이랄까? 하지만 그렇더라도 충분히 이입할 수 있는 개연성과 디테일이 강윤서의 캐릭터에는 있다. 김민서의 연기와 캐릭터가 좋은 탓도 있으리라. 매력를 느낀다.

 

보편적으로는 이소영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재미있다. 그것은 보편적 정서에 맞는 안심하고 볼 수 있는 익숙함과 친근한 재미를 준다. 반면 악역 강윤서를 중심으로 보면 그것과는 다른재미를 찾을 수 있다. 필자가 <동안미녀>를 즐기는 방법이다.

 

박나라 주임(유연지 분)마저 최진욱의 집안에 대해 알게 되면서 호감을 가지고 접근하게 되고, 이미 최진욱은 이소영에게 고백을 한 상태에 지승일마저 노골적으로 이소영에게 호감을 나타낸다. 여기에 질투심에 이소영은 물론 지승일에게까지 원망의 마음을 가지게 된 강윤서. 점입가경을 그리게 되지 않을까. 한 바탕의 소동이 얽히고 섥히며 긴장을 자아낼 것이다. 그리고 이소영에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은 집안사정은 어쩔 것인가? 그녀의 감춘 진실은? 역시 지켜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드라마를 끌고 가기 위한 미끼들이다.

 

편하게 다른 생각 않고 보기에 좋은 드라마다. 휴식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분주해지려 할 때는 또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이 많아지는 이유다. 강윤서는 매력적이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