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김태원이 감각이 있다...

까칠부 2009. 7. 21. 03:46

새벽, 잠도 안오고 해서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을 다시보기를 하다가 문득 지나친 부분이 눈에 들어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글쎄 김태원이 이정진, 윤형빈, 이윤석을 마음껏 갈구더라는 것이다. 마침내 참다 못한 윤형빈이 대놓고 이렇게 저주를 퍼부을 정도로.

 

"그렇게 마음 쓰다가 그냥 확 가는 수가 있어요."

 

진짜 김성민의 노필터 멘트에 필적하는 짜증유발 멘트들이었는데,

 

윤형빈에게는,

 

"정경미씨가 너 7위인 것 아니?"

 

이정진에게는,

 

"배우로서 너무 어정쩡해!"

 

이윤석에게는,

 

"잘라내야 해, 너무 많아!"

 

사실 이런 말들을 이경규가 했다면 꽤나 보기 흉했을 것이다. 이경규는 강자니까. 한국사람들은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것을 기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오만무례한 절대강자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태원은 다르다. 그는 국민시체이면서 국민외할머니다.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지 두려워하거나 거리감을 느낄 그런 캐릭터는 아니다. 오히려 만만하게 보느라 얕잡혀 안티가 생겨도 거리감으로 안티가 생길 타입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 말은 곧 그가 아무리 독설을 날리고 괴롭혀도 그것이 독설이나 괴롭힘으로 여겨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김국진도 갖지 못한 김태원만의 장점이다. 김국진은 이미 이경규를 잡는 캐릭터로써 버럭캐릭터를 선보인 바 있었다. 평소에 고지식하고 깐깐한 성격을 여러 경로로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기도 했고. 이경규가 한국예능의 살아있는 전설이라면, 김국진은 90년대를 들었다 놨던 코미디의 전설이다. 말의 무게가 다르다.

 

한 마디로 이경규나 김국진이 같은 말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넌 현재 출연자 가운데 최하위야!"

"넌 배우로써 상당히 어정쩡해!"

"너무 많아, 잘라내야겠어!"

 

그러면 마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사실처럼 들린다. 실제 그 출연자는 재미가 없고, 실제 그 배우는 그 위치가 어정쩡하고, 실제 방송에서 퇴출되어야 할 누군가 있는 것처럼.

 

그러나 말했듯 김태원은 다르다. 그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철저한 약자로서의 이미지와, 4차원 연예인이라는 엉뚱함, 그리고 예능늦둥이로써의 생경함은 그의 말을 그냥 지나가는 엉뚱한 멘트로나 여기고 만다.

 

"거 꽤 독하게 웃길줄도 아네?"

 

누구도 심각해지지 않는다는 거다. 누구도 진지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대신 그것이 웃음으로 바뀐다.

 

"맞아, 쟤가 제일 안웃겨!"

"아, 요즘 배우로서 좀 그렇지?"

"그러면 가장 먼저 잘릴 건 누굴까..."

 

거기에 버럭하는 윤형빈이나, 썰렁한 표정을 짓는 이정진이나,

 

그리고 가끔 여기에 대해 이경규가 제대로 리액션을 보여준다. 그동안의 욱사마의 이미지가 아닌 팔일이 형과 어울리는 구칠이형의 능글맞음으로. 역시 장난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이야 말로 남자의 자격에서 병풍을 활용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정형돈이 웃기지 않는 것으로써 웃음포인트로 삼듯, 나머지 세 존재감 없는 캐릭터에 대해 김태원이 총대를 메고 나섬으로써 그것을 또다른 웃음소재로 삼는 것이다. 김태원이기에 가능한 방식으로.

 

물론 그것이 사전에 짜고 한 것인가, 각본이 따로 있는 것인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관계자도 아니고 알 도리가 있나? 그러나 만일 그것이 짜고 한 것이라면 프로듀서는 대단한 감각이 있다. 만일 그것이 김태원 개인의 애드립이라면 그의 예능감각은 가히 절정의 것이다.

 

확실히 덕분에 방송 초반 존재감 없던 셋이 김태원을 통해 그 존재감 없음을 부각시키며 상당한 웃음을 주고 있었다. 별 거부감 없이, 그러나 뻔히 아는 사실로, 그리고 그 당사자들의 리액션을 통해서. 재미있었다.

 

그래서 문득 예상해 본다. 앞으로의 남자의 자격이란,

 

박학다식편을 통해 만들어진 구도 김국진, 김성민, 윤형빈, 이정진, 이윤석 vs 이경규, 김태원, 여기에서 이경규를 잡는 것이 김국진과 김성민이라면, 윤형빈, 이정진, 이윤석 이 셋을 잡는 것은 김태원으로. 물론 이들 셋의 반격도 만만치는 않겠지만. 약골에, 상상을 뛰어넘는 무식에, 엉뚱함까지,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아무튼 잠도 안 오고 해서 복습하는 사이 처음 본방사수를 할 때보다 더 큰 재미를 느끼고 말았다. 그리고 모르고 지나쳤던 부분도 볼 수 있었고. 왜 김태원이 김성민, 이경규와 함께 남자의 자격에서 에이스라 불리우는가도. 정말 대단했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