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웃기기보다 흐뭇했다...

까칠부 2009. 8. 10. 01:30

가장 즐거운 웃음이란 소리내서 껄껄껄 웃는 것보다는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흐뭇하게 입가에 걸리는 웃음이다. 미소라기보다는 조금 큰, 그러나 의식해 소리내어 나타내지는 않는.

 

어제의 남자의 자격이 그랬다. 간만에 대청소를 하느라 본방을 놓치고 지금 막 다시보기로 보고 왔는데, 아아... 이런 게 바로 남자의 자격이라는 거다.

 

석모도 가는 동안에도 나온다. 남자들 여행 가봐야 별 것 없다. 툭탁거리고 자기 할 일이나 하고 그러다가 어느새 보면 어울리고 있는... 윤형빈이나 김성민이 하는 이야기에 생까고, 김태원의 신곡에 여행버전으로 장난치고, 자전거를 타면서는 서로의 탓으로 돌리며 다투고, 그러면서도 체력이 고갈된 김태원을 위해 달구지까지 마련해 준다. 도착해서는 그래도 편하게 왔던 사람들이 나머지를 위해 장도 봐 오고.

 

먹는 건 또 어때? 참고로 라면 한 박스를 한 냄비에서 여섯 번을 물만 더 부어서 끓여먹어 본 적도 있다. 처음에는 그냥 남은 국물이 아까웠는데 세 번 넘어가니까 국물에 손도 대기 싫더라. 고기는 타고, 찌개는 정체불명이고, 그래도 참 맛있다. 그리고 다 먹고 나서는 남자들만의 수다를 떨며 놀다가는 편안한 휴식을. 그러고 나면 다음날 아침 쓸데없이 바지런떠는 녀석이 있어 먼저 일어나 다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

 

물론 빵빵 터지는 장면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그런 멤버들이니까. 그러나 여행이라는 그대로 그런 장면들조차 어느새 그 조화로움에 녹아들어 버렸다. 여행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에피소드들로. 말 그대로 여행이랄까? 남자들만의?

 

아마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른바 병풍이라 불리우는 윤형빈, 이윤석, 이정진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렇다. 윤형빈이나 이윤석, 이정진이 모두 탁월한 예능감으로 빵빵 터뜨려주는 캐릭터들이었다면? 다른 프로그램에서처럼 알아서 웃겨주는 그런 존재들이었다면? 아무리 여행이 재미가 있어도 내게 그것은 단순한 예능의 한 부분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어느새 여행 도중 모두가 빵빵 터뜨리는 사이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곱씹기보다는 예능프로그램의 하나로써 즐기고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한국화에서의 여백처럼 남자의 자격에서는 병풍들이 있었다. 평소 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는지 모르던 존재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예능인이라기보다는 자연인처럼 보이는 그들.

 

이경규가 버럭해도 마주 버럭하거나 조롱하지 않고, 김성민이 뜬금없는 말에 쓸데없는 열혈행동을 해도 과장되게 반응하지 않고, 김태원의 엉뚱함이나 허술함에 대해서도 놀리거나 공격하기보다는 함께 어우러지고. 그러면서 딱 그 만큼만 입가에 웃음이 걸리는 만큼만 마치 물처럼 담담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노래처럼 기억속에 생각나는 딱 그 만큼씩들만.

 

이것이 남자의 자격이 갖는 강점일 것이다. 남자의 자격은 쓸데없이 오버하지 않는다. 더 잘하려고도 하지 않고, 더 웃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아니 실제로는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보이는 모습만으로 보자면 진짜 오합지졸들이다. 서로 제각각이고 어떠한 통일된 모습도 보이지 못하고. 어제 여행편처럼.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자연스러워 보이더라는 것이다. 진짜 날것처럼 보이고.

 

당장 지난주 이정진 춤추던 장면만 해도 그렇다. 원래 몸치들은 음악 나오면 바로 그런 반응 보인다. 잘 하려 해도 잘 하려 하면 할수록 몸이 굳어 안 움직이는 것이 몸치들이다. 아마 제대로 버라이어티에서였다면 억지로라도 춤추는 장면을 보여줬겠지. 윤형빈도 대본을 써서라도 웃기도록 했을 테고. 그러나 윤형빈이 웃기지 못한다고 7위라며 자연스레 놀리고, 이정진에 대해서도 말아먹는다며 윤형빈이 놀리고, 어찌 보면 병풍이라는 존재로 인해 남자의 자격만의 독특한 개성이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드는 생각, 괜히 쓸데없이 멤버 바꾸고, 괜히 무리하느라 멤버들에게 억지캐릭터를 설정하는 건 그만둬줬으면 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남자의 자격은 패떳이나 1박2일과 다를 바 없는 진짜 그저그런 프로그램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이대로. 조금은 빈 듯 허술하게, 그러나 자연스럽게, 모자랄지언정 넘치지 않게. 아마 약간 모자름의 미학일 것이다. 어제 방송분 가운데 나왔던 그대로,

 

"강한 사람도 약한 사람도 모두 똑같이 자전거 한 바퀴씩 나갑니다."

 

아마 제작진이 시청자들에게 하고 싶었단 말이 아니었을까? 멤버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바로 이것이 남자의 자격이라고. 확실한 설득력으로 다가왔다. 바로 이것이 남자의 자격이라고.

 

아무튼 참 재미있는 방송이었다. 마음껏 웃었고 마음껏 흐뭇해했다. 남자들의 여행에, 그러한 여행을 했던 기억에, 그런 여행을 다시 하고 싶은 욕심에, 그리고 그런 가운데 자연스레 어우러진 남자들에.

 

 

 

참고로 가장 보는 재미가 있었던 장면이 민박집에 도착해서 이경규와 김태원이 장을 보러 가는 장면. 마치 한 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듯한 - 롱테이크로 두 중년의 여행기를 찍은 듯한 크게 우습지는 않지만 역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명장면이었다.

 

그리고 3.6.9게임. 생전 처음 3.6.9게임을 해본다는 이경규, 김태원, 김국진이 거의 걸리고 있었는데, 생전 처음 하는 게임에 즐겁게 동참하는 모습이라거나, 두 번이나 걸리고 맞아놓고도 이런 재미있는 게임도 있었다며 좋아하는 것이나 즐거웠다. 괜히 멍때리다 걸린 이정진은 정말 의외였다.

 

그리고 마지막 부활 음반 홍보 욕심에 마지막에 자전거 패달을 밟는 김태원 - 뮤직비디오까지 욕심내고 있었는데. 김태원이 롱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예능인보다는 철저히 음악인이기를 바란다는 것. 사람들은 전문 예능인이 나와 웃기기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더 재미를 느끼니까. 뮤지션으로서 예능에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지 예능인이 음악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번 음반 "생각이나" 대박나기를 바라며 - 없는 체력에 자전거 패달까지 열심히 밟은 보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이나"도 그렇고 "OZ"도 그렇고 부활이 또 한 번 부활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