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거의 본방사수를 해가며 챙겨보는 프로그램으로 뉴스를 제외하고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언젠가 말한 바 있는 <라디오스타> 딱 B급스러운 게스트 불러다 놓고 자기네들끼리 노는 모습이라든가,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잘 보기 힘든 게스트에 대해 가차없이 공격해대는 모습 등이 딱 내 취향이다. 그리고 <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이 왜 재미있는가면, 김성민과 김태원의 두 캐릭터 때문이다. 물론 재미있기로야 이경규나 김국진도 재미있고 하지만,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의 다른 프로그램과 다른 개성을 부여하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이 두 사람이다. 성실하고 의욕이 앞서는 김성민, 그리고 약골에 항상 뒤로 빼는 모습을 보여주는 김태원이라고 하는.
사실 김성민이라는 캐릭터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기 좋은, 아주 좋은 캐릭터다. 성실하지. 의욕 넘치지. 앞장서서 뭐든 열심히 척척 해내지. 그야말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른생활 인간의 전형이다. 그래서 아마 방송 보면서 김성민이 누구인지도 몰랐다가 급호감이 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실제 김성민이 처음 <남자의 자격>에 캐스팅되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경규가 아니더라도 왜 캐스팅했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었으니까.
그러나 반드시 성실하고 의욕 넘친다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닌 것이, 또 그런 캐릭터이기 때문에 김성민은 <남자의 자격>에서도 꽤나 은근히 밉상이기도 하다. 딱 그거다. 해병대편에서 이경규가 정의한,
"쓸데없이 나서기 좋아하는 고문관."
왜 성실하고 의욕적이면 고문관이 되는가? 아마 군대 갔다온 사람은 알 것이다. 아마 해병대편에서도 이경규가 김성민을 고문관취급할 때 군대 갔다온 사람 가운데 피식거리며 동의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한 마디로,
"군대란 가만 내버려두는 게 도와주는 것"
이니까.
더 좋아지기도 바라지 않는다. 더 나빠지는 것은 당연히 바라지 않는다. 아니 어차피 좋을 것이란 없기에 지금 이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이대로 현상유지나 하면서 아무 탈 없이 군생활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야 말로 모든 군바리들이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쓸데없이 나서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게 하고, 대충 해도 되는 일에 쓸데없이 힘과 노력을 들이게 만들고... 이래서야 괜히 피곤하기만 할 뿐이다. 못해서가 아니라 사람 성가시고 짜증나게 하기에, 즉 그냥 내버려두기만 하면 좋은 것은 그렇게 하지 않기에, 그래서 고문관이다.
그리고 바로 그 대척점에 위치한 것이 김태원. 딱 말년병장의 포쓰다. 아니 말년은 김국진과 이윤석에게 끊임없이 갈굼당하는, 그러면서도 여전히 열심히 몸빵해주는 이경규고, 김태원은 아예 예비군이다. 진짜 동원훈련 가면 대부분의 남자들이 저런 모습이다. 어쩐지 귀찮고, 몸은 안 따라주고, 그래서 슬금슬금 뒤로 빠지고...
그렇다고 김태원이 멤버들로부터 공격을 받느냐면 그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멤버들로부터 공격받는 대상은 김성민이다. 말했잖은가? 은근히 밉상이라고. 보는 입장에서도 저리 밉상인데 같이 방송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밉상일까? 반면 김태원은 오히려 약골의 이미지로써 멤버들의 도움과 배려를 받고 있다.
바로 이 점이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보자. 남자가 되어보라고 군대 다시 가라면 가겠는가? 어쩔 수 없이 가게 된다 하더라도 다시 열심히 군생활 하겠는가? 예비군 훈련가서도 그러면서. 아이 돌보는 것도 그렇다. 과연 하란다고 열과 성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하겠는가? 그럴 거면 이런 프로그램이 기획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 않으니까 해보자는 의도에서 아이돌보기가 한 과제로 선택된 것이니까.
분명 대부분 그런 상황에 놓이면 이런 생각부터 할 것이다.
"얼른 시간이나 가라..."
그래서 시계가 있는 것이다.
"얼른 저 시계가 모두 0을 가리키고 있기를..."
말하자면 어떤 과제가 주어진다고 그 과제를 달성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표가 아니다. 그럴 거라면 "금연학교"부터가 에러였다. "금연학교"를 해 놓고서 그 다음에 담배를 피게 되면 어쩌려고? 기껏 금연학교를 해 놓았는데 끝나고 바로 담배를 피게 되면 말짱 꽝 아닌가?
그러나 실제 "금연학교" 방송분에서도 "금연학교"의 과제가 끝나자 김태원과 이윤석은 바로 담배를 피고 있었다. 왜? 바로 그것이 프로그램이 목표하고 있는 바니까. 즉 금연학교라고 담배를 아예 끊으라는 것이 아니라 하룻동안 담배를 참는 과정을 통해서 금연에 대한 여러가지 상황이나 생각들을 체험해 보자는 - 말 그대로 리얼버라이어티인 것이다. 끝나고 나서야 어떻든 그 동안에는 과제를 버티며 리얼한 상황을 연출하고 지켜보자는 컨셉인 것이다.
사실 <남자의 자격>의 매력은 그런 데에 있다. 나름대로 열심이기는 하지만 사실 누구도 열심이 아닌. 하기 싫어 죽겠고, 그래서 도망치고도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시계에 묶여 그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싫어 죽겠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열심인 모습들이 어쩐지 우리 자신의 모습인 것 같아 그리 우습고 재미있는 것이다. 더구나 또 출연진들도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김성민, 윤형빈, 이정진 모두 메이저급이라기에는 뭣한 이제는 마이너들이고. 말하자면 아저씨들의 루저문화랄까?
그렇지 않은가? 보통 치이는 게 많은가? 한 집안의 가장으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그리고 아직은 자식으로, 직장에서는 위로는 상사에 아래로는 부하직원에, 할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고, 지워진 부담도 적지 않다. 그런데 남자의 자격이랍시고 그 어려운 과제들을 다 하라고? 오히려 열심인 게 더 부담스러운 거다. 적당히 빼고, 적당히 투덜대고, 과제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열심히 하고... 그러나 주제는 뭔가 좀 유익한 것으로...
그러나 그렇다고 죄다 빠지면 안 되니까 김성민이 고문관 역할을 맡은 것이다. 윤형빈은 아예 막내이니까 그렇고, 이정진은 같이 망가질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고, 그래서 김성민이 1회 때부터 밀고 온 생각없음에 쓸데없는 의욕과 성실함까지 더해지면서 시청자에게는 호감을, 모든 것이 귀찮고 짜증나는 출연진에게는 짜증을 유발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김태원은 거의 시체에 가까운 나약함과 무기력함으로 그밖의 다른 캐릭터들을 떠받치는 역할을 하고 있고. 물론 국민약골 - 아니 국민환자로서 김국진, 이경규 등과 어울려 하는 만담이 꽤나 쏠쏠하니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말이다. 재미조차 없었다면 그는 그대로 비호감으로 찍혀 온갖 성토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재미있으니까. 예능이니까.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남자의 자격>에 대한 일반의 평가는 대략 김성민과 김태원을 중심으로 둘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김성민의 성실함을 좋아하는 사람과 김태원의 무기력함에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과, 전자는 아직까지는 의욕이 넘치는 - 열심히만 하면 뭐든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일 테고, 후자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발로 걸레질을 하는 김태원의 나태함에 동화되고 마는 사람일 것이고. 그리고 아마도 그런 점이 <남자의 자격>이 아저씨들로 이루어져 칙칙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나야 당연히 후자인 적당히 버티고 끝내겠다는 아저씨다운 뻔뻔함이 좋은 경우인 것이고.
그런 점이 가장 잘 드러나 보인 것이 바로 이번 <남자, 엄마되기>편이었을 것이다. 진짜 그동안의 과제에서도 그랬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표정을 내보이는 방송도 오랜만이었다. 다른 프로그램이었다면 아이들과 헤어지며 눈물을 짜는 모습도 보여주었을 법 하건만 그런 것 하나 없이 이제 해방이라며 후련하게 헤어지는 모습은 참 신선한 것이었다.
그렇지. 하루에 정이 들면 얼마나 들까? 그렇게까지 사람 성가시고 피곤하게 했는데. 그게 정상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이기 때문에 어쩐지 정이 가고, 관심이 가고, 손이 가면서도, 역시나 성가시고 귀찮은 것이 본연의 모습인 것이고. 그런 것을 가감없이 보여줄 수 있다는 것, 하기 싫은 모습마저도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고, 그것으로써 공감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아마도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 아닐까?
말하자면 리얼버라이어티라는 것이다. 말로만 리얼이 아니라 나 자신의 나약하고 이기적인 모습마저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말 그대로의 리얼이다. 게으르고 나태하고 무책임하고 무기력하고 그러면서도 뻔뻔하고... 그러나 또 한 편으로는 정도 있고, 의리도 있고, 남을 돕기도 하고 도움도 받을 줄 아는 그런 모습들도 있고... 아마 이런 것을 훈훈함이라 하는 것일 테지. 훈훈한 리얼버라이어티랄까?
결국 결론은 보고 나면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우는 모습에 당황해하고, 지쳐하고, 때로는 짜증내면서도, 그래서 때로 도망치고, 꾀를 부리고, 그러면서도 어느샌가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모습들이. 그러다가도 헤어지면서는 후련해하는 가식 없는 모습들이. 아저씨버라라는 것이다. 딱 아저씨취향. 젠장, 나도 어느덧 아저씨라... 그렇다.
덧) 어찌되었거나 이번 <남자, 엄마 되기>는 좋았다. 육아에 대한 남자의 아주 자연스런 반응과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유익함을 잘 버무려내고 있었다. 다음 <남자, 꽃중년남 되기>는 과연 어떨까? 김태원이 달리기도 하고 줄넘기도 하는 게 어쩐지 웃음부터 나지만. 아마 조금 더 편한 웃음이 되지 않을까 한다. 기대해 본다.
덧) 문득 생각한 건데, 아무래도 다음 미션을 꽃중년되기로 한 것은 김태원 때문인 것같다. 이대로 힘든 미션 계속 하다가는 김태원이 어떻게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더불어 체력 좀 키워주고. 보아하니 별 효과는 없어 보이지만... 설마 운동하다가? 암튼 매회가 위태위태하다. 락커라는 게 원래... 알잖아? 그럴까봐. 위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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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퍼나르고 보니 그리 많이 안 썼네. 나름 매주 썼다고 생각했는데 미션 하나 끝날 때마다 썼던 모양이다. 순서는 올리는 역순. 이게 아마 육아편 보고 쓴 글일 게다. 남은 게 해병대편과 금연편, 리마인드웨딩. 아, 금연편을 썼던가? 모르겠다. 아무튼 그냥 뭔가 휑해 보여서. 변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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