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교활한 사기꾼 이경규...

까칠부 2009. 12. 15. 14:28

문득 남자의 자격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는 이경규라는 인간에게 제대로 사기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사실 오래전부터 느껴오던 것이었다. 이 인간이야 말로 진정한 사기꾼이 아닐까 하고.

 

남자의 자격에서 미션이 시작되면 두 사람이 먼저 반응한다. 김태원과 김성민이다.

 

"그걸 왜 해?"

 

김태원,

 

"그거 꼭 한 번 해 보고 싶었어!"

 

김성민,

 

그리고 아마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이에 이경규가 있다.

 

이경규는 초반 김태원과 입장을 함께 한다.

 

"나 안 해!"

 

그러나 결국 끝날 때 쯤 되면 마지막에 도전하는 건 이경규다.

 

"그래도 해야겠지?"

 

즉 이경규의 반응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정보를 강요받는다.

 

처음 이경규가 새로운 미션에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이경규조차 뭘 하는 지 모르고 있었구나. 진짜 리얼인 모양인데?"

 

그리고 이경규가 싫은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때는,

 

"이번 미션이 쉽지는 않겠구나."

 

혹은,

 

"그리 달가운 미션은 아니겠구나."

 

긴장감이다. 이경규가 당황해 할 때 함께 당황해하며, 이경규가 싫은 표정 할 때 같이 싫은 표정 하며 주어진 미션에 대해 긴장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리얼버라이어티로서의 남자의 자격의 높은 텐션은 그렇게 이경규로부터 시작된다.

 

남자의 자격이 갖는 강점이란 무엇인가? 이거야 말로 실제다. 그리고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닌데 모두가 해낸다. 즉 시청자 자신이 마치 남자의 자격의 멤버가 된 것처럼 긴장으로 프로그램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봉창 김성민과 국민할매 김태원, 그들을 조율하는 것이 사기꾼 이경규인 셈이다.

 

실제 남자의 자격을 보면 이경규는 프로그램의 구석구석까지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워낙 멤버들이 리얼버라이어티에 약하다 보니 직접 개입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는 다른 멤버들을 믿고 한 걸음 뒤에서 보이지 않게 개입하게 된 것이 차이랄까?

 

초창기부터 이경규는 프로그램의 만년떡밥이었다. 이경규의 욱사마 이미지는 다른 멤버들이 살짝만 건드려도 흠뻑 육즙을 즐길 수 있는 맛난 먹이였고, 여기에서 김태원, 김국진, 김성민, 이윤석의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너무 이경규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을 정도로 초반 이경규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김태원과 짝을 이루어 김국진에 당해주고, 김성민에 당황하고 황당해 하고, 이윤석의 하극상에 놀라고, 그러면서는 김태원과 더불어 덤 앤 더머, 노부부의 역할극으로 그의 캐릭터를 강조했다. 이정진에게 비주얼덩어리라며 예능에서의 기대감을 낮추어 쓸데없이 들어간 힘을 빼준 것도 이경규이고, 윤형빈에게 막내이자 언제 잘릴 지 모르는 생계형 이미지를 끊임없이 강조하던 것도 이경규다. 다만 최근에 와서는 말했듯 다른 멤버들이 버라이어티에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서서 단지 그들이 움지일 수 있는 여지만 만든다는 차이가 있다.

 

결코 있을 수 없는 가능성이지만 만일 지금에 와서 이경규가 남자의 자격에서 빠진다고 생각해 보라. 과연 어떻게 될까? 사실 다른 멤버가 빠지는 건 그렇게 타격이 없다. 김태원 빠졌을 때 빈자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지난주에도 김성민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별다른 타격은 없었다. 그나마 김국진의 빈자리가 클까? 그러나 이경규가 없다면 프로그램은 성립할 수 없다. 생각해 보라. 이경규의 빈자리를 누가 대신하겠는가? 화제를 던지고, 여기저기서 끼어들도록 분위기를 부추기고, 또 적당히 수습도 하고, 중심이 너무 쏠리면 또 적당히 옮겨주기도 한다. 그걸 누가 하는가? 김국진이? 물론 지금 김국진이 그 역할을 일부 나눠서 하고 있기는 하다. 김태원이 괜히 김국진을 넘버 2로 인정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래도 역시 김국진으로서는 무리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렇게 크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이경규가 롱런하는 비결이라 할 것이다.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욱사마로서의 캐릭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 김태원과 김성민이라는 이제껏 어느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없었던 캐릭터에 대해 그것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도. 프로그램의 양 끝단에 김태원과 김성민이 있을 때 그 안에서 어떻게 욱사마로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재미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가?

 

그저 혼자 나대기에 급급한 몇몇 MC들이 진정 배워야 할 부분일 것이다. 특히 리얼버라이어티란 개인기의 경연장이 아니라는 것을. 웃기는 게 MC의 역할이 아니다. 오히려 MC는 프로그램에 가장 깊숙이 녹아들어야 한다. 녹아들어 그 존재마저도 지워야 한다. 그대신 그의 손발이 되어 웃기는 것은 다른 멤버들이다. 이경규의 하인으로 가끔 소심한 반항도 하고 하는 이윤석이나, 이경규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캐릭터로 때로 함께 손을 잡고 보조를 맞추기도 하는 김국진이나, 이경규와 더불어 싫어싫어 노부부콤비를 이루는 김태원이나, 앞에서 바람을 잡으며 분위기를 이끄는 김성민이나, 김태원과 김성민의 중간격인 그러나 이미지상으로는 얼굴이지만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의 이정진, 가장 밑바닥에 깔려서 모두를 서포트하는 윤형빈, 이경규야 단지 거기서 살짝 한 손 거들면 그 뿐.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에서 가장 웃기는 건 이경규다. 모든 캐릭터를 살리면서도 결국에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이경규인 셈이다. 마치 그냥 웃기는 한 멤버처럼. 조연처럼.

 

아마 바베크 탐정이 그리 잡으려 쫓아다니던 검은 별이 이경규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쫓아다니면서도 끝내 잡지 못하는.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악당. 악당의 끝판대장. 모든 악의 배후. 사기꾼.

 

볼 때마다 나는 이경규에게 감탄한다. 진짜 이 사람은 천재구나. 다른 게 천재가 아니구나 이런 게 천재구나. 혼자서 웃기는 것도 웃기는 것이지만 주어진 소재를 한 순간에 그 특성을 파악해 요리해내는 데는. 망가져야 할 때를 알고, 버럭거려야 할 때를 안다. 때로는 욱사마의 이미지조차 없이 순순히 순응할 줄도 안다.

 

지난회차에서, 이경규는 더 이상 욱사마가 아니었다. 과제가 그랬으니까. 장기과제에서 이경규가 굳이 욱사마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장기과제처럼 호흡이 긴 과제에서 굳이 시작부터 텐션을 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시간은 있던 긴장도 풀어낸다. 긴장을 풀고 오히려 즐기면서... 자격증이라는 자체가 하나의 허들이기 때문에 즐기면서 시청자도 여유를 가지고 지켜 볼 수 있도록. 훌륭한 조율사인 셈이다. 욱마에랄까?

 

남자의 자격은 전에도 말했지만 이경규의 프로그램이다. 이경규의, 이경규에 의한, 이경규를 위한. 나머지는 그저 거들 뿐. 예전 고라이온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 다른 사자들이 1호기의 팔이 되고 다리가 되고 하던 것 처럼 그의 손발이 되어 그의 뜻을 전달할 뿐. 너무 심한가? 그 정도로 이경규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남자의 자격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전적으로 이경규 때문이고. 이경규 아닌 다른 MC? 상상조차 안된다.

 

그가 왜 예능의 전설이고, 또한 아직까지 현역일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하겠다. 설사 누군가 이경규의 존재와 가치를 낮추어 본다 할지라도 그 조차 그의 능력이라 할 정도로. 그저 감탄할 뿐. 그래서 그는 최고다. 지존. 예능계의 올타임 넘버원. 여전히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