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장르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경우 시나리오를 배우면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이 특정한 사물을 주고 그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이 먼저 이야기를 구성한 다음 그 안에서 오브제를 추출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쓰였고 어떤 역할을 하는가?
가장 이상적인 이야기구조는 이야기 안에서 이야기가 생산되는 것이다. 내가 <내사랑 내곁에>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내사랑 내곁에>의 모든 이야기는 <내사랑 내곁에> 안에서 생산된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캐릭터와 관계 안에서 그들의 관계로 인해 사건이 일어나고 또 심화된다. 대단하다.
그에 비하면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경우는 내적으로 이야기를 생산하거나 해결하지 못하니까 외부로부터 서프라이즈를 끌어들인 경우다. 매번 새로운 서프라이즈. 그러는 사이 이미 준비된 설정이나 캐릭터는 의미없어진다. 맥락이 이어지지 않고 끝도 흐지부지. 과연 그것은 해피엔딩이었을가?
<최고의 사랑>에서도 모든 이야기는 좁은 공간, 좁은 사람들 사이에서 생산되고 완결된다. 가만 돌이켜 보면 어떤 사건이든 이미 준비된 캐릭터 이외에서 발생하거나 완결된 적이 없었다. 하다못해 장실장이나 강세리의 입을 빌어서라도 사건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각자의 캐릭터 역할이 분명하다.
그것을 전제하고 구성하는 것이다. 구애정은 어떤 캐릭터. 제니는 어떤 역할. 강세리는 무엇을 하고. 다만 아쉽다면 장실장에 대해서 흐지부지 끝난 것일까? 한 방 먹여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 부분은 약간의 마무리 부족이라 생각한다. 아니면 리얼리티를 위한 나머지이거나.
잘 쓰는 글이란 그렇다. 버려지는 것이 없다. 넘치는 것도 없다. 톱니바퀴처럼 아귀가 맞아 돌아간다. 서프라이즈란 그런 것이 없는 작가의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서도 작가는 자기가 준비한 설정이 아닌 드라마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사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신기생뎐> 논란을 보면서 - 사실 나는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는 절대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어쨌거나 논란이 일고 있는 귀신소동을 보면서 무언가 이야기가 막혔구나. 안에서 이야기가 해결이 안 되고 있구나. 그래서 외부로부터 서프라이즈를 끌어들이는 것인가.
흔히 있는 일이다. 진중권이 말해서 화제가 되었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저것 잔뜩 벌려놓고는 해결이 되지 않으니 기계로 만든 신이 등장해 모든 것을 해결한다. 내적 구조에 의해서 이야기가 완결이 되지 않으니 외적 요인에 의한 서프라이즈로써 그것을 대체한다.
다만 차이는 있다. 어차피 드라마란 사건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그것을 어떻게 드라마 안에서 수습하는가? 그래도 그것이 되었으니 임성한도 지금까지 드라마작가로써 활동을 이어 올 수 있었던 것이겠지? 임혁씨의 믿음도 그를 뜻하는 것일 게다. 일이 여기까지 왔어도 알아서 수습하리라.
결국 사전제작 없는 한국 드라마제작의 현실이라 할 것이다. 최소한 대본이라도 드라마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다 나와 있어야 했는데. 거의 생방송으로 대본 쓰고 대본 기다려 녹화하는 수준이지 작가라고 소모되지 않을 수 있나. 그래서 이야기가 풀리지 않으면 궁여지책으로... 물론 의도가 있을 수는 있겠다.
그냥 든 생각이다. 굉장히 피곤했겠다. 그리고 궁지에 몰려 있었겠다. 그런데도 일단 계약을 했으니 쓰기는 해야겠고. 어쩌면 자기가 뭘 쓰고 있는지도 몰랐을 수도 있다. 일을 벌리고, 그리고 그것을 수습하고. 다만 어떻게 수습하는가에 따라 천재인가? 바보인가? 여기서 제대로 수습하면 인정해도 좋으리라.
나 역시 그런다. 시간에 쫓기면 무리수를 많이 둔다. 하기는 요즘은 시간에 쫓겨 쓸 일이... 있구나. 그게 문제. 그래도 오전 9시까지는 넘겨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잘 쓰여졌는가 체크도 않고 그냥 넘기고. 그렇다고 시간 끌어 좋을 건 없잖아? 아무튼. 힘들겠다. 그 생각 뿐.
우리나라 드라마 작가들도 참 힘들다. 일주일에 2회분을. 처음에는 비축분도 있겠지만... 더구나 드라마 진행상황에 따라 요구도 많아지겠지. 처음 생각한 것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바랄 것이다. 끝까지 시나리오를 다 쓰고서 제작 좀 했으면. 아닐까? 고생하고 있다. 수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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