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 이라기에는 그리 오래지 않은 얼마전, 만화에서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반말을 해서는 절대 안되었다. 설사 도둑놈이 집안의 물건을 훔쳐 달아나더라도,
"거기 서!"
절대 안된다.
"거기 서세요!"
정답. 믿기지 않으면 80년대 나온 윤승운, 신문수, 윤준환, 길창덕 등의 만화를 찾아 구해 보라. 얼굴 가린 시커먼 도둑님들과도 존댓말 쓰며 잘 어울려 놀고 있다.
가족이 남녀가 한 방에서 자도 음란하고 - 우리집은 부모님이랑 세 남매가 당시까지도 한 방에서 함께 잤었다. 참 흉악한 가족이었던 셈이다. - 남매가 같은 이불 덮고 손잡고 자서도 안되고 - 미안, 동생! - 부부도 이불을 따로 - 일본이냐? - 뭐 기타등등등등...
드라마로까지 제작되었던 한 중견만화가의 만화에서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다가 워낙 심의기관에 뻰찌를 맞아 나중에는 자기가 뭘 그리려 했는지 모르게 되었다고도 했었고.
원래 권력이란 스스로 정의롭기를 바란다. 정확히는 정의롭다고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것은 피지배자에게 죄의식과 열등감을 심어줌으로써 달성된다. 그래서 항상 불의한 권력일수록 도덕을 강조하고, 부당한 권력일수록 정의를 강조하고, 그것을 강제한다. 정의롭고자. 정의롭지 않도록 만들고자.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바로 거기에 있다. 군사독재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주입되어 온 죄의식과 열등감, 그래서 옳아야 하고, 그래서 바라야 하고, 그래서 성실해야 하고,
조금 엇나가면 어떤가? 조금 무례하면? 조금 게으르면? 조금 나태하면? 조금 싸가지없으면? 조금 이기적이면? 조금 무능하고, 조금 열등하고, 조금 무기력하고... 그러나 그게 안 되니까. 그래서 저러고 있음에도 좋아라 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이다.
아, 나는 도덕적이야... 나는 정의로워...
악플러라는 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바로 그러한 열등감과 죄의식 넘치는 도덕과 정의에서 나오는 거다. 그렇게라도 해서 자신을 다스리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절박함이.
가장 잔인한 것은 가장 큰 슬픔으로부터 나온다. 가장 비극적일 때 그것은 가장 큰 악이 된다. 선량한 자가 결코 선량하지 않은 이유다. 맹자도 그래서 자포자기를 상대할 바가 없다 했었지.
슬픈 것은 그럼에도 저들의 권력은 겨울의 강철무지개와 같더라는 것이다. 그러기를 바라고, 욕하면서도 그러기를 원하고, 그렇게 길들여지고.
얼마전 아이비의 가수 발언이나 유이 관련해서 내가 화를 낸 게 그래서다. 노래 못하면 가수해서는 안되고, 꿀벅지라는 말을 좋다고 했으니 성추행도 자업자득이고. 이전 윤계상의 경우도 모르면 말해서는 안된다.
내가 진보고 개혁이고 우습게 여기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들도 똑같다. 한결같이 정의롭고 바르고 옳기를. 단지 입장만 다를 뿐이다. 과연 모두가 그럴 수 있는가? 그래서 그들은 말한다.
"어리석은 대중..."
한 나라의 정치수준은 그 나라의 국민수준을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 국민수준을 넘어선 정치란 도덕적인 독재, 현명한 전제주의밖에 없다. 그러나 과연... 답답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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