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패망하고 의자왕과 함께 당으로 끌려간 그의 처 은고에 대해서는 지금도 설이 분분하다. 과연 당측 사료인 대당평백제국비문과 일본의 일본서기, 그리고 고려에서 저술한 삼국사기에서 공통으로 등장하고 있는 백제 멸망의 원흉 가운데 하나인 요녀가 바로 이 은고인가.
여기에 대해 이해하자면 의자왕 15년, 즉 서기 655년에 있었던 정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백제가 고구려와 연합해 신라의 성 30여 개를 빼앗은 이 해 의자왕은 태자궁을 화려하게 수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해 역시 백제의 충신인 성충이 죽고 흥수가 유배당했다. 의자왕의 폐정이 시작되는 기점이면서 또한 의자왕 4년 태자로 책봉되었던 부여융 대신 백제 멸망 당시 장자인 부여효로 태자가 바뀌어 있던 것에 대해 설명해주는 연결고리기이고 했다. 이때 태자가 바뀌었다.
바로 여기에 힌트가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의자왕 4년에 의자왕은 장남인 부여효가 아닌 3남인 부여융을 태자로 책봉했을까? 그리고 요녀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의자왕 15년 도리어 의자왕은 장남인 부여효를 태자로 앉히고 있었다. 처음부터 장남이 아닌 3남을 태자로 책봉한 것이나, 다시 장남으로 태자를 바꾸는데 요녀가 나타나고 폐정이 시작되었던 것이나, 의미하는 바는 의외로 단순할 것이다. 고구려와 연계하여 신라공략에 성공하고, 그에 힘입어 좌평을 왕자로 채운다. 왕권강화다. 그리고 독주다.
즉 부여효가 장남인 것은 그의 생모가 의자왕과 가장 오랫동안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태자가 3남인 부여융인 것은 그의 생모가 부여효의 생모보다 더 힘이 강하여 아들인 부여융을 태자로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의자왕의 힘이 강해지며 조강지처라 할 수 있는 부여효의 생모가 전면으로 나서는 계기가 되었고 이때 태자가 바뀌었다. 그렇다면 부여융의 묘비에 은고의 이름이 없고, 백제가 멸망할 당시 의자왕과 더불어 당으로 끌려간 그의 아내의 이름이 은고였으며, 이후 의자왕도 아니고 부여효도 아닌 부여융이 웅진도독이 되어 당의 명령을 받아 당을 다스리게 된 정황을 무리없이 설명할 수 있다.
의자왕과 부여효가 웅진으로 몸을 피했을 때 사비성을 사수하려던 부여태를 부여효의 아들 부여문사가 말리며 항복을 설득한 정황도 마찬가지다. 웅진성으로 도망친 의자왕과 부여효를 오히려 웅진성의 방령인 예식진은 그들을 배신하여 나당연합군에 항복케 하고 있다. 콩가루도 이런 콩가루가 없다 싶을 정도로 당시 백제의 지배층은 사분오열되고 있었다. 심지어 백제 왕성이 위험한 상황인데도 정작 백제부흥군 수만을 일으킬 여력이 있었음에도 나머지 백제 귀족은 침묵하고 있었다.
결국은 5천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에서 김유신을 막아선 계백의 벼슬이 당시 달솔이었다는 것이다. 나라가 망하느냐 하는 상황에 병사를 주어 내보낼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신임을 받고 있던 장수의 벼슬이 달솔이었다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따로 있었음을 뜻한다. 그것은 아마도 계백의 신분과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부여효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한 마디로 부여효로의 태자교체를 둘러싸고 백제가 시끄러웠던 것 역시 그의 신분, 즉 그 모계의 신분으로 인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의자왕 2년 의자왕으로 하여금 조카인 부여교기와 어머니가 같은 여자형제들을 제거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준 것이 부여융의 모계였다면, 부여효로의 태자교체는 그러한 모계에 대한 배제를 통해서만 가능했을 테니 말이다. 성충이 죽고 흥수가 유배된 것도 그러한 정황과 관계가 있을 것이고, 하필 의자왕이 도망쳐간 웅진성에서 성주가 배신을 한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부여융은 사비도독이 아니라 웅진도독이었다. 기록에 없으므로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부여효의 아들인 부여문사 또한 그 모계가 사택씨이거나 아니면 웅진쪽 귀족세력이 아니었을까.
다시 말해 신분이 천한 조강지처의 아들을 태자로 올리는 가운데 의자왕이 당시 구축하고 있던 정치력을 거의 소모한 것이 백제가 멸망에 이르는 원인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백제 지배층에게 공공의 적으로 여겨지고 있던 의자왕의 처이며 부여효의 모후가 요녀로써 비토되었다. 그리고 백제 멸망시 태자와 더불어 의자왕과 함께 당으로 끌려간 것은 은고다. 다시 말해 은고가 곧 그 요녀이며 부여효의 생모이고, 의자왕이 끝까지 신뢰한 조강지처였다.
아마 그런 부분을 많이 반영하려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필 은고(송지효 분)가 원래 노예로 팔렸다가 상단을 물려받은 상인 출신이었고, 지금 의자(조재현 분)가 혼인을 추진하고 있는 연문진의 딸 연태연(이지우 분) 역시 사택씨에 비견할만한 웅진의 대귀족이다. 의자가 연태연과 혼인하여 연문진의 힘을 등에 업는다면 충분히 사택씨로부터 전면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교기를 제거하고 국정을 장악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대신해서 연태연의 아들 부여융을 태자로 세우지만, 역시 사택씨의 전횡을 보았기에 충분한 기회가 되었다 판단되었을 때 왕족인 부여씨로 하여금 대거 좌평의 자리를 채우고 그들을 배경으로 연씨마저 몰아내고 태자를 은고의 아들 부여효로 바꾸었다.
확실히 신라군에 포로로 잡혀간 노예출신의 계백(이서진 분)이라면 그 벼슬을 달솔 이상으로 올리는 데에 아무리 의자왕의 왕권이 강해져도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충과 흥수 역시 연문진(임현식 분) 쪽 사람으로 채워져야 할 텐데. 이건 또 연문진의 문인이 많다는 점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다만 성충과 흥수의 벼슬이 좌평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만한 배경이 있어 주어야 한다.
묘하게 어느 부분은 역사와 맞으면서도 어느 부분에서는 역사를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일단 교기만 해도 일본서기의 기록에서는 의자왕의 조카, 즉 의자왕의 동생의 아들로 묘사되어 있었다. 하지만 의자왕에거 숙청되고 난 다음의 일본에서의 행적을 보면 사택씨의 전면적 지원을 받으며 의자왕과 왕권을 다투었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물론 아무리 교기를 숙청했다고 백제의 유력귀족이던 사택씨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을 테니 그들이 남아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 항복하는데 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충분한 배경이 되어 주고 있지 않은가.
그 과정에서 무왕의 서동요 고사를 그대로 인용한 듯한 장면은 사실 조금 무리수였다. 차라리 선화황후가 등장하지 않았으면 모르겠는데 선화황후가 이미 앞에서 중요하게 등장한 바 있기에 노래로써 연태연과의 관계를 기정사실로 만드는 장면은 자칫 동어반복으로 여겨지기 쉬웠다. 하기는 무왕과 사택비, 의자의 관계가 의자왕과 부여효, 부여융과의 관계의 오마주나 다름없다. 여러가지로 반복되는 패턴이 꽤 되는 편이다. 제작진이 염두에 두여야 할 부분일 것이다. 반복되는 패턴이란 곧잘 지겨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신라측 김유신과 그의 아버지 김서현의 모습도 상당히 잘 묘사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야계로써 신라의 주류로부터 따돌림당하며 그래서 오히려 소외된 자들에 대해 관대할 수 있는 면모.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반드시 주류로 올라서겠다고 하는 강한 다짐과 추진력이 있었다. 김유신이 계백의 계책을 받아들여 낭야성을 공격하는데 성공하는 부분은 역시 주인공을 돋보이기 위한 판타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낭야성에서의 싸움은 전술이고 뭐고 없는 막싸움으로 그나마 나중에 김유신이 병사를 이끌고 구원하는 장면이 전장의 긴박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여건의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공을 들여 만든 흔적이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이제 의자는 교기와 더불어 신라의 가잠성을 공격할 테고, 그리고 계백 또한 김유신군에 속해 가잠성으로 향할 것이다. 의자가 무진을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이는 것을 보았으니 계백의 가슴 속에는 그에 대한 복수심이 불타오르고 있을까. 상당히 뻔한 전개이지만 두 사람의 갈등이 어떻게 극적으로 해소되는가를 지켜보는 것도 한 재미일 것이다. 마침내 돌아온 계백과 초영(효민), 은고, 의자의 엇갈리는 관계도 역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상당히 재미있었다. 짐짓 망나니로 위장한 의자라든가, 사택비에게 접근하여 의자의 책사 역할을 하는 은고, 그리고 은고의 무력을 담당하는 왈가닥 초영,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과묵한 계백, 특히 노예병으로 활약하는 계백의 모습은 어디 미국드라마를 보는 듯한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그러나 전형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계속해서 반복되어 쓰여져 왔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먹히는 종류의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뻔히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알면서도 그래서 재미있다. 각 캐릭터가 주는 매력이. 그리고 진부하지만 그들이 헤쳐가는 상황이나 그들 사이의 첨예한 관계들이. 스토리가 아닌 텔링이며, 설정이 아닌 묘사인 것이다. 제작진과 배우들의 역량과 노력을 보게 된다. 좋다.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괜찮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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