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음악을 같이 올리고 싶었는데 워낙 요즘 분위기가 수상쩍어서...
아무튼 간만에 블랙홀을 들으면서 문득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
"이건...?"
확실히 메탈이라면 그리 좋아하지 않던 나도 블랙홀은 부담없이 들을 수 있었거든. 왜?
그걸 이제 알았다.
"뽕이다!"
히로뽕의 그 뽕이 아니다. 정윤희 주연의 그 뽕도 아니고. 트로트의 바로 그 뽕이다.
원래 한국의 대중음악은 트로트에서 비롯되었다. 2박자의 트로트를 4박자로 늘린 것이 이른바 말하는 가요, 사실 가요라면 트로트를 뜻하는 거였지만 언제부터인가 트로트가 주류에서 밀려나면서 발라드릇 비롯한 이문세나 이선희, 이승철 등이 부르는 한국적인 팝을 가요라 부르게 되었다.
여기에 감미로운 멜로디에 가사를 얹은 것이 발라드, 강렬한 비트에 랩을 얹으면 힙합, 드럼소리 요란하게 일렉트릭기타가 울고 있으면 락, 원래 초창기 한국의 락이라는 것도 트로트 만들던 대중가요 작곡가들이 만들곤 했더라니까? 밴드라고 밴드 자체 내에서 음악을 생산하는 그런 밴드음악이 아닌 단지 기성작곡가들의 곡을 받아 부르고 연주하던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흔히 뽕이라 부른다. 조금 고상하게 표현하면 "국산 멜로디" 혹은 "국산 코드". 최근의 소녀시대의 Gee나 원더걸스의 Telll me에서도 나타나는 바로 그것. 디스코 리듬이든, 테크노든, 모던락이든, R&B든 한국 대중음악에서 히트하자면 도저히 빠져서는 안 되는.
그래서 예를 들어 한국락의 대표라는 시나위의 음악에도 그 뽕은 들어 있고, 부활의 락발라드 또한 70년대의 고전락에 뽕코드와 멜로디를 얹은 것이고, 자우림이며, 노브레인이며, 크라잉넛이며, 하여튼 락그룹 가운데서도 어느 정도 대중적으로 인기도 끌고 한 밴드들은 하나같이 그 뽕을 노래하고 있었다. 역시나 락이더라도 일단 대중이 들어주어야 의미가 있으니까. 더구나 그들 자신이 듣고 자라온 것도 뽕이고.
그래서일까? 블랙홀의 음악을 들으면서도 그것을 느꼈다. 아니 그보다 더 노골적이었다. 멜로디만 따로 떼어 놓고 들었을 때 블랙홀의 음악이란 거의 대중가요다. 그것도 멜로디가 아주 아름다운, 만일 신승훈이나 김건모 같은 인기있는 대중가요 가수가 불렀을 경우 꽤 크게 히트했을지도 모르는 매우 전형적인 한국적인 가요.
그러나 그럼에도 블랙홀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런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은 블랙홀이 들려주는 완고한 메탈사운드 때문이었다. "깊은 밤의 서정곡"이나 "forever"같은 메탈발라들을 부르면서도 결코 놓치지 않는 결벽증에 가까운 단단한 바로 그 메탈사운드. 멜로디가 아니라, 리듬이 아니라, 그 사운드다.
말하자면 블랙홀을 메탈이게 하는 것은 멜로디가 아닌 바로 그 사운드라 하겠다. 그 리듬이 아닌 사운드다. 하긴 예전 몽키헤드라는 메탈밴드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라는 노래를 메탈로 멋드러지게 편곡해 부르기도 했었다. 중요한 것은 멜로디가 아닌 사운드라는 거지. 그 사운드가 얼마나 메탈에 가까운가...
어쩌면 문득 드는 생각이 그것이 블랙홀이 의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차피 메탈이란 한국사람들에게 그리 친숙하지 않은 장르다. 80년대라면 모를까 90년대 들어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더 이상 메탈을 듣지 않게 되었고, 그런 만큼 익숙지 않은 메탈사운드를 부담없이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친숙한 뽕이라고 하는.
그러고 보면 부활의 락발라드도 김태원이 스스로 의도적으로 뽕코드를 삽입한다고 했었지. 그래야 한국의 대중들이 더 쉽게 친숙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아마 직접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서 알 수는 없지만 블랙홀 역시 같은 생각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긴 그러고 보면 블랙홀은 메탈치고는 참 가사가 잘 들리는 밴드다. 가사 또한 심오하고. 치열한 시대정신을 그대로 담아낸 시적인 가사는 국문학도인 주상균의 자기증명에 다름아니다. 그 가사를 최대한 전달하고자 한다면 가사가 잘 들리는 멜로디여야겠지. 사운드는 메탈이더라도 멜로디는 가사를 들려주는 멜로디여야 한다는 거다. 바로 뽕. 잘 들리라고.
아무튼 그래서 덕분에 메탈이라면 그리 좋아하지 않던 내가 어느샌가 메탈사운드를 익숙하게 들을 수 잇게 되었다. 오로지 블랙홀의 공이다. 블랙홀 특유의 멜로디컬한, 기승전결이 분명한 가사와 멜로디가 어느새 젖어들듯 길들여진 것이니. 워낙에 멜로디가 아름답고, 사운드도 훌륭하기에. 특히 8집은 정말이지...
언제고 가까운 시일에 콘서트 하면 간만에 거기나 찾아가야겠다. 락이란 라이브라. 정말 아주 간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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