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결혼따로 연애따로의 전통은 유럽의 귀족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결혼이란 의무였다. 가문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혹은 정파적인 이익을 위해서, 그래서 귀족들은 기꺼이 자신이라는 상품을 시장에 내놓아야 했었더. 그리고 대신 결혼생활에서 그들은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다른 남자의 사생아만 낳지 않으면 된다. 낳더라도 굳이 집안에 들이지만 않으면 된다. 가문의 뒤를 이을 후계자만 낳을 수 있다면 나머지는 알아서 하는 것이었다. 정부를 두든 아니면 어디 가서 불륜을 저지르든. 그것은 지극히 서로 존중해주어야 할 사적인 영역이었다. 그렇게 귀족들로 하여금 귀족이라는 억압으로부터 풀어주는 하나의 해방이었다. 귀족의 사랑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결국은 조건 없이 자기만을 좋아해 줄 사람을. 차지헌(지성 분)이나 차무원(김재중 분)이나 서나윤(왕지혜 분)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현실에서도 굳이 상류사회의 인간이 아니더라도 조건을 보고 상대자를 고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소년소녀도 아니고 순수하게 자기만을 바라봐주고 좋아해 줄 사람을. 그래서 차지헌은 노은설(최강희 분)를 뒤쫓고, 서나윤은 차지헌을 노리고, 차무원은 서나윤에게 고백하며, 다시 서나윤에게 차인 차무원이 노은설에게 향한다. 그것은 그들에게 지워진 부담에 대한 작은 일탈이리라.
하기는 차지헌은 아버지의 과도한 기대로 상당히 괴상하게 일그러진 모습을 하고 있다. 도망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런 차지헌 앞에 나타난 노은설은 하나의 탈출구이기도 하리라. 역시 어머니에게 등떠밀리다시피 DN그룹의 경영권을 차지헌과 다투고 있는 차무원 역시 숨통을 트이고 싶어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러한 구멍을 노은설이라고 하는 야생을 통해 찾게 된다. 평범하게 자유롭게 살고 있다.
어쩔 수 없이 현재 자신의 위치가 그러하기에 현실의 조건을 따지는 부모들과 그러나 전혀 상관없다는 듯 진심을 추구하는 2세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놓여 있는 가난뱅이 노은설. 하기는 오히려 노은설이 그네들의 부모들과 코드를 맞추고 있다. 일단 재벌가 자식들은 안 된다.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뒤가 안 좋다.
사실 맞는 것이 연애결혼이라는 것이 19세기 처음 나타나게 된 것도 산업화의 결과 개인의 경제력이 그만큼 신장된 탓이 컸다. 이 역시 원래는 가난할수록 초혼연령이 높았다. 먹고 살 밑천을 마련하려니 특히 일을 해야 하는 남자의 경우 늦은 나이에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것이 매춘산업이 발달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었다. 먹고 사는 게 바쁜 데 무슨 연애인가? 연애를 하더라도 그것은 현실적인 연애일 것이다. 말 그대로 도련님 아가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작 노은설에 목매는 차지헌과는 달리 노은설이 목매는 것은 정규직과 승진, 그리고 오르게 될 연봉이다. 그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차지헌의 사랑놀음에 동참해 줄 수 있다. 차무원과의 관계에서도 허락되는 것은 단지 동경의 대상으로서. 그 선이 너무나 분명하다. 오히려 단지 함께 어울리고 같이 놀아준다는 이유로 마치 착각하듯 호감을 느끼고 다가서는 차지헌과 차무원, 그리고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서나윤 쪽이 한참 순수하고 순진해 보인다고나 할까?
이 드라마에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 매우 정상적이다. 그런데 정상적이어서 비정상적이다. 거기에서 모든 긴장과 재미가 나온다. 그래도 재벌답게 이것저것 음모도 꾸미고 하는 부모들에 비해 오히려 부모들이 추진하고 있는 비열한 행위들에 대해 미리 알리려는 그네들의 순수한 선의와 노력들이 오히려 긴장을 높이면서도 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특히 재벌가 아가씨다운 새침함과 결정적인 순간의 망가짐의 간극을 너무나도 잘 소화해내고 있는 서나윤의 캐릭터는 놀라울 뿐이다. 왕지혜가 이렇게 매력있는 배우란느 것을 처음 알았다.
꿈속을 사는 도련님, 아가씨들과 현실을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은설의 대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들. 더구나 재벌이라고 하는 비현실에 다시 일상이라고 하는 비현실을 중첩함으로써 친근하지만 어딘가 묘하게 거리가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는 것만 보면 서민의 일상을 다룬 생활드라마인데, 그러나 배경을 보고 있으면 보통 대단하고 화려한 것이 아니다. 그 간극이. 그 어색한 조화가 그 자체로 드라마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다.
처음 모 재벌그룹 회장의 한 사건을 희화한 것이 아닌가 싶던 룸살롱 폭행사건에 대해서마저 그냥 놓치지 않고 DN그룹의 회장인 차회장의 봉사활동을 통해 일상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으니. 자원봉사활동을 마치고 나면 설정이야 어찌되었든 차회장 역시 보통의 가장으로 보인다. 그 어머니인 송여사(김영옥 분) 역시 어울리게 주책맞고.
도대체 재벌스런 재벌이란 하나도 없다고나 할까?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재벌이 없는 재벌드라마. 이상한 나라에 온 엘리스마냥 그런 이상한 나라를 노은설의 눈으로 지켜본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판타지답게 극단적인 상황이 없다. 이번에도 차지헌과 노은설에 관련해서 언론에 폭로하려던 것이 차회장의 맞불로 무위로 돌아갔다. 일정한 선을 유지한 채 그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결국 차지헌이 공황장애를 앓는 그 원인이 드라마의 키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가 가지고 있는 감추고 싶은 트라우마일 것이다. 그것이 드러나고 해소되는 날 드라마는 끝나고 말 것이다. 노은설이라는 고양이는 가장 가까이에서 차지헌을 보좌하며 그녀의 꿈을 이룰 것이고. 노은설은 마침내 차지헌의 유혹과 설득에 넘어갈 것인가. 모성애를 자극하는 타입이기는 하다.
분명 이것은 코미디다. 코미디 드라마다. 코미디는 웃음을 목적으로 한다. 유쾌하애 한다. 즐거워야 한다. 근래 보게 되는 가장 훌륭한 코미디일 것이다. 우울하거나 어둡고 한 것 없이 한껏 해맑고 밝다. 일상의 힘일 것이다. 뒤틀린 없는 올곧은 평범함. 재미있는 이유일 것이다. 괜찮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78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사랑 내곁에 - 순수하도록 천진한 배정자의 광기... (0) | 2011.08.22 |
---|---|
내사랑 내곁에 - 너무 선량해서 악할 수 있음을... (0) | 2011.08.21 |
공주의 남자 - 차라리 죽이고 싶도록 간절히 사랑하기에... (0) | 2011.08.19 |
넌 내게 반했어 - 중심줄거리가 없다! (0) | 2011.08.19 |
공주의 남자 - 신숙주에 대한 실록의 평가... (0) | 2011.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