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두 가지 입장의 충돌일 것이다.
목적이 보편적이지 않으니 보편적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
결과가 보편적이니 보편적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한예슬이 그런 것은 단지 자기가 견디지 못해서다.
하지만 오죽하면 한예슬이 그렇게까지 했겠는가.
남들 다 참는 것을...
하지만 한예슬이 참지 않았기에 이슈가 되었다.
결국은 한예슬을 전체 한국드라마제작에 있어서의 모순의 한 부분으로 보는가,
단지 돌출적인 하나의 우발적 사건으로 보는가,
재미있는 것은 그러면서도 한예슬을 계기로 한국 드라마제작현장의 모순이 일깨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판이 이루어지고 시정요구가 나오고 있다.
어째서? 한예슬 또한 한국 드라마제작현장이 갖는 모순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한예슬로 하여금 드라마 촬영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가게 한 원인 그 자체가 보편적인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행동이지만 결과적으로 보편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아마 이번 일로 현실에 많은 변화가 있으면 역사에는 이런 식으로 기록될 걸?
"한예슬 사태를 계기로 드라마제작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그것이 현실이니까.
그리고 그것이 유명인이 갖는 무게이기도 하다.
스태프 몇몇이 반항해봐야 그저 묻힐 뿐.
결국은 모든 사안을 개인의 문제로 보니까 아무것도 바뀌는 것이 없는 것이다.
개인이 문제인가, 아니면 주위의 환경이 문제인가.
전자는 결국 개인을 바로잡는데서 끝난다. 에릭식 사고방식이다. 타일러서 가르치겠다.
후자는 환경을 바로잡고자 의식을 일깨운다. 김여진식 사고방식이다. 차라리 다행이다.
아마 정치에 있어서도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가지 입장일 것이다.
범죄는 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면 사회의 문제인가?
가난은 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면 사회의 문제인가?
청소년 문제를 단지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 개인의 인성문제로 볼 것인가?
아니면 청소년으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르도록 만든 환경을 추적하여 개선할 것인가?
한국사회가 상당히 보수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시스템이 전근대적이고 폭력적이고 야만적이어도 그에 대해 개인적으로 대응한 건 잘못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히 인성적으로 접근하여 비판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개인과 환경은 별개. 합리적인 것 같지만 그러나 그래서 바뀌는 건 전혀 없다.
원인을 주목할 것인가? 아니면 결과에 가치를 둘 것인가?
물론 어느 한 쪽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마음에 들지 않을 뿐.
재미있다. 작년 타블로도 그렇더니만 많은 것을 일깨우게 된다.
배우가 현장에서 배역에 대해 자기주장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
사장이 부당한 지시를 하면 말단사원도 그에 대해 한 소리 할 수 있어야 정상일 텐데도.
바로 그런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서기 위해 모두들 그리 노력하는 것 아니겠는가.
아마 내가 이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한국의 노동문제가 바로 여기에서 보인다.
직장과 사용자와 노동자와의 관계가 너무 적나라하다. 흥미롭다.
한예슬이 의도했는가는 상관없다.
그녀를 그렇게 행동하게끔 만든 원인이 우리 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개별의 행동이지만 결국 보편의 문제로 확산되게 된다.
바로잡거나 아니면 역시 문제제기만 하고 끝나거나.
그래도 결국 그 계기를 제공한 것은 한예슬 자신이다.
인내하려고만 했다면 그같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더 현명했으면 좋았을 테지만 현명한 사람은 또한 그같은 문제제기 자체를 하지 않는다.
어찌되었거나 한예슬은 그나마 가장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입장이므로.
한예슬이 영리했다면 이번에도 역시 묻혔다.
물론 한예슬이 영리하지 못했음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을 테고.
한예슬의 공이다. 인정하는 바다. 그 동기야 어쨌든. 때로 결과가 동기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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