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라디오스타 특집 - 전편만한 속편 없다...

까칠부 2009. 12. 25. 09:18

작년 라디오스타 크리스마스 특집은 산만하지만 무언가 정돈된 느낌이 있었다. 제각기 놀며 시끄러웠지만 밴드로써 함께 만들어간다는 통일감이 있었다. 기타 김태원, 베이스 홍서범, 키보드 유영석, 퍼커션 김흥국, 보컬 김태연, 세컨드 기타 윤종신... 어차피 밴드라는 게 그렇게 왁자지껄한 거니까.

 

그래서 노래를 하다 말고 끊고 서로 다투고 갈등하며 왁자하게 떠들어도 크게 흐트러지는 법 없이 안정되었었다. 김태원이 코드를 까먹고, 홍서범은 연주를 틀리고, 김흥국은 조느라 정신을 잃고, 한참 노래를 하고 토크를 하다가도 어디론가 삼천포로 빠지고, 그러나 그 중심에 밴드가 있었기에 쟁쟁한 선배들 가운데서도 태연은 안정감 있게 자신을 주장할 수도 있었다. 모두가 주인공이었고 소외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윤종신도, 신정환도, 김구라도, 김국진도.

 

그러나 어제 한 라디오스타에서는 그런 게 없었다. 멤버는 쟁쟁했다. 대한민국 발라드 그 자체라는 신승훈과 역시나 감미로운 음악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유리상자와, 더구나 소녀시대 서현. 그러나 따로였다. 신승훈 따로, 유리상자 따로, 서현 따로. 라디오스타 MC들도 따로였다. 서로 따로 노래하고, 서로 따로 연주하고, 서로 따로 이야기하고, 덕분에 서현은 완전히 소외되어 버렸다. 완전히 동네 아저씨들 노는데 끼어든 어린아이처럼. 작년 라디오스타 특집에서는 태연이 주인공이었는데.

 

내가 태연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도 작년 라디오스타에서였다. 그 전까지 소녀시대라면 비호감이 강했다. 그런데 라디오스타에 나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고 노래 참 잘 부르는구나, 그리고 매력적인 아가씨로구나... 태연으로부터 소녀시대에 대한 호감도 생겼다. 그러나 어제의 서현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프로그램에 붕 뜬 채 그저 귀여운 어린아이였다. 말똥거리며 어른들 하시는 말씀에 화들짝 놀라고 흠칫 움츠리고 귀엽게 재롱도 떠는, 노래조차 그녀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도대체 왜 나왔나 싶게.

 

결국은 멤버의 구성에서 차이가 났다. 작년의 김태원, 김흥국, 홍서범, 유영석은 모두가 각자 노래를 하나씩 맡아 부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연주자였다. 연주자란 보컬의 뒤에서 연주로써 서포트해주는 존재다. 그들 자신이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그들 자신으로 인해서가 아닌 보컬과 다른 연주자와 함께 함으로써 완성되는 이들이다. 그런 만큼 그들의 모든 말이나 행동은 밴드라는 전제로, 그리고 보컬 태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어제는 달랐다. 신승훈은 전설이라는 말이 무색할 한국발라드 최고의 보컬이며 유리상자 역시 훌륭한 미성의 보컬들이다. 그들이 들고 나온 악기도 모두 통기타, 반주를 맡기에는 악기구성부터가 에러다. 각자 따로 노래를 맡아서 부르자는 것이지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며 함께 어우러지자는 구성은 아니었다. 당연히 중심도 보컬인 신승훈과 유리상자, 서현에게 분산되었고, 상대적으로 중량감이 떨어지는 서현은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래 선곡 자체도 서현과 안 어울렸고.

 

안이했달까? 작년에 기러기 밴드가 성공했으니 올해도 그렇게 하면 성공할 것이다. 작년에 기러기밴드가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으니 출연자만 바꾸어서 꾸며보면 괜찮을 것이다. 김태원, 홍서범, 김흥국, 유영석을 대신해서는 신승훈과 유리상자를, 태연을 대신해서는 서현을, 그러나 일단 바뀐 출연자부터가 성격지 전혀 다른 것을. 더구나 구성 역시 작년의 밴드와는 달리 올해는 솔로와 듀엣과 아이돌의 공동출연이고. 분명 작년과 같지는 않을 것을 예상했겠지만 그 결과 너무 산만하고 또 중심이 없는 그런 프로그램이 되어 버렸다. 정말 재미없게도. 기껏 나온 서현의 매력을 알아갈 기회조차 없이.

 

그나마 좋았던 것이라면 역시 작년처럼 이제는 거의 잘 들리지도 않게 된 노래들을 다시 한 번 떠올릴 기회가 되어주었다는 것이다. 최성수의 남남과 해후, 풀잎사랑, 최성원의 제주도의 푸른밤,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 유리상자의 사랑해도 될까요, 이원진과 류금덕의 시작되는 연인을 위해, 모두가 그리운 노래들이며 그리워지는 노래들이다. 오히려 노래를 못해서 또 그리웠던 김구라와 신정환과 김국진의 라이브까지. 그건 확실히 작년과 같았던 그리운 시간이었다. 단, 음악들에 대해서는.

 

참 아쉬웠다. 작년의 기러기 밴드가 너무 좋았기에 기대하고 보았는데 - 솔직히 술마시고 늦게 들어오느라 오늘 새벽에야 다시보기로 볼 수 있었다. - 그러나 그 산만함이란. 그 메마름이란. 그리고 출연자의 매력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웃음도 뜬금없고 맥락없고. 딱 그냥 라디오스타 스타일이라.

 

뭐 좋기는 하다. 라디오스타만의 매력이란 것이니까. 다만 작년의 기러기밴드로 인해 기대치가 너무 높아졌다는 게 문제다. 좋지만 기대치가 너무 높아 만족스럽지 못하달까? 역시나 너무 착해서인지 자기주장을 제대로 하지 못해 병풍이 되어 버린 서현도 안타깝고. 또 한 번의 태연을 기대했었는데. 아쉬움만 컸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