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포세이돈 -긴장이 아닌 이완을 부르는 눈물, 힘빠지다!

까칠부 2011. 11. 2. 08:00

비극에도 여러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비극, 다른 하나는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비극이다. 분노는 공포로부터 비롯된다. 슬픈은 연민으로부터 비롯된다. 분노는 적의로 이어지고, 슬픔은 체념으로 이어진다. 긴장하며 다른 하나는 이완된다.

 

당연히 장르에 따라 비극의 선택도 달라져야 하다. 멜로드라마에서 상대에 대한 적의를 강조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비련의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슬픔에 빠져 있기 보다는 상대에 대한 적의를 불태우며 그를 향한 강한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장르가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스릴러에서 적에 의해 가까운 누군가 죽었는데 마냥 슬퍼만 하고 있다면?

 

하기는 그래서 김선우(최시원 분)는 아예 흑사회에 대한 수사 자체를 포기하려 하고 있었다. 벌써 14화 끝이 멀지 않은 상황에서. 슬픔이란 그렇게 사람을 힘빠지게 만든다. 연민하고 납득하며 순응한다. 그것이 슬픔이다. 죽은 이를 가엾어하고, 살아있는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그러면서 모든 것을 납득해 버리게 된다. 그것이 카타르시스다. 카타르시스란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과정일 것이다. 김선우 역시 그렇게 흑사회의 존재마저 순응하려 든다. 당연히 힘 빠진다.

 

김선우만 힘이 빠지는 것이 아니다. 보고 있는 입장에서도 힘이 빠진다. 원래는 이원탁(이상훈 분)을 죽인 흑사회와 정실장에 더 분노했어야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무참히 사람을 죽이는 흑사회의 잔인함을 두려워하며, 그러면서도 그들의 불의함에 분노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기회를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죽는 과정도 길었고, 김선우가 이원탁의 시체를 발견하고 슬퍼하는 과정 또한 지루하도록 길었다. 분노란 없이 오로지 슬픔만이 남게 된다. 김선우처럼. 흑사회에 대한 분노와 적의를 불러일으키고 극적 긴장을 고조시켰어야 할 사건이 그렇게 슬픔과 연민을 불러내고 체념적인 감정의 정화를 경험하게 만든다.

 

연출의 실패다. 아니 대본의 실패이기도 하다. 죽는 과정이 말했듯 너무 길었다. 흑사회 조직원의 허술함을 틈타 이동 도중 도망치고, 다시 도망친 사실을 오용갑(길용우 분)에게 전하고, 그리고 다시 잡혀 정실장(정호빈 분)의 말 한 마디로 그야말로 소리도 없이 죽고 만다. 죽는 과정이 생략되고 바로 김선우가 슬퍼하는 장면부터 길게 이어지고 있으니 그의 죽음에 대해 공포를 느끼거나 분노로 이어질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처음 이원탁의 가게로 흑사회 조직원들이 찾아갔을 때 시체조차 없이 사라졌더라면 느낌은 또 달라졌을 것이다. 애매한 것이 문제였다. 느리게 갈 것이면 그 죽음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하거나, 기왕에 죽는 과정 자체를 생략할 것이면 다른 생각이 들 여지 없이 간결하게 처리하거나. 이도 저도 아닌 것이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

 

도대체가 뭐 이리 허술한가. 그 흑사회다. 대한민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의 범죄조직마저 아우르려는 국제적인 범죄조직이다. 그런데 고작 여자 하나와 다 죽어가는 남자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놓친다. 묶어 놓았고, 눈까지 가려 놓았다. 숫자도 더 많다. 하지만 차 안에서 흑사회 조직원들은 너무나 쉽게 이수윤(이시영 분)과 이원탁에게 제압당한다. 그런 정도의 실력이라면 이원탁은 어떻게 흑사회에 잡히게 된 것일까? 정실장이 이사장과 통화하는 짧은 사이 그토록 엄중한 감시를 받던 이수윤과 이원탁은 탈출을 하고, 자신들이 탈출한 사실을 경찰에 전하기까지 한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이 드라마에 반전이란 없다. 아니 어쩌면 이야말로 가장 큰 반전을 향한 밑밥인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아직 그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수사 9과에 한 사람이 더 있기는 하지만, 그가 흑사회의 배후일 때 드라마의 극적 재미는 한층 배가될 것이다. 흑사회의 취지와 경찰을 농락하는 정보력에 비추어 가장 유력한 후보다. 새터민의 탈북자와 연결되기에는 아무래도 북한과 관련된 인사인 쪽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수윤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다른 수사 9과의 구성원들에게 그 사실을 전하는 것으로 보아, 더구나 흑사회의 정체만을 쫓던 블랙의 존재로 비추어 흑사회의 최희곤은 전혀 상관없는 누군가가 아닐까.

 

하여튼 이것도 참 재미없는 것이다. 아무런 충격도 반전도 없는 진실이라니. 그래도 그 전에 한 번 쯤은 수사 9과 내부의 스파이가 밝혀지며 반전을 시도할 것을 기대해 본다. 반전이 곧 스릴러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거나, 흑사회의 간부라고 머리에 붙이고 나온 누군가 최희곤이라고 밝혀진다고 해서 새삼 통쾌함이나 후련함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건 물에 물을 더하고 술에 술을 더하는 것이다. 소주에 소주를 만다고 소주 이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흑사회의 취지를 알 것 같다. 이이제이. 스스로 범죄조직을 만들어 밤의 세계의 공포로써 범죄조직을 다스린다. 국내 뿐만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까지 범죄조직들을 자신들의 지배 아래 두어 통제한다. 여기에 북한을 탈출한 새터민이 관계되어 있다. 강은철이 실망한 이유를 이제 납득한다. 강은철이 처음 생각한 흑사회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본에서 강은철이 실종되고, 그가 조사한 파일이 일본 해경을 통해 전달되고 있으니 강은철 또한 다시 드라마에 모습을 비추게 될까? 조금 더 일찍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권정률과 김선우의 개인플레이에 의존한 지금의 방식이라면 흑사회의 내부사정을 아는 배신자 강은철의 역할이 흥미로웠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래서 그나마 리얼리티라 하는 것일 게다. 아무리 그래도 같은 수사 9과인데 자기들끼리만 사실을 알고 주위를 배제한다면 주위의 입장에서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상황에서조차 여전히 감추려 든다면 소외감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어떤 반전이 숨어 있을 여지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럴 수만 있다면 처음 필자가 예상한 반전은 아니더라도 꽤나 흥미로운 전개가 될 수 있음을 예감할 수 있었다. 화내고 소리치고 뛰쳐나가고. 이것이 과연 하나의 팀인가. 더 이상 그들을 같은 팀이라 볼 수 있겠는가.

 

오죽하면 이수윤이 흑사회로부터 겨우 도망쳐 나와 연락을 하는데 유독 권정률과 김선우만은 빼 놓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가 권정률과 김선우를 의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의심은 무척 정당하다. 자기가 모르는 곳에서 강주민(장동직 분)은 흑사회의 조직원인 창길과 거래를 하고, 그것을 권정률과 김선우는 알고 있으면서도 방치한다. 누가 보더라도 상식적으로 권정률과 김선우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권정률과 김선우 두 사람의 다른 사람을 배제한 개인플레이가 결국 조직의 신뢰를 해치고 만 것이다. 이충식은 뛰쳐 나갔지만 이수윤은 이 둘을 자신의 팀에서 밀어내고 있다. 민폐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은 팀원을 믿지 못하고, 따라서 팀원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 권정률과 영웅주의에 빠져 주위를 무시하고 배제하려 드는 김선우의 독단이 빚어낸 결과다.

 

그래서 흥미로운 것이다. 대개 영웅물에서 영웅들이 개인플레이를 하게 되는 경우 주위는 오로지 그들을 우러르고 떠받들기 급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세이돈>은 다르다. 다만 그것이 오히려 극적 긴장을 해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안 좋은 리얼리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적인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장르에는 장르에 어울리는 재미가 있고, 좋은 드라마는 그 재미를 충실히 전하는 드라마다. 문제는 심각하다.

 

어쩌면 일주일 두 번 방영이라는 과도한 분량이 부담이 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월요일 화요일 이틀에 걸쳐 방송되는 분량을 하루 60분에 맞춘다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설마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작가는 드라마를 쓰지 않을 것이고, 제작진도 드라마를 만들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시원과 장동직의 연기가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들의 연기력 문제라기보다는 제반의 여건의 문제일 것이다. 모든 것이 급하고 허술하다.

 

전형적인 용두사미일 것이다. 시작은 그렇게 거창했는데. 소재도 좋았다. 몇 번을 반복해 만들었어도 매번 통하는 소재다. 경찰마저 위협하는 거대한 범죄조직과 그들에 맞서는 정의의 영웅들.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과 공포 아래 그들은 굳은 의지로써 그와 싸워나간다. 점차 밝혀지는 비밀과 더불어 모두를 놀라게 만드는 반전. 적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미 그와는 한참 먼 곳으로 가고 있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실망은 오히려 호기심이 된다. 과연 이 드라마는 어떻게 끝을 맺게 될까.

 

가장 최악이었다. 이원탁이 죽고 그 시체를 김선우가 발견하는 장면은. 아무리 봐도 그렇게 처리되어서는 안 되는 장면이었다. 더구나 그 뒤로도 너무 길게 끌고 있었다. 흑사회와 싸우려는 것인가, 흑사회의 악의 앞에 슬퍼하며 연민하려는 것인가.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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