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 훈민정음 창제의 의의...

까칠부 2011. 11. 3. 08:09

어쩌면 크게 역사적 맥락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훈민정음은 세종(한석규 분)이 직접 만들었다. 심지어 집현전 학자들조차 세종이 직접 훈민정음을 창제한 사실을 알리고서야 정음청이 설치되고 훈민정음의 반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을 세종이 만든 천지회라고 하는 비밀결사를 통해 비밀리에 창제된 것으로 재구성하고 있을 뿐. 어차피 이 또한 비밀결사로서 누구도 알지 못한다면 세종이 직접 만든 것은 그다지 틀린 것이 아니게 된다.

 

사실 드라마에서도 훈민정음 창제의 원리를 보다 강조해 보여주느라 상당히 거창하게 묘사되고 있을 뿐, 실제의 훈민정음 창제는 세종의 주도 아래 그의 자식들 몇몇과 함께 이루어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업이었다. 세종 자신의 성운에 대한 오랜 연구와 놀라운 직관에 의한 산물로써, 다만 그것을 실제 현실에 적용하는 문제에 있어서만은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성삼문(현우 분)도 극중에서 지적하고 있거니와 역사상 수많은 문자가 만들어지고 있었음에도 대부분 오래 쓰이지 못하고 사라진 것이 결국 그 쓰임이 현실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장에 이미 완성된 한자가 있다. 한자만 있으면 어지간하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거의 표현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나름대로 많은 연구를 거쳐서 만들어진 문자이겠지만 새로 만들어진 문자를 현실에 적용하는 데에는 그만큼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처음의 한자도 지금과 같지는 않았다. 알파벳 역시 지금처럼 널리 쓰이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오랜 경험의 축적이 필요했다. 먼저 자음이 만들어지고, 그리고 모음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통일된 표기체계를 갖추고, 오래된 문서를 보면 그래서 표기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해석하기 곤란한 경우도 적잖이 찾아보게 된다. 유럽에서 라틴어가 교양어로써 아주 최근까지 공용어처럼 통용되었던 이유였고, 중국의 한자가 동아시아의 한자문화권에서 공융문자로서 그 지위가 확고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완성된 체계가 있는데 아직 불완전한 새로운 체계에 의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의 각국에서 자국의 언어를 문자로 표기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이 그 공간을 라틴어가 대신 채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라틴어는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배워서 쓸 줄 알아야 하는 언어였다. 중국의 한자도 마찬가지였다. 한자문화권에서 한자는 당연한 상식이었다. 서로의 말을 몰라도 한자로서 서로의 뜻을 전하는 모습은 한자문화권에서는 매우 일상적인 것이었다. 국제어로서도 라틴어와 한자는 매우 유용하다. 그런데 굳이 불완전한 새로운 문자를 써야 할까?

 

그래서 한글을 기적과도 같은 문자라 하는 것이다. 불과 3년이었다. 1443년 창제를 발표하고, 1446년 비로소 전국에 반포하였다. 물론 훈민정음을 창제하기까지의 기간도 상당하기는 했지만, 그렇더라도 단 3년 동안의 테스트와 연구만으로도 이미 1446년 세종 28년 훈민정음이 반포되었을 당시 지금과 거의 유사한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말이 비록 많이 바뀌어 당시의 글을 읽어도 이해 못하는 것이 상당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표기법을 알지 못해서 헷갈리는 일은 없다. 그토록 천대받으면서도 훈민정음이 조선의 여성과 백성들 사이에서 생황문자로 널리 쓰일 수 있었던 이유였다. 기존의 문자들은 먼저 지식인 사이에서 쓰이고 일반인에게로 확산되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성공한 어쩌면 유일한 문자가 그래서 한글인 셈이다.

 

그러면 한글을 창제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래서 세종을 다시 최초의 계몽군주라 부른다. 계몽이란 백성을 올바로 일깨워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최소한 사람 말은 알아듣고 따를 수 있도록 함을 의미한다. 백성들에게 왕의 존재를 알린다. 그리고 왕의 명령을 전달한다. 스스로 왕에 귀속되어 있으며 국가에 귀속되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왕에게 충성을 바치고 국가에 헌신하도록 가르쳐 일깨운다. 그로부터 국민국가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국민이란 국가에 소속되어 국가를 위해 헌신하기에 국민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 국왕이 있다. 러시아 혁명 당시 러시아의 인민들에 의해 끌어내려진 니콜라이 2세도 계몽군주였다. 그는 러시아의 인민들로부터 아버지라 불리우고 있었다. 그러자면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유럽의 군주들은 그래서 라틴어를 버리고 모국어를 쓰기 시작했다. 영어로 대화하고, 영어로써 모든 공식문서를 쓰게 되고, 언어를 일치시킨다. 이전까지는 아예 모국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군주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들은 별개의 존재였으니까. 그러나 백성들에게 왕의 존재를 각인시키자면 그들과 먼저 언어로써 소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종에게 있어서도 한자는 라틴어와 같은 의미였다. 그리고 훈민정음은 조선의 모국어였다. 그래서 훈민정음이었다. 백성들을 일깨우는 바른 소리. 세종이 처음 훈민정음을 반포하며 함께 펴낸 것도 따라서 조선 건국의 정당성과 조선 왕실의 전통성을 강조한 <용비어천가>였다. 그 창제 의도를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이제 최소한 백성들에게 어째서 조선이고 어째서 조선의 군왕인지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조선이 동시대의 여러 다른 왕조들에 비해 상당이 오랜 무려 600년이나 이어질 수 있었던 또 한 원동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성들마저 어느새 조선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게 되었다. 조선과 조선의 국왕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당위에 공감하게 되었다. 조선 후기 민란이 일어났는데 정작 왕에 대한 충성은 변함이 없다며 지방관을 고이 말에 태워 보내주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런 예일 것이다. 동학농민운동 당시도 농민군은 근왕군을 자처하며 서울로의 진공을 추진했었다. 임진왜란과는 사뭇 다르게 구한말 의병은 어느새 농민 등의 백성 주도로 일어나고 있었다. 세금을 낮추어 주고 쌀을 나누어준다며 일본군의 편에 서서 조선군과 싸우던 임진왜란 당시의 모습과는 상당히 달라진 모습이었을 것이다. 지배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그러면 별로 재미없지 않은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이는 것이다. 훈민정음을 실제 창제한 것은 세종이지만, 그러나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는데는 그를 위한 거창한 공간이 있었을 것이다. 음운을 연구하기 위해 각각의 소리를 분류한 서랍과 그 안에 보관된 글과 그림들. 그리고 그를 위해 직접 백방으로 뛰어 다니며 연구한 학자들. 그리고 그 학자들은 세종을 위한 어떤 비밀결사에 몸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세종과 한몸이기에 그들은 세종 자신이다. 더구나 그렇게 만들어진 세종의 연구실은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설마 군나미욕(君那彌慾)이 설마 그 가운데 잇소리인 술(戌)을 뺀 나머지 네 가지였다니. 어금니소리(牙音), 혓소리(舌音), 입술소리(脣音), 목구멍소리(喉音), 잇소리(齒音)의 이 다섯가지야 말로 훈민정음해례가 밝히고 있는 자음의 형성원리였다. 한자의 뜻만을 보고 어쩌면 밀본과 관계된 내용이 아닌가 했었는데 제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다. 그러나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런 식의 트릭이라면 백만 번을 속아도 백만 번 다 기꺼우리라. 세종이 성삼문과 박팽년을 데리고 간 공간이야 말로 그가 창제한 훈민정음 그 자체였던 것이다.

 

아무튼 왕은 왕이었다. 세종은 왕이었다. 강채윤더러 그의 길을 가라 말할 때 왕 또한 자신의 길을 가리고 결심한다. 왕의 길은 누구보다 크고 넓고 당당한 길이다.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누구도 꺼려하지 않는다. 그는 지존 - 왕인 때문이다. 강채윤을 불러 그에게 밀본에 대해서 알린다. 강채윤의 복수심이 그토록 강하다면 이제까지 보여준 강채윤의 능력으로 보아 충분히 그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필요하다면 - 그래서 가능하다는 판단이 선다면 왕은 누구라도 이용한다. 성삼문과 박팽년에게도 더 이상 감추는 것 없이 훈민정음을 창제중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들의 역할을 요구한다. 만일 그래서 쓸모가 없다면 차라리 없애버리겠다 하는데 꺼리고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왕이 된 세종의 모습은 그래서 무모할 정도로 거침없고 당당하다. 그의 머릿속에는 과거 마방진을 풀 때 그러했듯 그의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위치가 하나하나 그려져 있을 것이다. 암중의 정기준과의 진정한 싸움이 이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강채윤 역시 정도광에 의해 잃어버렸던 아버지의 유서에 대한 단서를 찾는다. 어릴 적 세종에 의해 잠시 맡겨졌던 인연으로 반촌의 비밀에 대해 어느 정도 엿본 바 있었기에 누구보다 먼저 반촌과 반촌의 행수 도담댁(송옥숙 분)의 정체를 눈치채고 그에 접근해간다. 아버지의 유서에 대한 집착과 세종에 대한 복수의 의지가 그로 하여금 더욱 사건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도록 만든다. 그러면서 드러나는 가리온의 정체. 그는 과연 정도광인가? 조말생이 그의 정체를 눈치채고 강채윤이 그를 다그치며 잡는다. 그러나 과연...

 

확실히 어떠한 상황에서도 드라마는 역사적 맥락과 더불어 스릴러로서의 긴장과 반전을 결코 잊지 않는다. 집현전 부제학 남사철을 찾아온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 그동안 연쇄살인을 주도했던 밀본조차 그 정체를 알지 못한다. 그가 남긴 단서라고는 세종의 명을 받들지 말라는 협박편지와 백정 가리온(윤제문 분)의 칼이었다. 그러나 정작 강채윤(장혁 분)이 가리온에게 그와 같은 사실을 물었을 때 가리온은 도성 안에 백정이 자기 하나밖에 없는데 미치지 않은 이상 어찌 자기 칼로 그런 짓을 했겠는가 오히려 되묻는다. 단지 의금부에 잡혀가면 죽게 때문에 도망치는 것이라고. 과연 가리온은 밀본의 본원 정기준일 것인가?

 

의심스럽기는 하다. 어렸을 적 작은 재주를 자랑하다 오히려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참화를 겪었다. 그로 인해 소이(신세경 분)나 강채윤처럼 자책감에 잠 못 이루는 세월을 보냈다. 강채윤의 방을 뒤진 것도 수상하고, 더구나 남사철을 습격한 이가 남긴 칼이 그의 칼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직 끝날 때도 멀었는데 벌써 정기준의 정체가 드러나겠는가 하는 의심이 생겨난다. 오히려 의심스럽기 때문에 그 의심을 의심해야 하지 않을까?

 

가위바위보의 딜레마다. 상대가 '보'를 낸다고 했을 때 과연 그는 말처럼 '보'를 낼 것인가? 그래서 '보'를 이기려 '가위'를 내면 상대는 '주먹'으로 이길 것이다. '주먹'을 예상하고 '보'를 내려 하면 설마 그것도 예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코 어둠속의 주재자가 이처럼 쉽게 모습을 드러낼리는 없다. 그것은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 충격과 반전과 함께 사람들에게 보여질 것이다. 지금은 너무 이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 또한 트릭이 아닐까?

 

이중의 트릭을 예상해 본다. 가리온은 어쩌면 정기준일 것이다. 하지만 남사철을 습격한 것은 가리온이 아니다. 우연의 일치가 가리온을 그 범인으로 가리키게 되고, 그것이 오히려 가리온을 용의선상에서 제외하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남사철을 습격한 괴한은 누구였을까? 그것은 남사철 자신의 자작극이 아니었을까? 밀본도 아니고 세종도 아니고 강채윤도 아니라면 남은 것은 남사철 자신 뿐이다. 조말생 역시 당연히 아니다. 그도 아니면 정기준은 여전히 가까운 어딘가에서 가리온이 의심받는 상황마저 지켜보고 있거나. 궁금증애 벌써 애가 닳아 온다.

 

어쨌거나 설마 의외였다. 설마 태평관의 서반 견적희(윤이나 분)가 여성이 아닌 환관이었다. 태평관의 명나라 사신 기제연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심종수(한상진 분)의 뒤를 쫓는 그는 다름아닌 창위의 첩형이라고. 첩형이라면 창위 가운데서도 당시는 아직 성화제가 즉위하기 전이니 동창의 제독 아래 2인자의 관직 이름일 것이다. 어째서 동창의 첩형이 멀리 조선까지 와 있는가는 차치하더라도 동창이라면 영락제가 설치한 대내감찰기구로써 그 구성원은 거의가 환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독 바로 아래인 첩형이라면 당연히 말할 것도 없다.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인가 자못 흥미롭다. 여장을 한 환관이라니. 그러나 러브라인을 만들기에는 심종수의 캐릭터가 너무 재미없다.

 

밀본을 찾아내 발본색원하려는 조말생(이재용 분)과 밀본이었던 자신을 지우려는 이신적(안석환 분), 왕 세종은 밀본과의 정면승부를 선택하고, 강채윤은 그의 선봉에서 집념과 결심으로 밀본을 바짝 뒤쫓는다. 여전히 심종수를 전면에 내세운 채 밀본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다. 그런 가운데 훈민정음의 창제를 둘러싼 성삼문과 박팽년의 혼란. 성삼문이 더 이상 강채윤과 더불어 살인범을 쫓기를 그만둔 것은 그의 갈 길을 정한 것이다. 물론 이대로 끝날 것이라는 생각은 않는다.

 

다시 보아도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불근 비단의 휘장이 내려지고 각각의 음운을 나타내는 명패가 달린 서랍들이 모습을 나타냈을 때, 그리고 그 안에 보관되어 있는 그림들과. 비록 픽션이더라도 훈민정음이란 이렇게 만들어졌구나.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극적이며 감동적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한글로써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지금 이 순간에도 쓰고 있는 그것이다.

 

첩첩이 비밀이 쌓여간다. 비밀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며 새로운 비밀을 더한다. 풀리는 듯 더욱 꼬여가는 가운데 더욱 보는 이로 하여금 안달나게 만든다. 다음은? 이 다음은? 마지막 나오는 '내일 9시 55분에...'는 좌절일 것이고, 이어 보여지는 예고편은 그나마의 희망일 것이다. 기대마저 더해간다. 이 순간에도 고민한다. 과연 가리온은 정기준일 것인가? 설마 가리온이 정기준일 것인가? 도저히 헤어나지 못한다. 중독이다. 대단한 드라마다. 말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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