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니콜의 눈물과 박재범...

까칠부 2009. 12. 31. 13:12

이제는 지난 이야기지만 내가 2PM의 박재범 사태에서 가장 어이없고 화가 났던 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외국인이면 한국에 맞춰 살려 노력했어야지..."

 

사실 그게 핵심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아직 어린 나이다. 당시 아직 10대였을 텐데, 한창 부모에게 기대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 나이다. 그런데 생전 와보지도 않던, 한 번 오고가기도 부담스러운 먼 바다건너에서 홀로 떨어져 생활하게 되었으니. 먹는 것도 다르고 하는 것도 다르고 생활습관이며 모든 것이 다르고 생경한 곳에서.

 

그것은 불만이라기보다는 불안이다. 혐오라기보다는 공포다. 과연 어찌해야 하는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박진영이 당시의 박재범에 대해 말할 때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귀엽군."

 

박진영의 곡만 아니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진심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불안하고 두렵기에 약간의 허세로써 그리 튕겨 본 것이라.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거든. 겉으로 까칠한 친구들이 속이 참 여리다.

 

욕이야 당연히 할 수도 있다. 아니 욕 나온다. 하다못해 항상 함께하던 친구와 반이 갈려 만나지 못하게 되도 서로 만나면 이런저런 험담에 수다에 바쁘다. 살던 환경이 거칠었다면 말하는 것도 조금 더 거칠 수 있는 거고. 그런 정도야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자기가 원해서 왔으면 알아서 적응해 살아갔어야지 왜 그것 가지고 투덜거리고 그러느냐?"

 

물론 일견 옳아 보이기도 한다. 내가 원해 미국이든 일본이든 갔으면 거기에 맞춰 적응하며 살아가는 게 옳겠지. 그러나 그건 내 입장이고 나를 대하는 상대의 입장이란? 그 나라 사람들의 입장이란?

 

얼마전 무한도전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왜 영어도 못하면서 미국 가서 망신을 사느냐는 캐나다 교포의 일강이 있었고 그로 인해 꽤 시끄러웠었다. 그러나 나는 - 아니 많은 사람들은 거기서 영어를 전혀 엉터리로 하고 있음에도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고 이해하려던 뉴욕시민들의 모습을 보았다. 어떻던가?

 

물론 내가 해당 국가에 가서 맞춰 적응해 살아가야 하는 건 옳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아직 생소하고 생경하기에 그 나라 사람들도 새로운 이웃에 맞춰 배려해주는 정도는 필요하다. 사실 그것은 세계적으로도 보편적인 상식이다. 도저히 적응못해 돌아가야겠다 투덜거릴 때도 최소한 어깨를 두드려주는 온정은 기본이라는 거다.

 

박재범의 경우가 그랬다. 그가 그리 거친 말투로 불안과 두려움을 표출하고 있었다면 오히려 더 보듬어줄 수 있었어야 했다.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이해한다고. 설사 도저히 힘들어 언젠가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더라도 그 동안에는 함께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고. 그것이 설사 외국인에 대한 주인된 도리일 것이다. 그런데도,

 

"적응 못한 네 잘못이지!"

 

이 얼마나 오만한 이기인가? 하긴 그 바로 전에 있었던 베라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왜 독일인이 한국사회에 맞춰 살지 않고 자기 식대로 보고 판단하는가?"

 

아마 세계최강대국이라는 미국도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고 과연 고대로마사회에서 외국인에 대해 그렇게 로마인이 되기를 강요했을까? 누가 보면 한국이야 말로 세계표준이고, 모두가 맞춰주어야 하는 기준인 줄 알겠다.

 

외국인 아니던가? 외국인임을 전제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서툰 게 당연한 거다. 모르는 게 당연한 거다. 그만큼 맞지 않는 것도 있고. 처음 만난 친구나 연인에게 벌써부터 나를 이해하고 맞춰달라 요구하는가?

 

그 편협한 이기에 화가 났던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지금도 박진영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분명 재범이는 잘못을 했다."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잘못한 게 없다. 그런 정도는 누구나 하는 것들이다. 단지 차이라면 그런 작은 실수조차도 용납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속좁음과 편협함이다. 당연히 그럴 수 있음에도 오로지 자기에게 맞춰주기를 바라는 유아적인 이기다.

 

앞서도 비유했지만 친구를 처음 사귀면서는 서로 모르는 게 많다. 연인도 마찬가지다. 그런 때 몰라서 저지르는 실수들에 어찌 대하는가? 몰라서 생소해서 저지르는 많은 오류들에 일일이 화내고 하는가? 보통 그런 사람들에 대해 무어라 하는가? 바로 그것.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이다. 사람으로서의 도리이고.

 

니콜이 눈물을 흘리더라는 기사를 읽으면서 그래서 박재범을 떠올렸다. 전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한국사회의 유아적인 편협함과 속좁음으로 인해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떠나야 했던. 박재범 역시 니콜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기에. 박재범 또한 그리 처음 와서는 눈물을 흘리고 했다던가?

 

그때처럼 어이없고 화난 때가 없었다. 그것도 연예인 관련해서. 그래봐야 한 개인에 불과한 터라. 무어라 해도 그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란 무리였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떠나고 떠나고 나니 또 비난이 쏟아지고.

 

다시 한 번 그 어려운 시절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버텨준 니콜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또 철저히 이방인이 되어 내쫓겨야 했던 박재범에게도 마음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가실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떻게 되더라도 지금의 상처가 앙금이 되어 그를 다치게 하지 않기를.

 

지금도 이 땅에서 온갖 편견과 차별 속에 어떻게든 버티며 적응해 살려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도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그래도 살만한 나라다. 그런 어이없는 것들만 제외하면.

 

내가 한국이라는 나라가 강대국이 아님을 이렇게까지 고마워해 본 적이 없다. 진심으로 그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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