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악플러란...

까칠부 2010. 1. 5. 07:34

어디서 보았는가는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참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주인공인가가 믿고 있던 부하에게 배신당하고 죽음의 위기에 놓여 있을 때였다.

 

"네... 네가!"

"대인께서는 영웅이십니다. 저따위와는 감히 비교도 안 되게 훌륭한 분이시죠."

"그런데?"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대인께 제가 해드릴 일은 없는가. 많이 고민했죠.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다른 건 못해도 대인을 죽일 수는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런 짓을...?"

"그러면 저같은 소인배라도 대인같은 영웅께 무언가 남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확한가는 모른다. 솔직히 대략적인 내용밖에는 기억나지 않으니까.

 

악플러의 심리라는 것이다. 악플러란 한 마디로 열등감의 덩어리들이다. 열등감에 찌든 나머지 그것이 체화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이 열등감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기 쉬운가?

 

그래서 그들은 그 열등감을 해소할 무언가를 찾게 된다. 그들의 열등감을 대신할 수 있는 더욱 열등한 누구이거나, 아니면 그들의 열등감을 지워버릴 수 있는 더 대단한 누군가이거나.

 

예를 들어 얼마전 있었던 노숙자에 대한 폭행이 그런 예다. 자신에 비해 열등하잖은가? 하찮아 보이고. 그래서 스스럼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최소한 그에 비해 자신이 우월함을 입증하려고. 굳이 필요도 없는 무력하게 맞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상대의 모습에서 그 순간만큼은 열등감을 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소외된 녀석들일수록 거칠고 또 잔인해지는 것은 그래서다. 아마 몇 년 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선천적인 장애로 수업을 빠지고 하던 동급생을 폭행해 죽인 학생의 이야기가. 더 약한 누군가, 더 무기력한 누군가,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시켜줄 누군가,

 

그러나 한 편으로 그들은 자신들을 열등감에 빠뜨린 누군가를 증오하게 된다. 더 잘나고, 더 훌륭하고, 유명한 누군가, 그런 이들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또한 만족을 얻게 된다.

 

"나로 인해 저들이 저리 고통을 당하고 있구나."

 

물론 그냥은 안 된다. 첫째 괜히 힘있는 누군가를 건드렸다가는 자기에게 피해가 올 수 있으니까. 그들의 일상화되고 체화된 열등감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안다. 역시 그래도 만만한 누군가여야 한다. 내가 공격해도 감히 반박하거나 반격할 수 없는.

 

더구나 그것이 정의로울 수 있으면 좋다. 그냥 상대를 공격해서 곤란하게 만드는 것만이 아닌 그로써 자신의 우월함을 - 즉 정의롭고 도덕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면.

 

인지의 부조화라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런 공격성이 얼마나 비열한 것인가를. 그러나 그들의 열등감은 그런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 위로하게 된다.

 

"이건 정의야!"

"이건 당위야!"

"이건 선의에 의한 것이야!"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행동에서 거리낌이나 망설임을 지워버린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게 곧 정의인데.

 

그래서 그들은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 타겟을 물색한다. 약점을 내보이고 있는, 그러나 대단한 대상을. 그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해야 한다. 자신의 업적을 많은 이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물론 그들에게 그 약점이 사실인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그러한 약점을 공격할 주제나 되는가나, 그 수단이 정당한가에 대해서도 전혀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한 가지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정의로써 그를 공격하여 그를 훼손하고 마침내 몰락시켜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할 수 있는가.

 

그런 점에서 연예인이란 악플러들의 가장 훌륭한 먹잇감이다. 일단 인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주목한다. 무엇보다 자신들보다 훨씬 우월한 존재다.

 

실제 악플러들은 인기없고 하면 잘 달려들지 않는다. 같은 잘못을 저질렀어도 - 아니 더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인기가 없으면 굳이 무어라 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공인이다.

 

공인이란 다시 말해 악플러들이 악플을 달만한 가치가 있는가의 여부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의 선의를 과시하고, 자신들의 우월함을 더 많은 사람들을 통해 확인할. 그를 상처입힘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그래서 그들은 그런 인기연예인들의 작은 약점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승냥이떼가 상처입은 짐승을 놓치지 않듯 그들은 그런 연예인을 쫓아 끝까지 물어뜯는다. 상처입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자, 그리고 그런 모습을 확인했기에, 그래서 더 물어뜯어 마침내 그를 통해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코자.

 

박재범이 미국으로 떠났을 때 그들이 오히려 패닉상태에 놓였던 것은 그래서였다. 더 물어뜯어야 했거든. 더 괴로워해야 했다. 더 상처받아야 했고 더 고통스러워야 했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정의롭고 얼마나 대단한가를 사람들에게 확인시켜주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냥 훌쩍 미국으로 가버렸으니... 그래서 그 뒤로는 그들은 혼란 속에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흩어져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하고 있었다. 말했듯 이유란 처음부터 그들에게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물어뜯고, 물어뜯음으로써 자신의 열등감을 배설할 수 있는 그런 먹잇감이 필요했을 뿐.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 스스로 믿기에 - 너무나도 순수한 선의와 정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적대적이다. 아니 그래서 더욱 우월감을 느끼며 그들을 상대하게 된다. 선지자 컴플렉스라는 것이다.

 

"아버지, 저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 모르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그런 더 많은 다수란 자신이 계몽시켜야 할 무지한 대중에 불과하다. 그는 일찌감치 깨달은 선지자이며, 남다른 정의와 선의로써 그들을 일깨워야 할 존재다. 그리고 역시 그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지지하고 있는 더 유명하고 대단한 누군가인 것이고.

 

어디서나 보는 모습이다. 마치 계몽하듯 반복해 특정인에 대한 약점을 올리고, 그것을 비난하고,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대단한 선의인 양. 대단한 정의인 양.

 

그런 것이다. 악플러란. 그래서 악플러에 대해서는 논리란 통하지 않는다. 논쟁이란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면 그들의 선의와 정의란, 그리고 그들의 그러한 우월감이란,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그들의 자아를 덮어씌우고 있는 얇은 한 겹의 껍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공갈빵처럼 그것들을 걷어냈을 때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그들의 열등감이 드러나리라. 과연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서 더 우기고, 더 악착같이 굴고, 더 난폭하고 고약하게 구는 것이 바로 악플러라는 것들이다. 오히려 그들이 잘못일 수 있기에 더 공격적으로 변하는.

 

그래서 악플러를 설득한다는 자체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적당히 그들의 주장을 들어주며 어르고 달래고? 오히려 기나 살려줄 뿐이다.

 

사람들이 곧잘 착각하는 것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정의와 선의에 현혹되어 흔히 생각한다.

 

"아, 이들도 나름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구나."

"논리적으로 설득한다면 말이 통하겠구나."

 

그러나 말했듯 그들의 목적은 한 가지, 물어뜯고 또 물어뜯어서, 스스로 생각하는 어떠한 대단한 피로써 자신의 우월함을 입증하는 것 뿐이다. 그 앞에 말로 설득하려는 것이란, 심지어 섣부르게 그들의 주장을 인정하는 것이란 그들의 기나 키워줄 뿐이다. 그래서 더욱 사남고 난폭하게.

 

가장 좋은 것은 무시하는 것. 그래도 도저히 안되겠거든 법도 좋은데 그냥 신고하는 게 좋다. 상대해봐야 피곤하니. 공자께서도 말씀하셨다.

 

"소인배는 상종할 바가 못되느니라."

 

맹자도 말씀하셨다.

 

"자기를 내버린 놈들과는 감히 이야기 할 바가 못되느니라."

 

자기 자신을 포기한 소인배들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쓰레기. 그것도 재활용도 안되는 악성폐기물.

 

그냥 이 사회가 만들어낸 잉여라 보면 되겠다. 열등감을 강요하는 이 사회가 만들어낸 찌꺼기랄까? 괜하게 남아 어디 쓰지도 못하고 처치도 곤란한. 근본적인 대책은 역시 교육부터겠지만. 그건 너무 멀고.

 

인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말이 통하는 상대다...? 결코 아니다. 말로 통할 거면 그들을 악플러라 하지 않는다. 아무리 말이 논리적이고 주장이 정중하고 합리적이어도 그들은 그냥 쓰레기. 잉여. 폐기물.

 

다만 안쓰럽다면 그런 쓰레기, 잉여, 폐기물들에도 결국에 상처입고 마는 이들이 있더라는 것. 그로부터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기를 더욱 살려주며. 분명 쓰레기이고 악성 폐기물일 텐데도 도리어 그로 인해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그래서 더욱 비타협으로 대해야 하겠다. 관용이 아닌 불관용으로써, 악플러에 관용하는 것처럼 세상에 쓰잘데 없는 짓거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이해하고. 그들은 쓰레기일 뿐이라. 악성폐기물이라. 인간이 아니라.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공격하기보다는 그들로부터 공격당하는 이들을 보듬고 위로하고. 전혀 그들의 선의나 정의는 무시한 채 피해자들이 더 이상 아파하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도록.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 현실이야 말로 그들로 하여금 열등감을 스스로 드러내도록 할 터이니.

 

아무리 못나고 못됐어도 악플러보다는 낫다.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어도 그것을 먹잇감삼는 악플러보다는 낫다. 그 점을 명심하고. 세상에 가장 쓰잘데기 업는 것이 악플러나 옹호하는 오지랖이라고.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상식이어야 할 테지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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