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심야병원 - 너무 친절해서 궁금해 할 틈조차 없다.

까칠부 2011. 11. 20. 18:58

드라마라는 것이 무언가 아쉽고 안타까운 맛이 있어야 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혹시나 이랬으면, 어쩌면 그랬더라면, 그래서 더욱 궁금해 보게 된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그 끝을 기다려 보게 된다. 하물며 스릴러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동방파라고 하는 거대폭력조직이다. 어느 한 개인이 맞서 상대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다. 새삼 동방파 보스 구동만(최정우 분)과 최광국(김희원 분)의 인내심에 감탄하게 된다. 그만한 조직을 일구는게 보통의 인내와 계산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고작해야 의사 하나 날뛰는 정도 안중에도 없다. 아니라면 벌써 허준(윤태영 분)은 죽었다.

 

물론 일견 통쾌하기도 하다. 그만한 폭력조직 앞에 할 말 다 하고, 싸움 걸 것 다 걸고, 더구나 싸움도 잘한다. 뒤에서 동방파를 크게 한 방 먹여줄 준비도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래서야 마지막 순간 모든 갈등과 긴장이 해소되었을 때 그 짜릿함과 통쾌함을 미리 가불받아 즐기는 모양새라 할 수 있다. 그동안 하나도 아쉬운 것도 안타까운 것도 없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며 지냈는데 모든 것이 마침내 해결되었다고 더 기쁘고 후련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 또한 나름대로 해피엔딩이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강렬하게 다음을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늘 그렇다. 그나마 홍나경(류현경 분)의 경우는 원래 그런 캐릭터다. 그래도 좋은 캐릭터다. 그녀만은 빛의 세계에 아직 발을 담그고 있다. 그에 비하면 살벌한 어둠을 살아가는 캐릭터치고 허준은 너무 정직하다. 윤상호(유연석 분) 또한 너무 쉽게 자신을 드러낸다. 궁금해 할 여지조차 없다. 이번에도 윤상호의 오랜 친구가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냈음에도 무언가 궁금한 것이 생겨나기도 전에 미리 알아서 모든 것을 풀어 설명해주고 있다.

 

윤상호의 친구 권대웅이 남긴 동영상은 차라리 보여주지 않느니만 못했다. 윤상호의 친구 재범이 권대웅이 남긴 물건들을 찾다가 우연히 어떤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의문의 실종을 당하고 그 순간 최광국은 허준에게 그의 아내를 죽은 범인으로 그 권대웅을 지목한다. 충분히 시청자로 하여금 권대웅을 범인으로 여기도록 함으로써 애초 의도했던 엇갈림과 반전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광미(배슬기 분)와 권대웅의 관계는 같은 병원에 일하고 있는 입장에서 긴장을 더할 것이고, 윤상호와 권대웅이 친구였다고 하는 사실은 갈등을 더욱 깊게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전혀 잘못 판단하고 오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반전의 여지도 커진다.

 

그런데 그것을 미리 까발려 버리고 만 것이다. 그것도 최광국의 입을 빌어 권대웅이 범인임이 밝혀지려는 순간에. 오해와 착각은 스릴러를 즐기는 입장에서 누리는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한참을 작가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 전혀 엉뚱한 곳을 헤매다가 마침내 그 진실을 맞이함으로써 반전에 성공하고 만다. 그런데 정작 최광국이 유력한 용의자로 권대웅을 지목하려는 순간 권대웅 자신의 입을 빌어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이 또한 하나의 트릭이며 반전을 이루는 것일까? 실제로는 권대웅이 범인인데 단지 그 추궁을 피하기 위해 친구들에 거짓말을 한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면 너무 치졸하다. 그것은 전혀 엉뚱하게 친구인 재범과 윤상호를 끌어들이려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재범이 나타나 윤상호와 다투는 자체가 드라마의 중심에서 벗어난 사족스러운 느낌인데, 이조차 단지 트릭을 위한 트릭이고 반전을 위한 반전이라니.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권대웅이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불필요하게 상황을 꼰다.

 

비밀은 많지만 사실상 지금에 이르면 전혀 궁금해 할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다. 미리 다 터뜨려 놓았기 때문이다. 감추는 게 없다. 억누르는 것도 없다. 허준의 표정은 너무나 노골적이다. 동방파 역시 지나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궁급해 할 여지조차 없이 알아서 가져다 대령해준다. 지금은 그저 끝이 어떻게 되나 막연히 습관처럼 기다리고 있을까? 감추는 방법이 서툰 때문이다. 인내심이 부족하다. 허준이나 제작진 자신이나.

 

기왕에 제목이 심야병원이고, 구동만과 아내의 죽음과 관련한 동영상을 가지고 거래를 했고, 그래서 병원을 맡아 운영하며 구동만의 수술을 기다린다. 조금 더 차분히 많은 것들을 비밀로 남겨놓은 채, 허준 자신의 행동마저 억제한 상태에서 누르고 참는 지혜를 보일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시청자가 궁금해 미치게 만든 채로, 시청자 자신이 분노하여 도저히 참지 못하게 만들고는 그것을 한 순간에 터뜨린다. 그것이 클라이막스다. 그것이 지금으로서는 없다.

 

허준을 연기하는 윤태영의 연기는 확실히 넘친다. 너무 힘이 들어가 있다. 멋있기도 하지만 역시 지레 힘을 빼는 역할을 한다. 순간순간 무르익지 않은 감정이 표출되며 더 이상의 기대를 알아서 제거해 버린다. 하긴 순간을 즐기는 드라마도 좋을 것이다. 클라이막스는 어쩌면 구시대적이다. 그것을 진부하다 여기며 이처럼 일부러 연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문제다. 궁금하지 않다. 아쉽지도 안타깝지도 않다. 안달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친절한 때문이다. 그냥 보면 된다. 그래서 그저 편하다. 스릴러가 편하다는 것은 스릴러가 아니라는 뜻이다. 멜로도 아니고, 시트콤은 더 아니다. 의학드라마도 당연히 아니다. 그것이 궁금하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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