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시하라 사토미가 반가웠다. 에이타도 반가웠고. 그리고 하필 대학 법의학과인가? 검시라는 과정을 통해 범인을 추적하는 흔하디 흔한 추리물이라 처음 선입견을 가졌다. 나는 선입견을 최대한 피해기 위해 어지간해서는 드라마에 대한 사전정보를 모으지 않는다.
그런데 전혀 달랐다. 죽은 이의 목소리를 듣는다. <싸인>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많은 법의학을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 만화, 드라마에서 하나같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은 진정 죽은 이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 것인가? 아니면 살아있는 사람이 범인을 잡고자 하는 것이었는가?
하지만 일본드라마 <보이스>는 그 방향을 달리 하고 있었다. 이 드라마에는 흉악한 살인사건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혐오스러운 범인 또한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죽은 이와 그 죽은 이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풋내기 법의학자 네 대학생들만이 나온다. 물론 시체해부는 이들의 전문영역이 아니다. 전문적인 분석 또한 이들은 아직 애송이에 불과하다. 대신 그들에게는 진심과 열정이, 그리고 발로 뛰어다니려는 의지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드라마는 죽은 이의 몸을 해부하여 그 사인을 밝히는 드라마가 아니다. 죽은 이의 행적을 해부하여 죽은 이가 과연 어떠한 이유로 어떠한 이야기를 남겼는가를 추적한다. 검시는 교수인 사가와의 몫이고, 분석은 교수 카부라기의 몫이다. 대신 학생들은 죽은 사람의 주위에 묻고 사소한 단서를 추적하여 죽은 사람의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낸다. 어떻게 죽었고 어떤 심정으로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있는가?
내가 <소년탐정 김전일>보다 <코난>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난>보다는 <Q.E.D>를 더 좋아한다. 과연 일상의 논리나 추리라고 하는 것이 반드시 흉악범을 잡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인가? 일상에서도 논리적인 사고와 추리가 필요한 부분은 얼마든지 있다. 그다지 자극적인 사건이 아니고서도 인간의 지성으로 추적하여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란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널려 있다. 하물며 <보이스>는 사건조차 없다. 단지 죽은 이들이 남긴 간절한 마음과 이야기만 있을 뿐. 무척 좋다.
말하자면 냉철한 지성을 통해 이르는 따뜻한 감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기는 그들이 그토록 죽은 이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자체도 인간 본연의 따뜻한 감성에서 출발한 것일 터다. 죽은 이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것을 산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 그래서 굳이 먼 길을 자비로 적지 않은 시간마저 들이며 오가며 사실을 듣고 진실을 추적하여 마침내 알아내어 전한다. 어떤 댓가가 있어서도 아닌 단지 그래야 하기 때문에. 당위다. 가장 순수한 도덕적 이성이 쫓는 가장 강력한 도덕적 책임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대학생들은 순수하다. 심지어 오로지 법의학만이 전부라며 공부벌레인 양 처음 오해를 불러일으키던 쿠보아키 카나코조차 동기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스스럼없이 무너지며 또래다운 순수함과 허술함을 내비친다. 그 어떤 이해나 강요도 아닌 순수한 도덕적 책임에 의해 죽은 자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하는 그들의 열정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유쾌하게 보여진다. 상당부분 일본드라마 특유의 짜여진 구조에 의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드라마는 또한 일본드라마 특유의 정제된 따뜻함으로 보는 이를 감싼다.
<싸인>이 과연 이러했다면. 사실 나쁜 놈 하나 설정하고 그것 때려잡는 이야기는 무척 쉽다. 간단하다. 저놈이 나쁜 놈이다. 저놈이 죽일 놈이다. 하지만 죽일 놈 하나 없이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 악인이 없다. 조금 곤란한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같이 선량한 보통의 사람들이다. 그들이 죽은이를 통해 하나로 만나게 된다. 누구나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죽음이라는 섬뜩하지만 따뜻한 소재를 통해 담담하게 들려진다. 쉽지 않지만 그런 느낌조차 없이 당연하게 보여진다.
에이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는 언페어에서 에이타는 악역 또한 훌륭히 소화해내고 있었다. 악역임에도 따뜻한 느낌이라는 것은 에이타만의 장점일 것이다. 상당히 이성적으로, 그러면서도 감성적인 연기를 훌륭히 소화해낸다. 조금은 멍하고, 괜한 것을 따져묻는 곤란한 성격에, 한 번 집중하면 다른 것을 보지 않는 집요한 행동력마저 보인다.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그의 직관. 지금까지 일본 추리물을 통해 보아왔던 그 어떤 탐정보다도 매력적인 탐정주인공이다. 장기시리즈로 한 번 보았으면.
정말 탐나는 드라마였다. 우리나라에서였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또 일본에서 이런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일본 특유의 절제하는 문화가 중요하게 작용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였다면 유족들이 울고불고 악다구니를 쓰느라 냉정한 판단 자체가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다. 학생들 역시 지나치게 죽은 사람에 자신을 이입함으로써 더욱 이성적인 추리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싸인>에서도 주인공들은 그러한 성향을 보이고 있었다. 아니면 지나치게 냉정하고 인정머리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서가 아닌 죽은 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해부와 추리란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일본드라마였다. 일본이니까 만들어질 수 있는 드라마였다. 한국이라면 다르다. 한국은 눈물이 진하다. 울음소리가 더욱 구슬프다. 그래도 어떻게 우리식으로 한 번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그러한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면. <별순검>과 같은 스타일로 추구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아니면 조선의 혜민서가 배경이면 그것도 재미있을까? 의녀와 그리고 포도청의 군관과.
자극성이 없어 좋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카페오레의 느낌이다. 달착한 맛은 청춘드라마 다운 순수한 열정과 고민과 사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씁쓸한 것은 그것이 죽음이라는 피하고 싶은 소재인 때문일 것이고. 부드럽고 향기로운 것은 그럼에도 인간의 순수한 도덕적 감성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하필 내가 일본드라마를 보지 않기 시작했을 때 나온 드라마라서. 진작에 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정말 아쉽다.
우연히 발견해서 전혀 생각없이 보기 시작했다가 그야말로 숨도 쉬지 않고 끝까지 다 보고 말았다. 이시하라 사토미가 반가웠고, 에이타가 또 반가웠고, 그러나 드라마가 시작되고는 그런 것조차 없었다. 이런 드라마를 좋아한다. 조금은 샘이 나려 한다. 좋은 드라마다. 이래서 일본드라마를 본다. 보람이 있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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