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옴니버스 방식이란 매 에피소드마자 조금씩 성취감을 쌓아가는 것일 터다. 작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는 기쁨을 공유한다. 매회 작은 기쁨이 쌓여 큰 기쁨이 되고, 그것이 클라이막스에서 희열이 되어 터져나온다. 드라마란 즐겁자고 보는 것이다.
물론 모르겠다. 이제 <영광의 재인>도 끝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마지막으로 바짝 당기려는 것인지. 여은주(장영남 분)가 깨어나고, 윤재인(박민영 분)이 진실을 알게 되고, 그래서 서재명(손창민 분)에게 한 방 먹이려는데 그냥 끝내면 너무 싱거우니 잠시 누르고 당겨서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과연 지금껏 한 번이라도 즐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특히 서재명과의 대결에서 김영광(천정명 분)의 어거지성 내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연전연패였다. 아주 작은 상채기조차 단 한 번도 입히지 못했다. 당연하다. 아무런 계획이 없었으니까. 계획도 없고, 준비도 없고, 그저 한 가지 서재명에 대한 증오 뿐이다. 훨씬 불리한 상황에서 단지 감정에만 의지해 달려드는데 어떻게 작은 성취나마 얻을 수 있겠는가?
윤재인과 김영광이 주인공인 이유가 있었다. 둘 다 똑같다. 설마 윤재인이 서재명의 속을 떠봤을 때 무언가 뒤로 생각하는 것이 있지 않겠는가. 없었다. 그저 김영광의 국수가게가 필요했을 뿐이었고, 그래서 여은주의 필사적인 노력마저 윤재인은 그저 무의미한 발버둥으로 만들고 말았다. 윤재인이 그렇게 쉽게 동의서에 사인을 해주지 않았다면 여은주가 그렇게 무리해가며 이사회에 나타나고, 그럼에도 의도가 좌절된 끝에 모욕까지 당하고 다시 혼수상태에 빠질 일이 있었을까?
하기는 윤재인이 여은주의 딸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여은주 역시 아무 계획없이 이사회에 난입한 것은 마찬가지니까. 그래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원망하고 분노하고 눈을 부라리다 악을 쓰고 끝내 다시 쓰러져 버리고. 물론 아직 몸을 가누기도 쉽지 않은 여은주의 입장에서 이것저것 재고 판단할 여력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오히려 나쁘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책 없이 여은주를 무작정 이사회에 난입케 사주한 서인철(박성웅 분)일 것이다. 아예 생각이 없었거나, 아니면 그조차 고려해서 여은주와 윤재인을 버리는 말로 썼거나.
결국은 그래서 좌절만 쌓여간다. 윤재인에게 무언가 계산이 있겠거니. 여은주가 깨어났으니 여은주를 통해 무언가 이루어지겠거니. 여은주와 서인철이 만났으니 그것으로 무언가 서재명에게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은주의 필사적인 발버둥조차 서재명의 몸에서 피를 보고 마는 단순한 테러로 끝나고 말 뿐이다. 후련한 것은 없이 질척거리며 기분나쁘다. 서재명은 깔끔학 승리를 쌓아가는데, 윤재인은 지저분하게 패배만 쌓아간다.
아마 이 드라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을 기분나쁘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이 드라마는 성취감을 쌓아가지 않는다. 기쁨이나 즐거움을 누적시키지 않는다. 대신 실망과 좌절만을 누적시킨다. 패배감만을 더해간다. 그 끝에 무엇을 보여주려 그러는 것인지.
이제까지 준비한 패들이 모두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여은주는 기껏 이사회장에 나타났어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윤재인은 오히려 그런 상황에 한 팔 거들고 있고, 그러면서 자기를 위해 열심히 마음써준 서인우(이상우 분)에 대해서는 매몰차다. 김영광이 도대체 윤재인을 위해 해주는 일이 무엇일까? 그저 열심히 서로 함께 열을 올리는 것? 그래서 화난다고 직접 찾아가 있는대로 떠들어대고. 뇌라는 건 생각하라고 있는 것일 텐데. 이제는 그나마 김영광이 기껏 꼬드겨 놓은 황노인에게 일대반전을 기대해야 할 판이다. 더구나 서재명은 지금 병을 앓고 있는 중이다.
정작 주인공은 윤재인, 김영광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에게는 성장이라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머리를 굴리고 계산하는 것도 없다. 계획도 없고 능력도 없다. 그냥 착하다. 착한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은 그저 헤실헤실 웃고, 한 사람은 눈을 부라리며 소리나 질러댈 뿐. 그래서 결국 두 사람이 해결 못하는 것을, 그래서 여은주까지 동원해서도 해결되지 않은 것을 외부에 맡기려 한다. 이야기는 더 꼬이고 안 좋은 감정만 쌓이게 되고.
어디서부터 꼬이게 된 것일가? 아마 입사시험이었을 것이다. 입사시험을 보다 빠르게 간략하게 끝낸 뒤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입사시험이 준비가 덜 된 주인공들에게 성장의 기회마저 빼앗아가 버렸다. 성장하지 않고서 주인공들이 서재명과 상대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까지 매주 기분나쁘게 마무리하고서 마지막에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을 보여주려는가? 하지만 워낙 그 과정이 답답해서 그다지 그 마지막이 그리 통쾌하거나 후련하려는지. 짐이 무겁다. 드라마로서는 글쎄... 참 어렵다. 난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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