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특수사건전담반TEN - 비밀과 권력, 공포의 상관관계, 그 파멸의 기록...

까칠부 2011. 12. 10. 09:00

칼을 든 사람이 가장 무서운 때가 언제일까? 칼을 뽑아 휘두르고 있을 때? 아니면 칼에 베어 상처가 나고 피가 철철 흐르고 있을 때? 아니다. 단지 칼을 가지고 있을 때다.

 

정작 칼을 꺼내 휘두르기 시작하면 의외로 그렇게 무섭지 않다.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어느 정도 수준인가? 실제 어떠한 정도의 위협인가? 맞설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굴복할 것인가? 굴복하여 복종하더라도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한 것이라면 두려움은 없다.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냉정해진다.

 

분노라는 것도 있다. 증오라는 것도 있다. 상처를 입었다. 바로 고통에 굴복하여 무릎을 꿇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오기가 나서 더욱 죽자고 달려드는 경우도 있다. 죽이거나, 아니면 죽거나. 역시 처음 칼을 빼어든 목적을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악의 경우 최악의 피해를 입게 된다.

 

세계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이 어째서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가지고서도 때로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하곤 하는가? 미국이 개입하기 전까지 당사국이나 당사자들은 무척 두려워한다.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미국이 군사개입을 시작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두려워할 사이조차 없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내몰리고 만다. 그러다가 자칫 미국의 헛점이라도 드러나게 되면 그것을 물고 놓지 않으며 미국의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미국이 그 막강한 군사력으로도 항상 성공만 거두지는 못하는 이유인 것이다. 쥐도 궁하면 고양이를 문다.

 

당장 북한과 전쟁이 일어났는데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대한민국에 그 핵무기를 사용했다고 가정해 보라. 과연 북한이 핵무기를 썼으니 무섭다고 그대로 두 손 들고 항복하고 말겠는가, 아니면 어차피 이렇게 된 것 한 번 끝까지 붙어보자 하겠는가? 북한이 사용한 핵무기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많은 것들이 파괴되었다. 물론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 때에는 그것이 무척 두렵다. 하지만 정작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했을 때는 사정이 전혀 달라진다. 두려움 이외의 감정이 생기기 시작한다.

 

2차세계대전 당시도 그래서 오죽하면 독일군의 폭격기가 런던을 폭격하기 시작하자 대표적인 강경파였던 처칠이 수상관저에서 환호성을 질렀다는 이야기마저 전해질 정도였다. 독일의 공습이 시작되기 전까지 영국은 온통 절망에 물들어 있었다. 프랑스마저 항복하고 유럽대륙을 석권한 독일에 대해 항상 그들이 공격해 올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독일군의 폭격기가 런던을 공격했을 때 영국 국민들은 독일군의 폭격에 공포를 느끼기보다 독일에 대한 맹렬한 증오심을 품게 되었다. 영국 국민들은 독일군과의 전선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스탈린은 어떨까? 스탈린은 심지어 독일군이 국경을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말을 전혀 믿으려 들지 않았었다. 프랑스까지 항복시킨 독일군은 스탈린에게도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실제 독소전 초기 러시아군은 일방적으로 몰리며 수도인 모스크바까지 후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스탈린은 항복했을까? 소련 국민들의 전의가 꺾였을까? 소련 국민들의 결사적인 항전 아래 결국 한계를 드러내고 만 것은 독일 자신이었다. 두려운 것은 전쟁을 하기 전의 독일이었지 전쟁을 시작한 독일은 단지 적일 뿐이었다.

 

적어도 전의를 꺾을 정도가 되려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정도는 되어야 한다. 아니면 도쿄대공습이나, 드레스덴 폭격도 있을 것이다. 어설프게 당해서는 괜히 상대의 독기만 키워주는 꼴이다. 물론 그러한 폭격 역시 사실상 원래의 의도에서는 한참 벗어난 것이다. 이익이란 파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생에 있다. 아예 모조리 파괴하여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면 어디에서 자신의 이익을 찾을 수 있겠는가? 바보나 하는 짓이다. 그런 것으로는 그 무엇도 얻지 못한다.

 

드라마에서 여왕이라 불리우던 윤미라(김기연 분)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정의석(정호빈 분)이라고 하는 개인이 윤미라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그가 여전히 다선의원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지닌 실세로 남아있어야 한다. 자칫 정의석과 관련한 추문이 새어나가 그의 입지가 흔들리기라도 하면 윤미라 자신에게도 손해가 된다. 인기배우 성이한 역시 그가 여전히 인기배우로 남아 있어야 윤미라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 침묵의 카르텔은 그렇게 형성된다.

 

"비밀이 권력이 되려면 뭐가 필요한 지 알아? 침묵! 어떤 경우에도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 그것이 비밀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해야 돼! 그래야 그 신뢰를 바탕으로 권력을 만들 수가 있지."

 

성이한이 끝내 윤미라를 죽이고 만 이유였다. 윤미라가 단지 그의 과거와 관련해 비밀을 쥐고 있을 때는 두려울 뿐이었다. 호스트였던 과거를 안다. 그리고 호스트이던 시절 윤미라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알고 있다. 만일 공개된다면 성이한의 인기배우로서의 삶은 그날로 끝이다. 파멸할 것이다.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다시는 그 눈부시게 밝은 빛을 꿈조차 꾸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공개될 위기에 놓였다.

 

윤미라가 단지 그러한 비밀을 알고 있는 동안에는 그럭저럭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윤미라가 시키는대로만 한다면 비밀은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윤미라의 요구에 복종한다면 아무일 없이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밝혀지려 하고 있다. 파멸이 눈앞에 보이려 한다. 이성을 잃는다. 눈앞의 윤미라가 증오스럽고, 어떻게 해서는 윤미라를 억압해서라도 그것을 되돌리고 싶어진다. 실체로 다가오는 것이다. 파멸이 실체로 다가오고, 그 공포가 윤미라라고 하는 구체적인 대상으로 각인된다. 설사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하더라도 물리력으로 윤미라를 위협하려 했던 그 자체는 성이한의 본능이 시킨 행동이었을 것이다.

 

정의석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윤미라가 정의석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에 흘리려는 기미라도 보였다면 살인자는 성이한도, 김선우도 아닌 정의석 자신이 되었을 것이다.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서도 윤미라 한 사람 죽이는 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법이 있다. 단지 윤미라가 정의석의 비밀을 알고도 그것을 굳게 지킬 것이라 여기는 믿음이 정의석으로 하여금 윤미라에 의지하여 비밀을 이어가도록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에 윤미라 역시 자기가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섣부르게 드러내는 서툰 행동은 하지 않았었다. 정의석과 성이한의 안전이 결과적으로 윤미라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 김선우는 어째서 윤미라를 죽이게 되었을까? 그 또한 비밀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으니까. 비밀을 움켜쥐고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보며 그 무서움을 이미 뼛속깊이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윤미라를 닮고 싶어 했던 것이었다. 윤미라를 본받아 정의석과 성이한의 비밀을 움켜쥐고 무언가 이루어 보고자. 그런데 윤미라가 김선우의 행동을 비밀로 해주겠다고 한다. 마치 김선우라고 하는 자기의 존재가 윤미라의 손아귀에 쥐이는 듯한 그런 공포가 아니었을까?

 

아주 오래전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였을 것이다. 그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온갖 잔인무도한 일을 전혀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던 독재자 스탈린이 어느날 쓰러져 정신을 잃자 비서관은 죽었다 생각한 스탈린의 시체 앞에서 그에 대한 온갖 비난과 조롱을 쏟아낸다. 단지 스탈린이 주는 공포에 복종하고 있었을 뿐 그가 감추어두었던 솔직한 속내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스탈린이 깨어난다. 잠시 정신을 잃고 있었을 뿐이었다. 비서관은 스탈린을 어떻게 했을까?

 

공포의 끝이다. 말한 그대로다. 공포란 실체가 없기에 그것을 공포라 하는 것이다. 실체가 눈에 보이면, 그리고 그것이 어느새 손이 닿는 거리까지 다가오게 되면 그것은 증오가 된다. 공포란 너무나 두려운 것이기에 그 원인이 되는 대상을 파괴하여 공포로부터 벗어나려 하게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던 윤미라에 대해 김선우가 느끼고 있던 본능적인 혐오였을 것이다. 혐오란 공포의 다른 표현이다. 다만 그 공포가 너무 강했던 것이 윤미라가 보았던 공포 이면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 짓눌려 파멸에 이르고 말았을 뿐. 윤미라 또한 그런 김선우에 휩쓸려 함께 파멸하고 말았으니 공교롭다 할 것이다.

 

그래서 보고 만 것이다. 이제껏 죽은 줄 알고 열심히 윤미라의 죽음을 위장하기 위해 애쓰던 김선우가 어느새 깨어난 윤미라를 죽이려는 장면에서. 그리고 연상은 윤미라가 성이한에게 밀려 넘어지며 목을 다치는 장면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여지훈(주상욱 분)의 한 마디, 비밀을 권력으로 만드는 방법. 원래는 어떻게 비밀이 권력이 되는가에 대해 생각하며 보다가 그 순간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다. 권력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유지되는가? 그리고 무엇이 그 권력을 무너뜨리는가? 비밀은 공포이고 공포는 곧 권력이다. 그러면 그 권력은 어떻게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가?

 

결국 독재자의 절대권력을 무너뜨리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민중의 봉기에 의해서다. 봉기의 이유는 간단하다. 두렵기 때문이다. 독재자가 주는 공포가 한계를 넘어 그들로 하여금 증오를 머금게 한다. 공포란 거리를 둘수록 커진다. 그런데 지나치게 공포를 강요하다 보면 어느 순간 공포는 실체로서 민중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민중이 공포를 이기고 그 원흉인 독재자를 끌어내리는 순간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온정적이고 도덕적인 지배이지 무도한 폭력과 공포에 의한 지배가 아니다. 그래서로베스 피에르는 공포정치의 끝에 스스로 단두대에 목이 잘리고 말았다.

 

단지 그러기까지가 두려울 뿐이다. 내 가족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들 때. 내가 혹시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지배될 때. 그런데 정작 가족이 죽고, 나 자신이 죽을 위기에 몰리고 나면 그때는 생각이 달라진다. 칼을 든 도둑놈은 무섭고, 이웃나라가 가진 핵무기도 무섭지만, 정작 칼에 베이고, 핵무기가 떨어지면 입장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정치외교에 있어서도 서로가 가진 힘이 가장 크게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직 그 힘이 쓰이기 전인 것이다. 일단 힘을 쓰기 시작하면 그것을 꺾으려는 의지도 함께 나타난다. 그것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하필 정의석이라고 하는 정치인을 등장시킨 이유도 그것일 것이다. 여지훈을 끌어들이고 'TEN'을 조직한 경찰청 국장과의 대화 역시 그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 번 정도 여지훈의 과거를 알고 그것을 이용하려 든다는 용납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그것을 이용하려 든다면 그로서도 그것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피해자 윤미라의 별명이 더구나 '여왕'이었다. 스페이드 퀸. 권력과 여왕, 그리고 죽음. 의미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비밀을 갖는다는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윤미라가 김선우에게 죽으며 남긴 마지막 말의 의미일 것이다. 그것은 잘 벼려진 칼날 위를 걷는 것과 같다. 충분히 그 비밀을 감당할 수 있다면 문제없이 그것을 이용할 수 있을 테지만, 감당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것은 도리어 자신을 죽일 수 있다. 성의한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것처럼. 그리고 지금은 김선우에게 죽임을 당하려 하고 있다. 비밀은 힘이며 또한 독이다. 적을 죽이는 힘이 되지만 자신을 죽이는 독도 될 수 있다.

 

확실히 최근 가장 몰입해 보고 있는 드라마일 것이다. 표정 하나, 말 한 마디를 놓치기 두렵다. 혹시나 어딘가에는 중요한 힌트가 있지 않을까? 미묘한 표정의 변화가 소리로 들리는 배우의 대사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전하는 것 같다. 그렇게 정교하다. 한 편의 영화처럼. 이야기는 어쩌면 상당히 단순해도 그 순간순간의 텔링을 놓치지 않고 모두 챙겨보고 싶은 욕심일 것이다. 드라마가 상당히 풍성하고 질감이 예쁘다. 보는 즐거움이 있다.

 

남예리(조안 분)의 매력이 예사롭지 않다. 어느새 푹 빠지고 말았다. 외모만큼이나 화려한 차림을 하고 기세좋게 호스트바에 들어서려는데 익숙지 않은 하이힐에 삐끗하고 만다. 수사를 한답시고 호스트를 불러 술을 마시는데 너무 많이 마셔서 중요한 참고인에 수갑을 채우고서는 그대로 쓰러져 버린다. 술주정은 얼마나 귀여운가? 항상 날이 서 있는 여지훈에 비해 긴장을 풀어주는 대칭이 되어 주는 역할이다. 드라마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역시나 트릭은 별다른 것이 없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트릭이고 어렵지 않게 풀어낸다. 그보다는 그 과정이다. 양감과 질감이다. 풍성하고 풍요롭다. 그리고 그 이면에 들리는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가 의도한 것이든, 아니면 필자가 바라는 것이든. 흥미롭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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