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브레인 - 이강훈이 어쩌면 의사라는 직업을 불신하며 증오하고 있는 이유...

까칠부 2011. 12. 13. 08:26

역시나 이강훈(신하균 분)다운 배려였을 것이다.

 

"병원 옮겼어요. 그러니까 (이강훈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마세요."

 

아마 이강훈이 고재훈(이성민 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병원을 그만두고 만 이유 가운데 작은 한 부분은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이강훈이 천하대학병원에 남아 있는 이상 어머니 김순임(송옥숙 분)은 제대로 마음 편히 치료받지 못할 것이다.

 

응급으로 실려와서 긴 어려운 수술을 마치고 기껏 깨어나 하는 소리가 아들인 자신이 걱정할까봐 딸 이하영(김가은 분)더러 이강훈에게 알리지 말라는 당부였다. 그것을 이강훈은 바로 가까이에서 듣고 있었다. 그리고는 듣고 어머니 김순임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조용히 방을 나서고 있었다.

 

단지 마음을 전하기가 서툴다. 김상철(정진영 분) 교수가 보고 있던 어머니의 MRI결과조차 드러내 놓고 함께 보자고 말하지 못한다. 걱정되어 곁눈질을 하지만 다가가 자세히 보려는 결심까지 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그가 혼자서 세상과 싸우며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힘겹게 두르고 있던 벽이었다. 그 벽이 무너지는 순간 이강훈 자신도 무너진다.

 

강해야 한다. 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동생인 이하영에게도 어머니의 병을 거부하는데도 불구하고 강요하듯 들려주고 있었다.

 

"들어! 상황 회피한다고 뭐가 달라져?"

 

그 또한 이강훈 나름의 배려였을 것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환자를 치료하는데 있어 가족의 협력도 반드시 필요하기에 그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듣고 싶지 않다고 마냥 거부하려고만 드는 것은 비겁함이고 나약함이다. 그러나 아직 어린 동생은 그런 이강훈이 매정하고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때문이었다. 문득 생각한다. 어쩌면 이강훈은 뼛속까지 의사라는 직업을 불신하고 혐오하는 것이 아닌가? 혜성대학병원에 조교수 자리를 알아보려 안동석(최일화 분) 학과장을 찾아갔을 때도 그래서 그는 자신이 준비하던 논문을 마치 뇌물처럼 들이밀고 있었다. 그러는 것이 의사로서 너무나 당연하다.

 

이강훈이 김상철을 혐오하는 이유였다. 그를 증오하고 경멸한다.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김상철은 그가 아는 의사의 이미지와 너무 동떨어져 있었으니까. 의사라면 절대 그럴 리 없다. 절대 그럴 수 없다. 그것은 확신이기도 하다. 그런데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의심부터 하게 되는 것이다. 위선이라고. 가식이라고. 그리고 그의 짐작은 이번에는 얼추 들어맞은 것 같다.

 

윤지혜(최정원 분)를 거추장스러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의 오지랖은 의사로서 전혀 필요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때로 친절한 것은 그것이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기도 하기에. 그녀는 아직 의사가 아니다. 그에 비하면 서준석은 출신만을 믿고 그다지 노력도 정진도 않는 그가 가장 혐오하는 타입의 의사일 수 있다. 동기이면서도 서준석에 대한 경멸과 혐오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이유였을 것이다.

 

의사를 직업으로 삼았지만 그렇다고 의사에 대한 동경이나 존경심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어쩌면 복수였을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빼앗아간 이들에 대한 복수. 그들처럼 의사가 되어 최고의 정점에 서겠다. 그것이 이강훈이 의사로서 갖는 진정성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도덕적으로 분명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도 이강훈은 전혀 후회하거나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이강훈에게 의사로서의 윤리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기술, 그리고 의사로서의 당위란 명예, 그리고 권력이다. 그것이 사라진 이상 더 이상 의사에 미련은 없다.

 

천하대학병원을 그만두고 만 이유 아니었을까? 그곳에는 그가 추구하는 의사로서의 목적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에게 어떠한 권력도, 명예도, 지위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함으로써만 천하대학병원에 남아있을 수 있다. 결국은 그 모든 얼킨 실타래의 고리는 김상철에게 있었던 것이다. 이강훈의 아버지를 수술하고, 의료사고로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고, 그것을 권력으로 은폐하려 시도했던. 이강훈에게 의사에 대한 증오와 불신을 심어주고 만 당사자인.

 

그러고 보면 천하대학병원에서 이강훈으로 하여금 더 이상 남아 있을 수 없도록 몰아붙인 당사자 가운데 한 사람도 바로 김상철이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의 모습에서 그토록 끔찍하도록 혐오스럽던 자기 안의 괴물의 모습을 발견하며 김상철 역시 이강훈에 대한 감출 수 없는 증오를 드러내고 만다. 그것은 김상철 스스로도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였을 것이다.

 

김상철이 이강훈을 꺼려한 이유였다. 사실 전혀 다른 타입의 인간이라면 그렇게까지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기란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서로 꺼려하여 배척하더라도 마음 깊이 증오하지는 않는다. 김상철의 이강훈에 대한 감정은 혜성대학병원 안동석 학과장이 조언을 구하려 왔을 당시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는 부정적인 말을 내뱉고 말았을 정도로 김상철 스스로도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그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이강훈은 결국 김상철에게 또 하나의 자신이며 그가 만들어낸 괴물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자신이 만든 괴물을 보고 느낀 혐오와 공포가 그러했을까?

 

아무튼 참으로 기구한 운명일 것이다. 그토록 믿고 따르던 고재학 학과장으로부터는 배신까지 당하고, 동기인 서준석은 단지 아버지가 유력한 병원장 후보라는 이유로 부족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추월하여 조교수의 자리에 앉고, 그리고 고재학과 손잡은 서준석의 압박에 갈수록 자리가 줄어든다. 병원의 또 한 사람 실세인 김상철은 아예 그를 증오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결국 다른 대학병원에 조교수 자리를 알아보려 했더니만 그것도 김상철이 마지막에 파토를 놓고. 더 이상 병원에 있을 수 없게 된 상황에 갈 곳도 따로 없다. 그런데 어머니는 김상철조차 장담할 수 없는 위험한 병을 앓고 있다. 동생은 그를 거부한다. 그의 논문마저 고재학이 서준석과 더불어 빼돌리려 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이게 된 것일까?

 

드라마란 결국 비극이다. 모든 사건은 결국 비극에서 비롯된다. 단지 그 비극이 비극으로서만 끝나는가? 그것이 희극으로 마무리되어지는가? 드라마가 이강훈 개인의 드라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비극이 끊이지 않는다. 비극이 끊이지 않으며 이강훈 내면에서 거센 감정이 몰아친다. 아무런 문제없이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라이벌 서준석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서준석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도 바로 이강훈을 질투하며 증오할 때다. 감정이 캐릭터를 드러나게 만든다. 지금까지의 모든 비극이 이강훈에게 몰리고 있는 것이 이강후이 주인공인 이유인 것이다.

 

김상철의 비극 또한 다라서 이강훈의 비극이 될 가능성이 높다. 너무 뻔한 복선이다. 갑작스레 두통을 호소하며 비틀거리는 김상철 교수. 그것은 단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충격으로 인해 갑작스레 빈혈이라도 느낀 것이었을까? 드라마에는 우연도 없고 필요없는 디테일도 없다. 현실과 다른 부분이다. 그것은 결국 이강훈과 김상철의 관계가 비극으로 여겨질 때쯤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강훈의 드라마이기에 갈수록 이강훈이 가엾어진다. 신하균의 힘이다.

 

시놉시스와 드라마의 내용이 사뭇 다르다. 캐릭터 역시 설정한 내용과 실제의 캐릭터가 많이 다르다. 모든 것이 이강훈을 중심으로 재편되려 하고 있다. 서준석은 존재감을 잃고, 윤지혜는 약해진다. 김상철 역시 이강훈과의 관계를 전제한다. 신하균의 연기와 존재감이 너무 강하다. 이강훈의 드라마이며 신하균의 드라마다. 물론 불만은 없다. 신하균에게는 그만한 충분한 힘이 있다.

 

또 하나의 고비다. 김순임은 과연 이강훈이 두르고 있는 저 단단한 갑옷을 녹여낼 수 있을 것인가? 강하려고만 하는 이강훈의 약한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가? 김상철에 대한 그의 증오는 의사하는 직업에 대한 증오이기도 하다. 이강훈이 의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장애 가운데 하나다. 김순임의 병과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밝혀진 김상철과의 과거는 그것을 의미한다. 이강훈을 이제껏 지켜오고 있던 것들에 유효기간이 다했다. 변신이 필요하다.

 

장유진(김수현 분)은 차라리 가엾을 정도다. 개인적으로 윤지혜보다도 더 호감이 있는데. 영악하면서도 바보같다. 계산에 밝은데도 전혀 계산하지 못한다. 이강훈을 사랑하는 때문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게 사랑에 빠져버린 탓에 자신을 잃어버린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사랑스럽다. 아마도 이강훈에게 그렇게 매달리면서도 차이고 마는 그녀의 비극적 상황이 더욱 그녀에게 이입하도록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윤지혜는 아직까지는 마음 뿐 드라마가 없다. 이번에는 장수를 잡으려면 말을 쏘라고 이강훈의 동생 이하영에게 접근하려 하고 있는데.

 

이강훈앓이를 예감한다. 그 전에 '브레인 신드롬'일 것이다. 더욱 재미있어진다. 극적으로 더욱 재미있어지며 보는 이의 욕망과 감성을 있는대로 자극한다. 증오와 혐오, 분노, 원망, 애증, 연민, 동정, 사랑, 질투. 그것이 드라마라는 것일 테지만. 욕망함으로써 사람은 살아간다. 드라마를 보는 이유일 것이다. 단연 최고인 이유다.

 

과연 내일은. 김상철의 과거를 알고, 어머니 김순임의 병을 알고, 그리고 흔들리 수밖에 없는 이강훈의 선택은? 월요일 다음에 화요일이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하루가 이리 길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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