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뱀파이어 검사 - 마침내 드러나는 검은 우비의 정체, 민태연 쫓기다!

까칠부 2011. 12. 12. 08:47

사실 바로 직전까지도 민태연(연정훈 분)이 쫓고 있는 7년 전 뱀파이어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의 정체에 대해 전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매회 사건을 쫓으며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과 그 의도한 바를 생각하느라 그런 것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저 누군가 민태연이 쫓고 있는 검은 우비의 범인이 있고 언젠가는 민태연과 만나게 되리라.

 

다른 형태를 생각하고 있었다. 검은 우비는 여전히 어디선가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 그런데 민태연이 우연찮게 살인사건을 쫓던 도중 검은 우비와 맞닥뜨리게 된다. 민태연이 형이라 부르던 라울(박재훈 분)이 그 매개가 될 것이다. 라울의 가게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과거 '빵목사' 살인사건에서 부딪혔던 윤지희의 존재가 그를 검은 우비에게 안내할 것이다. 철저히 검은우비의 존재를 수사팀 밖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11회, 마지막 에피소드의 전편이 방송되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검은 우비의 정체를 숨긴다. 만일 검은 우비를 외부에서 찾으려 할 경우 감춰야 할 것은 검은 우비의 정체가 아니라 그의 위치일 것이다. 그는 누구이며 어떤 존재이다. 그러면 그 단서를 가지고 여러 수단을 동원해 검은 우비를 쫓게 될 것이다. 혹은 우연한 기회로 검은 우비와 맞닥뜨리며 그의 존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작 드라마에서 공란으로 비워둔 것은 그의 위치가 아닌 근본적인 그의 존재 그 자체였다.

 

단서는 있었다. "나쁜 피". 법망을 피해간 악인들. 처음에는 무작위로 희생자를 만들다가 어느 순간 안정을 찾으면서 일정한 패턴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범인에 의해 희생된 희생자 사이에 어떠한 공통점이 있고 그것이 범인이 희생자를 고르는 방식을 정의한다고. 그러나 그것은 과연 범인 검은 우비가 누구인가 하는 궁금증을 자극하는 단서이지 범인을 찾으라는 단서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그것은 곧 시청자들에 검은 우비의 정체에 대해 질문을 던진 것으로써 검은 우비의 정체야 말로 드라마가 준비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는 뜻이 된다.

 

장르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추리물이다. 수사드라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범인의 정체를 의문부호로 가려 놓았다. 바로 그 범인의 정체야 말로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누구인 것이 가장 충격적이고 재미있겠는가? 법칙이다. 가장 위험한 적이야 말로 항상 가장 가까이에 있다. 진정한 범인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가장 가까운 누군가일 것이다. 아니라면 굳이 지금에 와서까지 범인의 정체를 감출 필요가 없다. 오히려 범인의 정체가 너무 드러나지 않으면 정작 범인을 잡았을 때 미처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 놀라움이 줄어든다. 그렇다면 가까운 곳 누구이겠는가?

 

일단 민태연은 뺐다. 민태연이 범인이면 민태연 스스로 자가분열하여 사건을 저지른 것밖에 되지 않는다. 다중인격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한 번 나왔다. 유정인(이영아 분)의 경우는 오히려 너무 노출이 많아서 어렵다. 벌써 한 차례 유정인의 감추어진 비밀에 대해 드라마에서 다루어졌는데, 여기에 유정인의 또다른 비밀이 더해지면 중복되는 느낌에 신선함이 떨어진다. 짜증스럽기도 하다. 소박사(김예진 분)이나 최동만(김주영 분)의 경우는 비중이 너무 적어서 범인이라고 하면 생뚱맞은 느낌일 것이다. 그렇다면 황순범(이원종 분)인가? 그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러다가 문득 "나쁜 피"라는 단어가 머리에 걸렸다. 황순범은 적당히 범죄자들을 정보원으로 활용할 줄도 아는 영악한 경찰이다. 타협도 알고, 현실이 어떠한가도 안다. 물론 그래서 반전이기도 하겠지만 그러자면 그럴만한 단서가 이미 한 번 쯤은 나와주었어야 했다. 그러면서 머리를 스친 것이 지지난주 9회에서 유정인의 아버지인 유원국이 용의선상에 올랐을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원국을 비롯한 폭력조직의 몸통을 제거할 것을 민태연에 요구하던 부장검사 장철오(장현성 분)의 존재였다.

 

"정의는 행동에 의해 진실해지니까요."

 

그때는 상당히 과격한 정의감으로 무장한 검사구나 싶었다. 그런데 의문이었다. 그러한 과격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만한 사건과 연루되어 있어야 하는데 장철오의 경우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과격한 정의감이라고 하는 캐릭터와는 달리 그러한 캐릭터를 드러내보일 기회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픽션에는 우연이란 없다. 모든 것이 필연이다. 그렇다면 장철오의 그러한 정의감을 드러낼만한 장면이 한 번 쯤은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드라마를 보고 있으려니 아니나 다를까 서로 다른 경로, 다른 방식으로 범인을 쫓기 시작한 민태연과 황순범에 의해 하나의 이름이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필자의 경우 단지 드라마로써, 장르적 문법에 따라 그 정체를 유추하고 있었다면, 민태연은 박훈의 명함에서, 그리고 황순범은 민태연이 건낸 단서인 7년 전 10중추돌사고의 생존자 양세혁의 증언을 바탕으로 병원에 누워 있는 선배경찰 김덕환을 통해서였다. 당시 10중추돌의 현장에 장철오도 있었고, 그에 의해 그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또한 박훈이 밝혀낸 실종자들과 관련해 그들의 사건을 맡았던 담당검사가 장철오였다.

 

아이러니는 그러한 두 사람의 노력과 거의 동시에 윤지희의 MP3에 녹음된 소리에 의지해 윤지희가 갇혀 있던 장소를 추적해가는 유정인이었을 것이다. 장철오가 이미 유정인에게 민태연의 지시만 듣고 있지 말고 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것을 요구한 시점에서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을 것이다. 아마 어느새 민태연이 자신의 주위로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장철오가 일대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유정인의 노력은 사건의 실체를 세상에 드러내지만, 역설적으로 민태연을 장철오의 함정에 빠지도록 만든다.

 

철저하게 준비했을 것이다. 이미 7년 전에도 경찰의 수사망은 물론 뱀파이어의 원조격인 박훈의 추격을 따돌리고 오히려 박훈마저 죽이고 말았을 정도였다. 오히려 검찰의 생리를 알기에 더욱 쉽게 민태연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드라마에 나온 검은 우비 가운데 몇 명은 장철오의 하수인, 혹은 협력자들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 가운데에는 그동안 다른 에피소드에서 등장했던 인물도 있었을 것이다. 뱀파이어가 장철오 한 명이라는 것은 7년이라는 시간에 비추어 보면 너무 안일한 생각이다.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 장철오는 그와 같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되었는가? 처음에는 뱀파이어가 되었다는 사실에 당황해서,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으리라. 사람의 피를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뱀파이어로서의 숙명과 그리고 더불어 얻게 된 보통의 인간을 훌쩍 뛰어넘는 초월적인 힘에 대해. 힘을 가지게 되면 누구나 그것을 쓰고 싶어진다. 정의감에 불타는 검사라면 당연히 그 힘을 쓰는 방향도 그렇게 정해지게 될 것이다. 정의는 행동에 의해 진실해진다. 행하는 것이 정의를 지향한다면 그것은 정의로울 수 있다. 아마 지금 장철오에게 있어 자신을 방해하려는 민태연이 곧 악이 아니었을까?

 

과연 민태연이 장철오의 함정에 빠져 꼼짝없이 정선에서 발견된 연쇄살인사건과 병원에서 저질러는 윤지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있는 상황에서 또다른 어떤 반전이 그를 구하고 장철오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릴 것인가? 역시 이런 때 필요한 것이 팀일 것이다. 황순범은 이미 어느 정도 장철오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다. 유정인 역시 민태연에 대한 신뢰가 깊다. 물론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뱀파이어 민태연 검사일 테지만 말이다.

 

이미 민태연에게 모든 사실을 들킨 상황에서도 여전히 여유로울 수 있는 장철오의 자신감이 섬뜩하기까지 하다. 당황이나 놀라움은 없다. 두려움도 없다. 분노나 증오도 없다. 너무 당당하다. 너무 태연하다. 그래서 알면서도 혹시 아닐까 TV를 보다가도 헷갈린다. 캐릭터의 묘사가 훌륭하다. 배우 장현성의 캐릭터 해석 역시 매우 탁월하다. 드라마의 긴장을 높여준다. 전혀 힘을 주지 않는 것이 도리어 보는 이로 하여금 힘이 들어가도록 만든다.

 

드라마의 미덕일 것이다. 그렇게 진지한 가운데서도 순간순간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적절한 유머코드가 무척 보기에 즐겁다. 머리가 너무 커서 오토바이 헬멧이 꽉 끼어 빠지지 않는다. 유정인은 최동만의 도움이 필요하자 난데없는 친절과 귀여움 모드다. 물론 목적한 바가 이루어진 순간 그녀의 표정은 원래대로 돌아간다. 어르고 뺨치는 것이 아주 최동만을 가지고 노는 수준이다. 설마 당구장에서 경찰을 피해 달아나려는 양세혁을 구해 달아난 것이 황순범이라는 사실도 어지간히 당황스러웠다. 기껏 확보한 증인 양세혁을 튜브에 묶어 굴리며 협박하는 모습은 확실히 그가 검은 우비가 아니라는 증거일 것이다. 그야말로 악당 자체였다.

 

혼자서만 심각하다. 아니 민태연도 웃을 때는 웃는다. 다만 이번 에피소드는 민태연이 웃을 만한 에피소드가 아니다. 드디어 7년 넘게 쫓아 온 범인의 정체에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그런 반면 그의 주위에서 유정인과 황순범이 적당한 유머코드로 지나치게 경직되려는 것을 흐트러 놓는다. 역시 시청자를 어르고 달래는 것이 아주 능숙하다.

 

추격전이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좇기는 주인공과 진범에게 속아 주인공을 쫓는 공권력, 그리고 그러한 주인공을 보이지 않게 돕는 동료들. 기대가 크다. 이제까지처럼 야무진 마무리로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를. 장철오라고 하는 캐릭터가 그러한 기대를 더욱 키우고 만다. 정의를 추구하기에 악을 저지른 안티히어로. 그는 악인일까? 단지 수단이 악했을 뿐일까? 드라마가 추구하는 바도 그로써 드러나게 될 것이다.

 

장철오의 정체를 일찌감치 드러내고, 검찰의 조직을 이용하려는 장철오와 쫓기는 민태연의 대립을 그린다. 그런 과정에서 수사팀의 역할이 드러난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삐를 늦추지 않으려는 고집이 느껴진다. 전혀 방심할 수 없다. 일주일이 너무 멀다. 흥미롭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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