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수록 - 부활
한참 동안을 찾아가지 않은
저 언덕 넘어 거리에
오래전 그 모습 그대로
넌 서있을것 같아
내 기억보단 오래되버린 얘기지
널 보던 나의 그 모습
이제는 내가 널 피하려고 하나
언제가의 너처럼
이제 너에게 난 아픔이란걸
너를 사랑 하면 할 수록
멀리 떠나가도록 스치듯 시간의 흐름속에
내 기억보단 오래되버린 얘기지
널 보던 나의 그 모습
이제는 내가 널 피하려고 하나
언제가의 너처럼
이제 너에게 난 아픔이란걸
너를 사랑 하면 할 수록
멀리 떠나가도록 스치듯 시간의 흐름속에
이제 지나간 기억이라고 떠나며 말하던 너에게
시간이 흘러지날수록 너를 사랑하면 할 수 록
너에게 난 아픔이었다는 걸 너를 사랑하면 할 수록
가사 출처 : Daum뮤직
한동안 오래된 음악실을 비워두었던 이유다. 도저히 이 노래에 대해서는 내 짧은 글재주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유장하다. 미려하다. 장대하다. 그리고 난해하면서 단순하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김태원 자신도 다시 쓰라고 하면 두 손 들고 말지 않을까?
멜로디 메이킹에 있어서는 11집의 '사랑'에서 또 한 번의 새로운 정점을 찍었다. '사랑'의 멜로디는 '완벽'이라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전체적인 곡의 구성이나 완성도라는 면에서 '사랑할수록'에 비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그것은 어쩌면 12집 파트2에서 새롭게 편곡한 '사랑할수록'을 들으며 느꼈던 실망감과 같을 것이다. 그동안 부활의 앨범에서 부활의 노래가 리메이크된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그러나 이렇게까지 실망하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더 이상 더할 것도 뺄 것도 손댈 곳이란 아무것도 없다.
유현상이 말했을 것이다. 김태원의 기타에는 안개가 낀 것 같다. 그것은 마치 시공을 초월한 저 멀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한 그런 아련함을 느끼게 한다. 두터운 비와 안개이 커튼 너머로 두텁게 가리워져 들려오는 아련한 그리움일 것이다. 그것이 완성된 것이 바로 부활 3집의 타이틀곡 '사랑할수록'이었다. 공간감이라고 한다. 마치 청자의 주위만을 남겨두고 아득한 공간을 가득 채운 듯한 그 몽환적인 기타소리는. 이미 약물을 끊은 뒤에 만들어진 음악이지만 묘하게 취한 듯한 몽환적 서정성에 잠겨들게 한다. 아마 굳이 정의하자면 60년대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김태원만의 사이키델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먼 시간, 그리고 먼 공간, 그러나 그곳은 지금 여기다. 이 자리다. 알 수 없는 시간에, 알 수 없는 공간에, 그녀와 나는 함께 있었고, 지금 이 순간 그녀와 나는 다른 공간과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교차한다. 기억이 교차하며 공간이 교차한다. 아마 그것을 그리움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이지만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그녀와 내가 만나게 된다. 아련한 그리움으로. 그러면서도 더 이상 가질 수 없다는 상실감으로. 남은 것은 더 이상 사랑조차 아닌 미련. 그리고 기억. 그저 아무런 희망도 없이 아프기만 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의 대사다. 강경옥의 만화 '별빛속에'의 마지막 대사였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데, 다만 소중한 누군가가 있었고, 그를 사랑했다는 아득한 기억만은 남아 있다. '내 기억보다 오래된 이야기'라는 가사에서 그 대사를 떠올리고 말았다. 사랑이란 기억 이전의 것이다. 사랑했다는 기억 이전의 기억이다. 사랑했다는 것은 남은 찌꺼기다. 사랑했고 그리고 그녀를 기억했다는 것은 사랑하고 남은 찌거기에 불과하다. 그에 집착하고 그에 집착하면서 자신을 해치고 주위를 해친다. 아마 강경옥의 대사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 테지만, 시간이 흘러가면 강경옥의 만화속의 주인공 시이라젠느 역시 그렇게 지난 기억을 아파하며 그리움이라는 말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을까?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라는 것이 있다. 사랑이 식어 더 이상 함께 있을 수 없어 헤어진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럴 뜻이 아니었음에도 헤어지게 되었을 때에도 임계점이란 존재한다. 마냥 과거에 붙잡혀 살아갈 수는 없다. 그것은 미련이다. 망령이다. 그래도 사람은 살아가야 한다. 지금을, 바로 여기에서 나는 살아가야 한다. 그 시간을 놓는다. 그 공간을 놓는다. 그리고 그리움을 놓는다. 아마 그러고 나면 오랜 시간이 흘러 감사하다는 말을 건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감정이 마모되어 백사장 모래알마냥 둥글어졌을 때 비로소 사랑했다는 자체가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멜로디가 변화무쌍하다. 박자도 정박을 타는 법이 없다. 하기는 김태원의 스타일이 그렇다. 그러한 스타일이 완성된 기점일 것이다. 김태원이 스스로 영화음악과 클래식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래도라. 아마 부활 1집과 2집에서 각각 차이코프스키와 모짜르트의 음악을 차용하여 '인형의 부활'과 '천국에서'라는 장대한 스케일의 연주곡 스타일의 곡을 트랙에 넣고 있었음에도 이후 그와 같은 시도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더 이상 클래식을 빌어 표현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가 추구하던 클래식적인, 엔리오 모리꼬네의 서정성과 스케일을 단지 짧은 연주와 멜로디, 보컬의 목소리만으로 완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형의 부활'과 '천국에서'의 그 긴 연주를 '사랑할수록에서는 짧은 몇 마디 안에 모두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 그만한 스케일이 있다.
그만큼 멜로디에 많은 것을 담아낸 때문이었다. 복잡한 멜로디라인에 그것을 대중적으로 마무리해낸 집요함이 멜로디 안에서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발견하게 만든다. 거대한 공간이 만들어진다. 채워진 공간이 아닌 비워진 공간이다. 하기는 단 몇 명의 밴드가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대신 그 공간을 채우는 것은 청자의 감성이다. 청자의 기억이고, 청자의 그리움이고, 청자의 감정이다. 사면에서 초나라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듯 노래든 그 저머에서 먼 공간을 가득 채우게 되고. 가만 그러한 집요할 정도의 매끄러운 마무리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는 4집의 '기억이 부르는 날에'와 같은 무거움과 난해함만 남고 만다. 스케일도 공간감도 없이 가사와 멜로디만 남아 있다. 아쉬운 트랙이다.
부활 1집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보여준 드라마틱한 스케일과 부활 2집의 '회상1'에서 들려준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들려오는 듯한 몽환적 거리감과 '인형의 부활'과 '천국에서'에서 들려주었던 클래식적인 구성이 이 한 노래에 다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1집과 2집, 그리고 GAME의 음악이 이 하나의 노래에서 완성되고, 다시 이 하나의 노래로부터 이후의 김태원의 음악이 시작된다. 항상 같지는 않지만 그러나 '사랑할수록'을 통해서 일단 김태원의 음악은 하나의 방점을 찍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김태원의 음악의 끝이며 이제부터의 김태원의 음악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것이 11집 '사랑'에서 다시 한 번 방점을 찍는다. 아마 사실상 데뷔곡이라 할 수 있는 '비와 당신의 이야기'까지 포함한 이 세 개의 노래야 말로 김태원의 음악을 정의하는 음악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참 훌륭한 앨범이다. 당시 부활의 멤버라고는 단 둘, 그것도 이미 죽은 김재기를 제외하면 김태원이 유일한 멤버였다. 김재희는 객원이었다. 정준교와 김성태 역시 객원으로 세션이었다. 정식멤버로 다시 합류한 것은 3집의 성공에 탄력받아 4집을 준비하면서부터였다. 오로지 김태원과 김재기 두 사람이 만든 앨범이었다. 특히 곡작업은 모두 김태원 자신이 혼자서 다 책임져야 했다. 'GAME'의 실패 이후 3년의 공백을 거의 이 앨범 하나에 쏟아부었다고 보면 된다. 'GAME'에서 이어진 몽환적인 감성의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이 그렇게 3년의 노력 속에 하나의 앨범으로 완성된 것이었다. 원래의 타이틀곡이었던 '소나기' 역시 '사랑할수록'과는 다른 스타일의 공간감을 완성하고 있었고, '흑백영화'는 김태원스러운 회고적 감성을 노래하고 있었다. 부활의 음반에서 항상 빼놓을 수 없는 연주곡 트랙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기억상실'이라는 독특한 감수성으로 앨범을 가득 채우고 있다. 역시 무척 우울하던 시절이라 많이 위로받던 기억이 있다.
어쨌거나 아까운 노래라 할 것이다. 오로지 김재기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다. 이제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사랑할수록'을 불렀지만 텅 비운 듯한 서정성을 오로지 김재기만이 소화할 수 있는 감수성이었다. 그것도 단 한 번의 데모만으로. 이승철은 너무 해맑아서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정동하의 목소리에는 안개에서 습기만 빠진 것 같다. 김재희는 너무 김재희를 의식한 듯하다. 김기연과 박완규의 '사랑할수록'은 개인적으로 많이 아니었다. 정당의 '사랑할수록'은 상당히 기교적인 느낌이 강하다. 김재기가 조금만 더 살아 있었다면. 그래서 제대로 녹음을 마치고 활동을 했더라면. 그래서 노래는 미완인 것이다.
사실 많이 무모하다. 그다지 음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할 주제는 아닐 것이다. 악기도 다루는 것이 전혀 없고, 당연히 악보를 보는 것도 하지 못한다. 듣는 귀도 그다지 평균수준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더 감동한다. 그런 귀에도 쉽고 듣기 좋다. 물론 직접 부르려 하면 죽을 맛이지만. 프로가수도 그러한데 하물며 아마추어 따위가 도전할 수 있는 노래일까? 그런데도 계속 따라부르게 되는 것은 노래만의 매력일 것이다.
어딘가 대중음악의 주류에 있는 듯 하면서도 그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가까운 듯 묘한 거리감이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친숙하지만 무겁고 어렵다. 아마 거의 유일한 성공이었을 것이다. 김태원이 찾아낸 답은 김태원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대중과 예술의 경계에서, 그러나 예술에 치우친 그것은 아주 절묘한 선에서 대중과 만나고 있었다.
좋은 노래다. 그리고 탐나는 노래다. 하지만 항상 허락되는 노래는 아니다. 그럼에도 항상 따라부르려 하는 것은 그만큼 귀에 익고 입에 익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대중음악이라는 것인데, 그러나 항상 풀리지 않는 숙제가 그곳에 있다. 듣고 또 듣고 부르고 또 부르고. 아름답다. 김태원의 표현을 빈다. 아름다운 음악이다.
오랜만에 써본다. 그래도 어차피 생각나는대로 쓰는 것이니까. 전문성따위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다. 전문가도 아닌데 전문성을 따져봐야 무엇에 쓰겠는가? 단지 청자로서의 감상에 주력할 따름이다. 좋은 음악을 좋다 한다. 그것이 단지 남들보다 조금 더 길 뿐. 그저 그 뿐. 그래도 오랜만이라 즐겁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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