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산울림 -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까칠부 2012. 11. 2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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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 산울림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길목에 서서
예쁜 촛불로 그대를 맞으리
향그러운 꽃길로 가면 나는 나비가 되어
그대 마음에 날아가 앉으리
아~ 한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위해 노래 부르리
그대는 아는가 이 마음
주단을 깔아논 내 마음
사뿐히 밟으며 와주오
그대는 아는가 이 마음

*간주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길목에 서서
예쁜 촛불로 그대를 맞으리
향그러운 꽃길로 가면 나는 나비가 되어
그대 마음에 날아가 앉으리
아~ 한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위해 노래 부르리
그대는 아는가 이 마음
주단을 깔아논 내 마음
사뿐히 밟으며 와주오
그대는 아는가 이 마음

가사 출처 : Daum뮤직

 

 

 

 

어찌 들으면 참으로 괴랄한 곡이라 할 수 있다. 하기야 요즘의 기준으로 보자면 뭐가 그리 특별하고 대단한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노래가 처음 나온 70년대 후반을 기준으로 이런 노래는 더구나 대한민국 대중음악에 거의 없었다. 언제 노래가 나오는가 싶을 정도로 긴 - 그것도 일정한 리프가 끊임없이 변주되며 반복되어 들리는 전주라니. 어느새 듣는 이의 정신마저 몽롱해질 정도다.

 

80년대 어느 유명한 기타리스트가 산울림을 그렇게 비판한 적이 있었다.

 

"저들이 밴드인가?"

"저들이 과연 연주자라 할 수 있는가?"

 

확실히 테크니션이라는 한 가지 기준만 놓고 보았을 때 산울림의 면면은 프로연주자라기에는 어색한 부분이 많았다. 화려하지도 않았고 정교하지도 않았다. 어설픈 감마저 있었다. 당연했다. '아니벌써'로 데뷔하기까지 산울림은 아직 대학생들이었으니까. 프로연주자로서 만나 어떤 의도를 가지고 밴드를 만든 것이 아니라 형제들끼리 모여서 연습하고 음악을 만들며 밴드로서 데뷔하게 된 것이었다. 더구나 테크니션이 무척 중요하게 여겨지던 80년대 중반의 연주자들에게 있어 그런 점에서 산울림은 밴드도, 연주자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연주를 잘한다는 것에는 원래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앞서 말한 기술적으로 뛰어난 것. 얼마나 악기를 연주하는 기술이 탁월하고 훌륭한가. 누구도 감히 쉽게 따라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고도의 기술로써 악기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까지 소리를 끄집어낸다. 이빨로 기타줄을 뜯고, 하울링을 이용해 롱노트를 그리며, 손가락이 악기의 표면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누비며 속주의 한계를 들려준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전부인가? 연주를 잘한다는 것이 마치 묘기를 부리듯 악기로써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감탄케 하는 것이 전부인 것인가? 단지 사람들을 기술로써 찍어누르려는 듯하다.

 

김태원도 말한다. 기타란 멜로디 악기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고 들려주는 악기다. 한때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꼽혔으니 테크니션이기를 포기한 늙은 기타리스트의 말이다. 특히 '네버엔딩스토리'에서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소름끼칠 정도로 간결하면서도 적확한 짧은 간주에서 절정에 이른 장년의 원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 '사랑할수록'의 인트로와 더불어 가장 인상적이었고 가장 놀라웠던 기타연주였다. 기타란 감동을 준다. 음악이란 감동이다. 그리고 감동은 창의성에서 나온다. 어떻게 연주를 하는가가 아니라 악기로써 어떤 소리를 들려주는가? 기술이 수단이라면 악기를 통해 들려지는 음악은 목적이다. 얼마나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음악을 스스로 만들어내어 들려주는가?

 

김창완 자신도 인정하지만 산울림의 음악은 매우 단순하다. 하나의 프레이즈가 계속해서 반복되며 변주되고, 연주 역시 짧은 리프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런데 그것이 참으로 듣기 좋다. 바로 산울림의 대단함이다. 김창완의 위대함이다. 어쩌면 유치하다 할 수 있을 정도의 간결한 프레이즈와 리프만으로 이와 같은 위대한 음악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내가 감히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이 세 형제를 일컬어 천재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창의적인 리프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지루하지 않게 구성하여 연주해낸다. 사람들이 그것을 듣게 만든다. 수많은 히트곡들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연주야 연습만 하면, 그리고 재능이 어느 정도 받쳐준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창의적인 연주는 그야말로 타고나지 않으면 안된다. 악기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이전에 음악에 대한 감각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프레이즈가 시작이며 끝이다. 리프가 전부다. 사실 그것을 위해 많은 음악인들이 지금도 식음을 전폐해가며 한 마디의 멜로디와 연주를 찾아내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고해'를 둘러싼 작곡자 논란이 우스운 이유이기도 하다. 핵심멜로디를 만들어낸 게 '임재범'인데 단지 그것을 기술적으로 완성했다 해서 그 권리를 전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가? 음악은 기술이 아닌 감성이며 그것은 오로지 창조적인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아무튼 3분에 이르는 전주가 끊어질 듯 무한히 이어지며 노래는 독특한 감성을 이끌어낸다. 터지는 부분이 없는 꾹꾹 눌러 무한히 반복되어지는 연주는 마치 노래가사가 말하는 '주단'을 나타내는 것 같다.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겠는가? 얼마나 드러내고 싶은 것들이 많겠는가? 하지만 누른다. 누르고 또 누른다. 그저 즈려밟고 다가오라고. 내게 오라고. 김소월의 '진달래꽃'과도 확실히 다른 감성이다. 연주가 그를 위한 고백이라면, 노래는 그를 향한 독백이다. 지극히 김창완다운 소심함이며 비겁함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화자는 짝사랑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고백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 무언가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어느 소설에선가 아니면 영화에선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멀리서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바보같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본 듯 하다. 너무 바보같아서 차마 마음을 전하지도 못하고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실연하고 다시 사랑하며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을 마냥 바라만 본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자기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있지는 않을까 기약없는 기다림을 견디며 그의 곁에 머물려 한다. 아주 지독한 어쩌면 병적인 사랑이다.

 

고백이 아니다. 가사는 결코 고백이 아니다. 그래서 애써 힘주어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연주와는 달리 노래는 모든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터뜨리고 있다. 소심한 이의 사랑이 그렇다. 속으로는 활화산처럼 들끓는데 겉으로는 그것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것을 낭만이라 치장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70년대 소설이나 영화 가운데는 그런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음악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어느 사랑보다도 치열하고 집요하다. 내면의 이야기다. 겉으로 낭만적이라고 속까지 낭만적일까? 인간의 본성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랑이란 그 어떤 감정보다도 이기적인 감정이다.

 

처음 들었을 때 이게 뭔가 싶었다. 그리고 들으면서 중독되었다. 사이키델릭이란 이렇게도 표현되는구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가 추구하는 정신은 그렇게 톡식과 시나위에 의해서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이키델릭으로 구현되고 있었다. 가장 첨단의, 어쩌면 시대의 문법을 뛰어넘는 혁명적인 음악이었다. 아마도 1978년, 놀라운 것은 1977년부터 1978년까지 매해 한 장씩 출시되었던 산울림의 앨범들은 김창완이 대학시절 써둔 곡으로 채워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추어의 풋풋함이 본질을 관통하는 천재성과 만나며 이같은 기적을 만들고 있다. 지금 들으면 어떨까? 나는 여전히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놀라고 있다.

 

노래는 단순하다. 그리고 간결하다.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연주가 더해지면 어떨까? 하필 전주의 연주를 이끌고 있는 것이 베이스라는 사실이 매우 인상깊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베이스의 묵직함이 차라리 음산하기까지 하다.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에서 꾹꾹 눌러 감추며 토해내는 치열하면서도 여린 독백으로. 가사와 멜로디만의 노래가 아닌 모두를 아우른 음악이다. 다시 한 번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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