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야 - 임지훈
눈물 흘리지마
작은 골목 귀퉁이
꿈을 잊었다고
눈물 흘리지마
구름처럼 스쳐간
허무한것을
뭐라 말하지마
그눈빛이 꺼질듯
내게 속삭이네
뭐라 말하지마
하늘저편 노을이
걸릴때까지
슬퍼도 울지못하는
민들레
꽃위에 햇살 가득한데
보아도 보이지 않고
잡아도 잡히지 않네
어디있니 누나야
젖은 노래처럼
너의 작은가슴에
비가 내린다고
언젠가 말했지
하염없이
걷고만 싶어 진다고
나를 부르지마
돌아서는 모습엔
슬픔뿐인 것을
나를 부르지마
스쳐가는 바람이
내모습인걸
하늘가 저편 맴도는
새들의
날개짓만 공허한데
들어도 들리지 않고
찾아도 찾을수 없네
어디있니 누나야
가사 출처 : Daum뮤직
언제였을까? 물론 언제였는가는 검색만 해 보면 바로 나온다. 임지훈이 군대에서 제대하고 첫방송이었으니까. 다락방이었다. 공부방 하라고 내게 허락해주었던 일어서지도 못할 좁은 공간, 그리고 서툰 손짓으로 겨우 고쳐서 듣고 있던 어디선가 주워온 고물카세트라디오, 창문 밖에서는 고양이 우는 소리가 스산했다.
임지훈이라는 가수에 대해서는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그냥 임지훈이라는 가수가 군대에서 제대하고 이 노래를 들고 나왔고, 노래가 무척 듣기에 좋더라 하는 이상은 모른다. 아마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인정받는 싱어였던 모양이지만 내가 그렇게까지 음악을 찾아듣던 타입은 아니었던 터라. 이후 다른 노래로 활동을 시작한 것 같기는 한데 그 노래도 그냥 그런 게 있다는 이상은 모른다. 내게 있어 임지훈이란 '누나야'가 바로 시작이었으며 곧 끝이었다.
과연 노래에서 말하는 '누나'란 누구인가? 얼핏 추측하기로 임지훈이 군대 가기 전에 사귀던 연상의 여자친구가 아니었을까? 지금 보기에 그렇다는 거다. 당시에는 다른 누나를 떠올렸다. 구로공단과 인접해 있기에 항상 볼 수 있었던 작고 고단하고 보잘 것 없는 누나들이었다.
첫딸은 살림밑천이라고 한다. 사실 그게 그렇게 좋은 의미에서 나온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도성장기 그 말은 우리 사회에 그대로 들어맞고 있었다. 대개 집안에서 누이들은 중학교만 졸업하면, 아니 중학교의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하고 가족을 위해 취업전선에 내몰려야 했으니까. 자본주의는 다루기 쉽고 임금까지 싼 어린 여자아이를들 원했고, 그리고 어차피 더 이상 여자아이들을 가르칠 여력이 없던 부모들도 쉽게 그런 자본의 요구에 응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살던 동네에서도 일찌감치 집을 나와 가족을 부양하던 나와 불과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 여자아이들을 곧잘 볼 수 있었다. 흔히 그네들을 '공순이'라 불렀다.
대개는 어른들조차 일정한 직업이 없던 시절이었다. 번듯한 일자리 하나 없이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집에서 제대로 취직도 하고 꼬박꼬박 월급도 받아 오는 어린 누이들의 존재는 그야말로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누이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던 것이 바로 앞으로 집안을 책임지게 될 남자형제였다. 어렸을 적 친구 하나도 그래서 누나만 넷이었는데, 이 누나 넷이서 이 녀석 어떻게 좀 해 보려 무척 걱정이 많았었다. 중학교도 마치기 전에 취직을 해서 돈을 벌고 있었는데, 이 녀석 마음만 잡으면 대학 학비까지는 어떻게든 대줄 수 있을 텐데 하며 무척이나 안타까워 하고 있었다. 이들은 또한 누나들의 대신이었다.
그런 누나들을 보아온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래 분위기 자체도 상당히 스산하고 우울하다. 어쩌면 그런 누나의 존재가 아니었을까? 어느날 고향에 돌아갔더니만 더 이상 소식이 끊긴 누나에 대한 그리움. 아니 그보다는 서러움이었을 것이다. 힘든 가운데서도 어떻게 해서든 힘을 내며 자식을 북돋워주던 든든한 존재의 상실에 따른 절망이었을 것이다. 대개 그런 경우 아무 이유없이 소식이 끊긴 누이들에게 돌아올 운명은 가혹한 것이었으니까. 아마 어른들은 알고 있을 테지만 아이들에게까지 그 이야기가 들리지는 않았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도록 단지 한탄어린 비난만이 떠돌고 있을 뿐이다.
그런 노래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또 나이를 먹고 보니 그냥 군대 제대하고 고무신 거꾸로 신은 연상의 옛연인을 그리워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막연히 기다리고, 막연히 떠돌며 찾고, 물론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미련이다. 단지 미련이 부여잡고 놓지 못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보면 노래 가사도 상당히 단순하다. 물론 연상의 여자와 사귄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뭐라 말하지 못하겠다.
어쨌거나 그래서 내게 있어 이 노래의 인상은 전자에 해당한다. 가장 먼저 듣고 노래에 꽂히게 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막연하게 그리운 누이. 아니 내게도 사촌누이가 있었다. 서울 와서 고생하던 역시나 살가운 누이였다. 외가의 외가쪽으로 서울 와서 어떻게 잠시 함께 지내던 누이도 있었다. 어째서 삼촌과 누이들은 그렇게 어른 조카와 동생을 위해 돈을 잘 쓰는 것일까? 물론 자신들은 항상 모든 것이 궁핍하고 고달프다. 그래서 더욱 누이를 그리게 되는 것일지도. 그런 녀석들이 많았다. 그래서 내게 노래는 그런 노래인 것이다.
연말이어서일까? 원래는 오래전에 한 번 써 보겠다고 노래를 다운로드받아놓은 것이 있었다. TV도 볼만한 것이 없고, 요즘 게임하느라 음악도 거의 듣지 않고, 그래서 뭐 재미있는 것 없을까 하다가 문득 이 노래가 눈에 들어왔다. 하필 연말이다. 마음이 스산하다. 외롭고 메마르다. 이런 촉촉한 노래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보다는 내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많이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 피곤하다.
역시나 임지훈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리고 그다지 알고 싶은 생각도 없다. 미안하지만 당시에도 그랬으므로 지금 와서 그런 호들갑까지 떨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인터넷만 검색하면 나오는 것 굳이 한 마디 더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노래는 아니나 다를까 김창완이 썼다. 이런 스산한 겨울달과도 같은 청승은 김창완이 아니면 소화하기 힘들 것이다. 임지훈처럼 읊조리듯 부르면 그 우울함이 더하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한때 노래방 필수곡 가운데 하나였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잘 부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듣고 있으면 지금도 그립다. 소식이 끊긴 누이는 지금도 어느 하늘 아래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까? 분명 어디선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며 만나면 반가워해 줄 것이다. 그리 믿고 싶은 것이다. 오랜 기억처럼. 아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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